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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진 Sep 13. 2024

나에게도 낭만은 있었다

 

 물론 대학교 때 매일 일을 해야 했지만 나 또한 젊은 시절의

 낭만은 있었다.

 때는 내가 20살이 되고 대학 오리엔테이션을 앞두고 있었다. 

 오리엔테이션 첫 번째 날에 모든 일정이 끝나고 숙소에서 

술을 마시며 이야기 하는 시간이었다.

 밤을 새서 왔기 때문에 너무 피곤하고 진짜 아무데서나 잘 

수 있을 것처럼 너무 너무 졸렸는데 새벽 2~3시가 되도 선배님

들은 잘 생각이 아예 없으신 것 같았다.

 그리고 여중, 여고를 나와서 그런지 남녀가 섞여 앉아서 서슴없이

 얘기하는 분위기에 적응을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최대한 구석에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어디로 갈까 했는데 

나처럼 적응을 못하는 것 같은 남자 동기가 보여서 그 쪽 옆으로 갔다.

 물어보니까 아니나 다를까 남중, 남고를 나와서 여학생들과 얘기하는

 것이 어색하다고 말해서 나도 마찬가지라고 얘기했다.

 그렇게 적응을 못하고 있었던 우리 둘은 구석에서 존재감 없이 앉아

 있었다.

 그 때 어느 방에서 한 남자 선배가 나왔다. 피곤해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면서 그 선배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때부터 나의 짝사랑이 시작되었다.

 98학번은 군대 갔다 왔다가 복학생으로 들어 온 94학번 선배님들과 

친하게 지냈는데 그 선배가 94학번이었다.

 180cm가 훨씬 넘는 키에 굉장히 잘생긴 선배로 묘한 분위기로 인기가 많았다.

 난 그 선배에게 첫 눈에 반했고 나의 짝사랑은 시작됐다.

 신입생 환영회 기념 연합 MT에 그 선배도 참석하는 것을 확인하고는

 나도 참가하겠다고 했다.

 우리 때만 해도 MT는 대성리 아니면 가평이었는데 대성리로 가게 되었다.

 1박 2일 동안의 일정이었는데 그 선배가 있는 곳으로 가까이 가서 함께

 게임도 하고 싶었는데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2학년 때 까지도 그 선배를 짝사랑 했는데 술자리가 있으면 근처에 앉

는 게 아니라 멀찌감치 떨어져서 멀리서 바라만 보았고 학교 안에서

 우연히 만나면 당연히 후배니까 인사를 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인사도 못하고 

그냥 고개를 푹 숙이고 지나쳤었다.

 연합 MT가면 학교CC가 되어 커플이 많이 탄생한다고 들었기 때문에

 기대와 희망을 품고 갔다.

 밤이 되자 캠프 파이어를 했다. 빙 둘러 앉아서 노래도 부르고 술도 

마시는 타임이었다.

 이때를 잘 묘사한 영화 속 한 장면이 있는데 1999년도에 개봉한 ‘박하사탕’ 이다.

 설경구의 스무살 첫사랑 문소리와 다같이 기타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서로를 의식하는 장면!

 캠프 파이어가 끝나고 다 같이 방으로 들어 왔고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근데 어떤 언니가 내가 좋아하는 그 선배한테 업어 달라고 해서 

선배가 업고 한 바퀴를 도는 모습을 본 순간 너무 속상했다.

 내가 알기로는 그 언니가 미스 유니버스 선발 대회에 나갈 정도로

 예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고 학교에서 가끔 그 언니와 내가 

좋아하는 선배가 나란히 걸어가는 것을 본 적이 있어서 

 ‘아...그 언니와 커플이 되는 거구나’ 라는 생각에 술을 마시지 못

 하는 나는 갑자기 폭주하기 시작했다.

 소주는 아예 입을 못 대고 맥주는 500cc를 마시면 약간 취기가 돌 

정도로 술을 못하는데 선배님들이 따라 주는대로 소주를 받아먹었다. 

 그리고 남자 동기 중 술을 못 마시는데 워낙 엉뚱한 성격이어서 술 

마시고 토하고 또 술 마시고 토하고를 반복하면서 끝까지 술자리에 

있는 동기였다.

 그런데 한 쪽에 무슨 야채로 된 액체가 담겨 있는 후라이팬을 들고 

다니면서 술을 마시길래 쟤가 무슨 전을 만들려고 하나 해서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토 한 거라고 얘기하는 걸 듣고 내가 토할 뻔 했다.

