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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삭 Oct 30. 2022

이 밤의 끝을 잡고 즐기는 만찬

왜 혼자 먹어야 맛있을까 

누군가와 밥을 먹을 때, 내가 숟가락을 놓으면 백에 아홉은 듣는 말이 있다. “설마 다 먹은  거야? 이것밖에 안 먹다니!” 나의 깨작거리는 먹기가 또다시 상대를 단단히 실망시킨 게 분명하다. 곧이어 “네 덩치가 이렇게 큰데도?”, “이렇게 조금 먹는데 어떻게 살이 쪘지?”라며 “이상하다, 신기하다”라는 말이 이어질까 봐, 나는 재빨리 살이 덜 쪄 보이는 자세를 취한다. 공항 수화물 검색대에서 찬찬히 스캔당하는 짐처럼, 상대방의 눈에서 나오는 엑스레이가 내 몸을  샅샅이 살피기 전에 자세를 고쳐 앉아야 한다. 잠깐만 단추 밑에 숨어 있으라고 겨우 달래놓은 뱃살이 그새 바깥 구경을 나왔을지 모르니 구부정한 허리를 펴본다. 언제나 터질 듯한 봉긋한 양 볼의 양감을 조금이라도 줄이려 혀를 입천장에 대고 턱을 당겨 본다. 양 허벅지를 붙이면 하체비만인은 면할 수도 있으니 혼자만의 허벅지 씨름을 하기로 하고, 나는 절대 틈을 보이지 않는 수비수를 하기로 한다. 


유독 이런 기제가 발동되는 건 먹는 것으로 성격 테스트를 진행하는 이들과 밥을 먹을 때다. 나와 식사를 한 후 상대방은 “잘 먹지 않는 당신은 까탈스러운 성격의 소유자이군요”라며 나에게 결과 팝업창을 띄운다. 머릿속으로는 ‘그럼 그렇지, 또 그 말을 들었네’라고 생각하면서, 내가 해야 할 다음 말 중에서 그간 가장 분위기를 해치지 않았던 모범답안을 골라본다. ‘아침을 많이 먹어서요, 방금 뭘 먹고 와서요, 요즘 소화가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등등 중에서 지금 이 상황에 제격인 말이 있을 것이다. 


내가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사회에서는 예민 보스보다는 털털 장군이 훨씬 미덕이고, 상 대방을 덜 불편하게 하는 성격이라고 생각해서다. 사실 몸이 말랐으면 어떤 분석 결과를 받는 대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마른 사람이 안 먹으면 “그러니까 살이 안 찌지”라고 당연한 것이고, 잘 먹으면 “이렇게나 잘 먹는 당신은 털털하군요”라면서 반전 매력이 되니까 말이다. 먹기가 상대방에게 평가받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고, 상대방이 나의 먹기를 어떻게 볼지를 신경 쓰기 시작한 것은 직장에 다니면서 ‘사회적 식사’의 횟수가 늘어나면서부터였다. 상사는 사회초년생인 나에게 밥을 사주면서 그 대가로 무엇이든 잘 먹는 신입사원을 바랐다. 하지만 다 같이 밥 먹는 자리에서 사회초년생이 온전히 밥에 집중하기란 어렵다. 앉자마자 휴지를 한 장 뽑아 수저를 세팅하고, 메뉴판을 펼쳐 윗분들이 고르시게 한다. 그 사이에 물병도 가져와서, 날이 덥다면 시원한 물을, 춥다면 따뜻한 물을 추가로 요구해서 각 잔에 적당하게  따른다. 그리고 메뉴가 정해지면 취합해서 착오 없이 종업원에게 전달한다. 


이후 종업원이 음식을 가져오면 누가 시킨 것인지 센스 있게 기억해서 안내해야 한다. 이런 것들을 빠릿빠릿하게 하지 않으면, “걔는 식당에 갔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더라”라는 이야기를 듣기 일쑤다. 중간중간 윗분들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이야기에 싹싹하게 반응하는 것도 필수다. 물이나 반찬이 떨어지면, 단전에 힘을 주고 신입사원다운 패기 있는 목소리로 서빙하시는 분을 불러서 리필을 요청해야 한다. 이러니 밥이 입으로 들어가다가도 가끔 코로 들어간다. 행여라도 중요한 클라이언트를 만날 때면 밥은 코로도 못 들어간다.  


