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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진 Sep 15. 2024

역시 행복은 잠깐이었다.

 내 인생의 그래프를 그리라고 한다면 협곡의 그래프이다. 천천히 올라가며 정상에 올랐다가 어느 날 갑자기 바로 뚝 떨어지는 골짜기의 모습이다.

 아빠가 잠시 술을 마시지 않고 있다가 내가 대학교 3학년으로 복학한 여름부터 다시 술을 드시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직장을 다니며 꾸준히 일을 하고 있었다면 그렇게 까지 술을 입에 대지 않았을 텐데 엄마와 내가 우리 집 생활비를 벌기 시작하면서 일에서 손을 때고 도박장을 다니는 등 당신께서 하고 싶은 대로 인생을 즐기고 있을 때 였다.


 그렇다고 마냥 놀 수 없다면서 아빠는 엄마 가게와 마주보고 있는 위치에 조그만 선술집을 차렸는데 엄마와 내가 하는 가게는 자리가 없어서 손님을 못 받을 정도였는데 아빠가 하는 가게는 손님이 너무 없었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손님이 없을 때 마다 가게에 있는 술로 스트레스를 풀어왔던 것이다.

 이번에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매일 술에 취해 있는 매우 심각한 알콜 중독 상태였다.


 아빠는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자신이 하는 호프집을 아예 문 닫아 놓고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는데 일단 술을 마시면 가게로 전화해서 지금 술을 마시고 있다며 가게를 다 떼려 부수기 전에 영업을 중단하라고 전화하는 것이 주사의 시작이었다.

 그 전화를 받으면 엄마와 나는 패닉상태가 되고 그때부터 일이 손에 안 잡힐 정도로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원래 새벽 3, 4시까지 영업을 했지만 아빠가 이럴 때면 더 이상 새로운 손님을 받지 않고 홀 안에 있는 손님이 다 나가면 부랴부랴 문을 닫고 집으로 갔다.


 어쩔 때에는 엄마랑 영업을 하고 있는데 아빠가 만취해서 친구를 데리고 우리 가게로 와서 마치 손님처럼 술과 안주를 시키고 술을 마실 때도 있었다.

 그러면 더 불안했다.

 언제 어느 때 갑자기 돌변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은 진짜로 술을 마시고 와서 가게에 손님들이 꽉 찬 상태인데 소리 소리를 지르면서 욕설과 함께 당장 문을 닫지 않으면 전부 다 때려 부시겠다고 위협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 너무 창피했다.

 손님들은 엄마와 딸은 열심히 일하는데 아빠로 보이는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술을 마시고 깽판을 칠 수 있냐며 수근 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아빠는 홀에 있는 손님들한테 이 가게 불 질러 버릴 거니까 살고 싶으면 다 나가라고 했고 손님들은 계산도 하지 않은 채 부랴부랴 밖으로 나가기 바빴다.  


 아빠가 하던 가게를 문 닫아 놨는데 매달 나가는 월세라도 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엄마는 나보고 아빠 가게에서 장사를 하라고 했다.

 아빠 가게는 좀 외진 데에 위치에 있었고 나 혼자 술 마신 사람들을 상대해야 했기 때문에 너무 무섭고 하기 싫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가게세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술을 못 하는 나는 그곳에서 영업을 하기 전에 생맥주를 글라스에 따라 한 잔을 마시고 시작했다. 왜냐하면 도저히 맨 정신에 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실 그 때 내 나이는 겨우 23살이었다. 술과 관련된 트라우마가 있는 나에게 저 가게에서 혼자 장사를 하라고 했을 때 너무 한다고 생각했다.

 그 나이에 내가 뭘 안다고 혼자서 선술집을 하겠는가.


 간단한 안주는 내가 할 수 있었는데 할 수 없는 안주는 마주 편에 있는 엄마 가게에 전화를 하면 엄마가 안주를 해서 이곳으로 갔다주는 식으로 영업을 해 나가기 시작했다.

 역시 아빠가 하던 가게에는 손님이 없었다.

 간혹 가다 술을 시키고는 나보고 앉아서 같이 얘기도 하고 술도 마시자는 손님들이 있었다.

 난 그럴 때 마다 저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으로 서빙만 하는 사람이고 사장님은 따로 계시다고 둘러대며 넘어 가고는 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으면 내가 왜 저런 사람들한테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지 속상했고 그 감정을 넘어 서러움을 느끼며 눈물을 흘린 적도 꽤 있었다.


 이때는 복학 후 그 때 당시에 좋아했던 그 오빠를 만났던 때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오빠가 나랑 영화를 자주 보자라는 말을 하며 직진형으로 다가 왔을 때 지금 내 상황이 그럴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쩌면 더 도망 다니기 바쁘지 않았나 싶다.