 이후 난 필름이 끊겨서 잠이 들었다.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서 일어났더니 어제 밤에 그렇게 술들을 마시고도

 다들 멀쩡하게 아침 일찍 일어나 있었다.

 난 정신을 못 차린 채 그렇게 그동안 한동안 자리에 앉아서 멍을 때리고

 있었는데 양말 한 쪽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왼쪽은 맨발이고 오른쪽은

 양말을 신고 있었는데 그나마 신고 있던 양말의 바닥을 보니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내 동기에게 간밤에 내가 무슨 짓을 했냐고 물었더니 어디서 남의 남자용

 큰 슬리퍼를 신고 나가더니 한동안 걸어다니다가 넘어지기도 했다는 것이다.

 너무 창피했다.

 ‘그 모습을 그 선배가 봤으면 어떻게 하지’ 라는 걱정을 하면서 다음

 장소로 가기 위해 걸어서 이동했고 도착해보니 저수지에서 노 젓는 배를 

타는 곳이었다.

 여기서 또 썸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혹시 그 선배가 나에게 배를 같이 타자

고 하는 건 아닐까 싶어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근데 엉뚱한 선배가 나에게 배를 타자고 했고 거절할 분위기가 아니어서 

배를 탔는데 선배들이 장난한다고 신입생들을 저수지에 빠뜨렸다.

 봄이어서 아직 물은 차가웠고 위에는 후두 티에 아래는 청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잘 알다시피 청바지는 물에 젖으면 잘 마르지도 않고 굉장히 

무거워진다.

 괜히 탄다고 해서 생쥐 꼴이 되어 버린 나는 배를 타자고 했던 선배가

 너무 미웠다.

 위에 갈아입을 옷은 있었으나 아래옷은 바보같이 여분으로 따로 

챙겨가지 않아서 계속 젖은 청바지를 입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관광버스를 타고 학교로 도착했다.

 내 기분은 말이 아니었다.

 빨리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고 싶었는데 선배님들이 중국집을 들렸다 

간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휩쓸려 들어갔고 젖은 청바지를 입고 짜장면을 먹는데 

연합MT에 온 것이 후회가 되었다.

 그 이후로 모든 MT, 심지어 동기MT도 가지 않았다.

 중국집에서 나와 나랑 같은 방향인 동기들과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선배가 옆에 서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하철을 탔는데 동기 두 명은 자리에 앉아 있었고 나와 

그 선배는 서 있었다.

 난 완전 얼음이 된 상태였다.

 눈동자만 깜박거리고 있었다.

 근데 계속 누가 나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지하철 창문에 비친 모습을

 보니 그 선배가 계속 나를 보고 있었다.

 ‘그 때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쳤으면 어떻게 됐을까?’

 계속 나를 바라보는 선배를 못 보고 난 계속 아무 말 없이 앞만 보고 있었다. 

 지금도 궁금하다.

 그 때 왜 내가 고개를 돌릴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처럼 왜 계속 나를 

보고 있었을까.

 그 이후로 공강이 생기거나 하면 혹시 그 선배가 학회실에 있지 않을까라

는 마음으로 들어가 봐서 그 선배가 있으면 나도 학회실 한 쪽에 존재감 없이

 그냥 앉아 있었다.  

 만약 없을 경우는 동기들과 밥을 먹으로 밖으로 나가거나 중앙도서관에

 들려서 통학 시간이 왕복으로 약 5시간이나 됐기 때문에 지하철에서 

읽을 만한 책을 대여하고는 했다.

 그렇게 집이 먼데도 불구하고 대학 1학년 1학기까지는 술자리에 빠지

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유는 단 한가지!

 그 선배를 보기 위해서다.

 그러나 술자리 분위기가 한창 물이 오를 시간에 지하철이 끊기는 시간이어서

 도중에 일찍 일어나야만 했다.

 다른 친구들이 차라리 근처에서 하숙을 하라고 했으나 그게 더 불편할

 거 같았다.

 그래서 졸업할 때 까지 계속 통학했고 시간이 아까워서 학교 갈 때는

 신문을 읽고 집으로 갈 때는 책을 읽거나 내가 좋아하는 영화주간잡지가

 1000원 밖에 안 해서 영화 잡지를 읽으면서 갔던 기억이 난다.

