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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삭 Oct 30. 2022

울 어매가 생각난다

늙어본 적 있니, 나는 젊어봤다

엄마를 닮아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어느새 내가 봐왔던 엄마의 모습을 닮은 나를 발견한다. 그를 좋아했든 싫어했든 결국은 그처럼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몽글해진다. 자식으로서 반기만   알았지, 늙음을 손가락질하며 외면하고   알았지. 내가 반대의 입장이 되어보니 그동안 얼마나 되바라진 태도로 살아왔는지 새삼 깨닫는다. 그렇게 부들부들 화를  일도 아니었는데, 나는 언제나 엄마 앞에서 사사건건 저항하고 부정하려고 했을까.


엄마는 아이스크림을 싫어했다. 먹으면 살이 많이 찌고, 살이 찌면 움직이는 게 불편하다고 했다. 지금의 나는 출산 후 이가 시려서 더 이상 아이스크림을 즐기지 못하지만, 아이스크림을 ‘개’ 단위가 아니라 ‘통’ 단위로 해치웠던 과거의 나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그런데 책임져야 할 것이 많은 나이가 되니,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대식가이자 미식가 집안의 삼시 세 끼를 해내는 동시에 가구사업으로 집안을 일으켜 세운 엄마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뼈저리게 이해된다. 배가 부르면 아이들의 요구가 성가시기만 하고, 최대한 몸을 안 움직일 궁리만 하다가 결국 짜증이 솟구친다.


반면에 아빠는 거하게 먹은 식사일수록 마무리는 달달하고 시원한 것으로 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나에게 하얀 대접을 주고선 집 앞에 있는 고려당 제과점에서 팥빙수를 사 오는 심부름을 자주 시켰다. 얼음 위에 팥 한가득, 연유 한가득, 젤리와 떡을 고명으로 넣어주던 팥빙수 먹기란 아빠에게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고 그 속도는 마파람에 게 눈 감추는 것보다 빨랐다. 디저트 배는 따로 있는 게 분명하다는 걸, 어쩌면 디저트는 식사 위에 잠깐 소복이 쌓였다가 한 줌 햇살에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싸락눈과 같은 존재일 수도 있음을 알았다. 아이스크림을 안 좋아하는 엄마도 팥빙수만큼은 한두 숟가락을 먹었다. 부산 출신인 엄마는 소싯적 국제시장 구제 골목을 휩쓸던 패셔니스타였는데, 쇼핑을 마치고 나면 얼음과 팥 외에 다른 재료는 전혀 들어가지 않은 팥빙수를 즐겨 먹었다고 했다.


엄마는 빙수 위에 비싼 과일 둘레길을 빼곡히 두르고,  위에 아이스크림 봉우리를 올리고 케이크로 피사의 사탑까지 쌓는 요즘 빙수를  때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신다. 점점  자극적인 단맛 일색의 팥빙수 말고, 옛날에 먹던 단순한 팥빙수가 먹고 싶다고 하신다. 그런 팥빙수를 파는 데가 별로 없다는 엄마의 말에 쓸쓸함이 느껴진다. 과거 그들이 사회의 중심이었을 때는 입맛 또한 그들에게 맞춰져서, 어디서나 그런 팥빙수를 쉽게 먹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찾아가서 먹어야 하는 마이너한 이니, 맛의 세계는 냉혹하다.


그런 팥빙수를 늘 먹을 수 없는 엄마 아빠가 먹는 아이스크림은 비비빅이다. 거의 팥으로만 구성된 순도 높은 팥 아이스크림이다. 성분표만 봐도 팥의 비율이 높은데 비비빅을 한입 베어 물면 “나는 오로지 팥만으로 구성된 걸요”라고 새침하게 말하는 듯 통팥 한두 알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있다. 이 맛 저 맛 다 됐고 오매불망 팥만을 기다려온 팥 애호가들을 사로잡는 이보다 확실한 징표가 있을까.


엄마와 무조건 반대여야 옳은 거라고 생각했던 철없던 딸은 팥이 싫었다. 물컹물컹 식감도 유쾌하지 않고, 콩이면 콩 맛이 나야지 이리 달달하다니 몸에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은 패션 테리리스트를 보는 것 같아 꺼리게 됐다. 그런데 나는 스무 살 이후로, 점진적으로 노화가 시작되는 그 시점부터 팥을 찾기 시작하더니 팥죽, 호두과자, 팥칼국수를 사랑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출산 후 붓기 제거에 팥이 좋다고 해서 산후조리 기간에 엄마로부터 설탕을 조금 넣은 팥을 먹었는데, 속이 따뜻해지는 느낌에 홀랑 빠지고 말았다. 노화의 급물살을 타게 되는 출산을 기점으로 팥을 사랑하게 되다니, 영화 <은교>의 대사이기도 한, 시인 로스케의 말 “젊은 그대여,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는 말을 내가 하고 있었다.


엄마 아빠가 우리 집에 오신다고 하면 나는 마트로 달려가 비비빅을 냉동실에 한가득 채워 넣는다. 역시나 대식가였던 큰고모 집에 놀러 가면 큰고모는   슈퍼마켓에서 파시통통 아이스크림을 박스로  와서 냉동실에 쟁여 넣었다. 집이 슈퍼도 아닌데, 슈퍼처럼 같은 아이스크림을 수십 개씩 넣는 큰고모를 보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나는  옛날 큰고모를 따라가려면 멀었지만, 부모님이 오시겠다고 하면 이때만큼은 비비빅을 대량으로 산다.


배가 조금 덜 찬 날에는 역시 알알이 팥알이 살아 있는 붕어싸만코를 먹으니, 이것도 빠뜨리지 않는다. 아이스크림을 꺼내 들면 먹겠다고 달려드는 손녀들 때문에 한 끼에 소진될 아이스크림 개수는 3~4개로 산정한다. 엄마 아빠에게 팥이 들어간 모나카 비비빅은 숭늉과도 같다. 다른 음식을 배부르게 먹고도 비비빅을 먹지 않으면 식사가 끝났다고 볼 수 없다. 비비빅을 감싸고 있던 뽀얀 작대기가 식탁 위에 덩그러니 2개는 놓여 있어야만 이번 식사는 참으로 만족스러웠다고 할 수 있다.


출산 후 시린 이를 얻고 마트 아이스크림 코너와 멀어진 나는 지나가는 바람에 굴러가는 비비빅 봉지를 보면 엄마가 생각난다. 엄마 아빠는 지금도 배부르게 드신 날은 냉동실에 상시 대기 중인 비비빅을 꺼내서 드시고 계시겠지,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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