 내가 ‘동백꽃 필 무렵’ 드라마를 볼 때 아빠 가게에서 혼자 장사했던 옛날 생각이 났다.

 동백이가 젊은 나이에 술집을 할 때 처음에는 동네 사람들이 천하다 라는 표현을 썼고 손님들이 진상을 부릴 때나 손목을 잡고 한잔 하라고 했을 때 꼭 옛날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동백이가 한 말이

 ‘계산한 값에 내 손목 값은 없어요’ 라고 하는데 옛날 생각이 나서 눈물이 맺혔다.

 일단 아빠 가게를 싼 가격에 내 놓았고 내가 혼자 일한 지 2개월 만에 가게가 나가서 그제서야 벗어 날 수 있었다.

 하지만 점점 아빠의 알콜 중독은 심해져 갔다.

 힘들게 일하고 들어오면 아빠가 술에 만취해서 자기 몸을 못 가누는 채 집에 와서는 폭력을 휘둘렀다.


 가정 폭력을 당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아무리 얘기해도 얼마나 두렵고 큰 고통이며 여리고 여린 한 사람의 영혼을 짓밟는 행위인지 전혀 모를 것이다.

 그래서 알콜 중독을 가족병이라고 부른다.

 알콜 중독자들은 전두엽 기능에 이상이 생겨 뇌의 정상적인 기능을 방해하여 이성적 사고가 되지 않고 충동적인 행동으로 폭력적인 성향으로 변하게 되는 무서운 질병으로 ‘뇌의 질병’ 이다.

 즉, 알콜 중독자 한 명이 가족의 기본적인 인권을 모두 빼앗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정서적 학대부터 신체적 학대에 노출 되어 살아온 인생은 매우 고통스러운 삶이었다.

 알콜 중독이 심해질수록 주사 또한 심해졌다.

 도시 가스 선을 가위로 자르면 가스가 밖으로 세어 나온다. 그러면 아빠는 라이터를 손에 쥐고 집 안에 가스가 꽉 차면 이 라이터를 켜서 한방에 우리는 죽는다며 위협한 적도 몇 번 있었다.

 그 공포는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 모른다.

 그럴 때 마다 고등학생이었던 남동생이 아빠를 제압해서 라이터를 뺏고는 했다.


 어려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동생은 어느새 커서 아빠를 제압할 수 있는 힘이 생겼고 주사가 심할 때는 아빠를 저지시켰다.

 만만한 여자는 건드려도 아들이 대들 때는 꼼짝 않고 있었다.

 또 어느 날은 번개탄을 10개 정도 사 와서 동반자살 하자며 위협했다.

 정말 사람을 극한으로 몰아 놓고 있었다.

 요즘 심심치 않게 보는 기사 중에 아이들과 함께 동반자살을 선택한 한 가족에 대한 기사가 나면 아이들이 얼마나 겁에 질렸을까 하는 생각에 옛날 생각이 난다.


 그리고 차마 아이들만 놔두고 갈 수 없어서 그런 선택을 했다는 살아남은 부모들의 얘기를 들을 때면 죽자고 동반자살을 했으면 살아남지 말고 다시 죽으려고 했어야지 왜 다시 살아 돌아 왔는지 화가 난다.

 아빠가 밤이 지나 아침이 왔는데도 집에 오지 않을 때에는 혹시 학교에 가려다 마주쳐서 붙잡힐까봐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계단을 통해 내려갔고 버스 정류장에서 만나게 될 까봐 모자를 쓰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버스를 기다렸다.

  어느 날 아빠는 낮에도 만취가 되어 들어와서는 엄마에게 이혼을 하자고 했다.


  나와 내 남동생을 앉혀 놓고 부모 중 누구와 살고 싶냐고 물었다.

 나는 용기를 내서 엄마랑 살겠다고 말했고 남동생은 의외로 아빠와 살겠다고 대답했다.

 나중에 동생에게 왜 그런 대답을 했냐고 물어 봤는데 동생이 말하길 자기까지 엄마랑 살 것이라고 대답하면 일이 커질 것 같아서 하는 수 없이 그렇게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속이 깊은 녀석이었다.


 아들이 자기랑 살겠다는 대답을 들은 아빠는 아들이 아직 미성년자이니까 돈이 많이 들어가니 이 집은 자신이 가져가겠다고 했다.

 참 돈 욕심은 예전부터 많은 당신이었다.

 그러면서 내 머리를 툭툭 치면서

 ‘잘 살아. 이년아’ 라고 하면서 웃었다.

 자신과 살겠다는 대답을 하지 않은 나에게 감정을 드러낸 것이다.


 근데 우리 엄마와 나는 알고 있었다.

 우리 가족이 이혼을 하게 된다면 그냥 놓아줄 사람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우리가 어디에 숨든 아빠는 어떻게 해서든지 찾아내서 우리를 죽일 것이다.