직장에 들어간 이후로 대부분의 점심이 ‘사회적 식사’가 되면서 나는 매우 특수한 식사 패턴을 갖게 된다. 내 비록 낮에는 마음 편히 잘 못 먹었으나, 이 시간만큼은 아낌없이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으로 새벽 2시에 홀로 만찬을 즐기는 것이다. 퇴근한 후의 저녁 식사는 ‘밤에 먹으면 더 살이 찌니까’라는 생각에 늘 배부르지 않게 먹었다. 그러고 나면 어김없이  배꼽시계가 나를 깨웠다. 나의 뇌는 텅 빈 위와 타협을 시작하지만, 매번 승리는 위의 것이었다. 그러고 나면 뇌는 합리화를 시작했다. ‘그래, 지금 밤이 아니라 이른 아침이야. 나는 야식이 아니라 일찍 아침 식사를 할 뿐이야.’ 하지만 신체기관의 학습능력은 어찌나 뛰어난지 그 시간마다 밥을 주기 시작하니, 이들은 그 시간마다 나를 깨웠다. 


그렇게 찾아간 곳이 편의점이었다. 애피타이저부터 본식, 후식까지 모두 즐길 수 있는 그곳에서 나는 백화점 푸드코트도, 유명 맛집도 부럽지 않았다. 편의점마다 강점인 PB 상품도 달랐고, 정기적으로 신제품이 나왔기 때문에 지루할 틈도 없었다. 주요 편의점 브랜드였던 세븐일레븐, GS25, 구 패밀리마트(현 CU)가 다 있었는데, 특히 자주 가는 곳은 패밀리마트였다. 예나 지금이나 제일 먹을 만한 PB 상품이 많았다. 과자도 수시로 업데이트되어서 야식의 마무리도 늘 과자로 하는 나에게는 최고의 먹거리 쇼핑 장소였다. 


편의점은 언제 가느냐에 따라 근무하는 아르바이트생이 다른데, 내가 주로 이용하는 새벽 2시에는  중년의 아르바이트생인지 점주인지 모를 40대 아저씨가 근무하셨다. 그 시간쯤 자취집이 있었던 홍대역 근처의 편의점에는 이 밤이 아쉬워 편의점에서 한 잔 더 들이켜는 이들이나 있을 뿐, 거의 사람이 없었다. 편의점에 갈 때마다 나는 모자를 쓰고, 최대한 나를 가렸는데 이유는 누구에게도 야식을 고르는 내 모습을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어차피 근처에 아는 사람 하나 없으니, 나를 알아보는 사람도 없을 텐데 세상으로부터 나를 숨기고 싶었다. 스스로를 부정하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여느 때처럼 그는 라면이나 과자 코너에서 빠진 물건을 채워 넣고 있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들어와서 짧은 시간 내에 마음속 찜한 상품을 골라서 나가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물건을 다 고르고 나면 물건 정리에 열심인 그를 어떻게 불러서 계산해 달라고 말할지가 고민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는 내가 마지막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을 때쯤이면 이미 계산대에 와 있곤 했다. 뒤통수에 눈이라도 달려 있는 걸까. 날이 갈수록 그 타이밍이 매우 정확해져서 편의점 아저씨가 내 머릿속에 들어와 있나 싶을 정도였다. 


그날은 새로 나온 과자가 있어서, 반가운 맘으로 계산대에 물건을 올려놨었다. 그런데 과자 바코드를 찍으려던 아저씨가 나의 눈을 맞추며 오래된 친구인 양 다정하게 말했다. “저도 이거 먹어봤는데, 맛있더라고요?” 나는 화들짝 놀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가 나를 절대 모를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그는 나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같은 시간에 같은 차림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오니 모르는 게 이상한 노릇이긴 했지만, 나는 그 사실을 애써 무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간 나의 야식을 들켰다는 생각에 낯이 뜨거워졌다. 도망치듯이 편의점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서 사온 것들을 먹으려는데, 아저씨가 같이 있는 것 같아 도무지 먹을 맛이 나지 않았다. 다음 날부터 나는 집에서 멀고, PB제품이 맛없기로 유명한 바이더웨이를 가기 시작했다.

 

나는 늘 이른 아침이라고 생각하고 먹었지만, 배가 불러서 다시 잠들고 말았다. 결국은 야식을 먹은 셈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널부러진 과자봉지를 보면 몸에 대한 무거운 죄책감이 나를 짓눌렀다. 왜 나는 늘 야식을, 과자를 혼자 먹는 걸까. 누군가와 같이 맛있게 먹기란 불가능한 일일까. 과자에 탐닉한 지 수십 년이 되었건만 여전히 나에게는 불가사의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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