 내 인생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었었던 시간이었다. 주로 에세이나

 철학책을 많이 읽었다. 에세이를 읽으면서 나도 이 주인공처럼 

언젠가는 성공하리라 다짐했고 철학책을 읽을 때는 좋은 문장이 

나오면 줄을 쳐 놓고 일명 나의 명언록 노트에 필기를 해 놓았다.

 나중에 그 명언록 노트는 내가 30살 때 대중 강사가 되겠다고 

나만의 강의안을 만들 때 좋은 글귀를 그 노트에서 적당한 것을 

찾아서 강의 내용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내가 그 선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친구들은 딱 4명밖에 

없었다. 그 외 나머지 사람들은 전혀 눈치를 못 챘다고 한다. 

 그 선배에게 다가가지 못 하는 모습을 본 친구도 내가 답답했는지

 ‘그러면 옆으로 가서 안주라도 챙겨 드려 봐’ 하는 것이다.

 그날은 적극적으로 다가가기로 마음을 먹고 안주를 먹여 드리리라는 

용기를 가지고 그 선배 옆 자리가 비웠을 때 빨리 그 자리에 앉는데

 성공 했다. 젓가락을 들고 안주를 그 선배에게 주니까 선배는 

아무 말 없이 안주를 먹는 것이다! 

 그 순간 기분이 좋아졌다.

 근데 문제는 뒷일이다.

 원래 소주를 못 마시는데 대학생들이 무슨 돈이 있겠는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소주 밖에 마실 수 있는 게 없었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보면 전지현이 소주 3잔을 마시면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푹 쓰러지는 장면이 나오는데 내가 그랬다.

소주 한 잔을 마시면 알딸딸하고 두 잔을 마시면 취하고 세 잔을

 마시면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가 그 선배에게 다가가기 전에 소주 세 잔을 마신 뒤여서 안주를

 먹여 드린 것 까지는 기억하는데 그 이후로 쭉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다.

 내가 과연 계속 옆에 있었는지, 옆에 있었다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 거다. 그렇다고 그 주변에 다 

선배들 밖에 없었기 때문에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그 이후로 더 그 선배를 멀리하기 시작했고 이러다가 술 마시고

 큰 실수를 하는 날이 올 거 같아 술자리도 가지 않았다.

 그렇게 그 선배를 좋아한지 2년이 지났다.

 이러다 상사병에 걸려 죽을 거 같아서 그 선배에게 고백하기로 

마음을 먹고 개강이 되자마자 그 선배를 찾아다녔다.

 근데 이게 무슨 일인가?

 그 오빠가 어떤 여자 선배와 캠퍼스 커플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때 쓴 일기장을 보면 거의 90% 이상이 그 선배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 선배와 눈이 마주치면 난 그 힘으로 일주일을 버틸 수 있었다’

 는 등 정말 나중에 읽어 보니까 구구절절했다.

  역시 사랑은 타이밍이다. 난 그 타이밍을 놓쳤고 그 선배와 커플이

 된 여자 선배의 매력이 뭘까 찾아봤다.

 일단 키는 적당하고 매우 말랐으며 수수한 분위기였다.

 어느 날 학교 화장실에 있는데 화장실 세면대에서 여자 선배들이

 남자친구 얘기 하는 것을 화장실 안에서 들었다.

 그 중 그 선배와 CC인 그 여자 선배가

 ‘난 오빠한테 해 줄 수 있는 것은 다 해 줄거야!’ 라는 말을 들었을

 때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영화를 보는데 정확히 제목은 모르지만 오래 누군가를

 짝사랑 해 온 여자에게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너 지금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좋아하는 너의 

감정을 사랑하는거야’

 딱 이 대사를 듣는데 생각해 보니 내가 그러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 선배를 좋아하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이루어지지 않아 

더 아련한 나의 마음에 취해 있었던 것이다.

 그 때 깨달았다.

 나 혼자서 내 감정을 짝사랑했다는 것을...

 그래서 나의 짝사랑은 대학 2학년 때 끝이 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랑보다는 풋사랑 같은 거 였다.

 마치 황순원의 소나기처럼 아직 사랑이라는 것을 모르는 어린 

나이에 상대방을 마냥 순수하게 좋아했던 느낌이 든다.

 진짜 나의 첫사랑은 23살에 만났던 선배로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있을까 싶은 

오빠를 만났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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