 그래서 가정 폭력 끝에 이혼을 하고 자신의 삶을 되찾은 여성들을 보면서 우리 집 보다는 괜찮구나 싶었다.

 이렇게 집이 점점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전혀 컨트롤 할 수 없는 지경으로 가고 있었다.

 제발 차라리 미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왜 이 놈의 정신력은 강한건지 왜 미치지도 않고 맨 정신인지 내가 나를 원망했다.


 그때부터 내 남동생도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가출한다거나 친구들과 나쁜 짓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통제되어 있는 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마치 집에 들어가는 거와 같아서 가슴이 답답해서 학교를 가기 어렵다고 했다.

 아니 어떻게 가족이라는 구성원 중 한 사람으로 인해 나머지 세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무너질 수 있는지 너무 억울했다.

 이것이 가정 폭력의 무서움이다.

 가정 폭력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지 않는다면 한 사람으로 인해 짓밟혀진 다른 가족들의 인생은 거기서 끝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건 큰 사회적 문제이다.

 밥 대신 술을 마시며 폭주하는 아빠를 말리기 위해 엄마는 아빠의 친척에게 전화를 해서 우리의 실상을 알렸고 이 사람이 정신 차릴 수 있도록 제발 도와달라고 했다.

 아빠의 먼 친척이었던 형님 되는 분이 우리 집에 찾아 왔고 아빠의 현재 모습을 보라며 큰 소리를 내기도 하고 설득도 하면서 이 나머지 가족들은 무슨 죄가 있어서 이렇게 살아야 하냐고 나의 마음을 대변해 주었다.

 가족이 얘기할 때는 아니 호소할 때는 귓등으로도 안 듣더니 오래 간만에 만난 형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는 모습에 기가 차기도 했다.

 예전에는 아빠의 성장과정을 잘 알고 있어서 용서는 안 되도 이해는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해도 용서도 허용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아빠는 형님의 설득으로 대학병원 정신과를 가서 첫 진료를 받았다.

 전에 얘기했듯이 심각한 알콜 중독과 양극성 정동장애, 분노조절장애였다. 당장 입원치료가 필요하며 개방병동이 아니라 폐쇄병동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정신과는 개방병동과 폐쇄병동으로 나뉘는데 개방병동은 일반병동 하고 똑같다. 그러나 폐쇄병동은 자살의 위험이 있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입힐 만한 행동을 하는 환자 그리고 약물 및 알콜 중독자 등등이 가는 병동으로 말 그대로 외부와 차단된 폐쇄된 곳에서 치료를 받게 된다.


 아빠는 군소리 없이 폐쇄병동에 들어갔는데 하루도 못 참고 나를 내보내주면 다시는 술을 안마시겠다고 엄마한테 빌었다.

 엄마도 폐쇄병동을 보고 놀라서 차마 아빠를 거기에 두고 올 수 없어서 약속을 하고 함께 집으로 왔다고 한다.

 학교 갔다가 왔는데 병원에 있을 아빠가 왜 집에 있냐고 엄마한테 물어봤더니 그런 이유로 다시 데려왔다는 말에 그 약속을 믿느냐고 했다.

 정신과 의사가 얘기하기를 알콜 중독은 마치 마약중독처럼 긴 시간의 치료가 필요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환자의 굳은 의지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알콜 중독으로 인해 폐쇄병동에 입원했다가 퇴원하면 또 다시 바로 그날 술을 먹는 환자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약물도 별 도움이 안 되고 환자의 결단이 무엇보다 필요한 질환이라고 설명했다.

 아빠는 우리 가족을 불러 모아놓고 마지막으로 술 한번만 마시고 끊어 버릴테니 믿어달라고 했다.

 난 믿을 수 없었다.

 아빠는 그날 코가 삐뚤어지게 술을 마시고 아침에 노숙자처럼 사람들이 다니는 육교 위에 앉아 있었는데 그렇게 보고 싶어 했지만 꿈에서도 볼 수 없었던 아빠의 어머니 목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안드레아야...거기서 뭐 하고 있니?’ 이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주변을 돌아봤다고 한다.


 안드레아는 아빠의 천주교 세례명이다.

 그 이후로 아빠는 새 출발을 다짐했다.

 그 다짐이 얼마나 가나 싶었는데 술을 끊은지 1주일이 되고 보름이 되고 한 달, 두 달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진짜로 아빠는 술을 끊으셨다.

 내 나이 24살에 술을 끊으셨고 내가 결혼하기 전 29살 까지 한잔도 안마셨다.

 아무튼 술을 안 마시는 6년 동안은 너무 마음이 편안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아빠의 인생 그래프에 따라 내 인생 그래프도 똑같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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