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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진 Sep 14. 2024

놓쳐버린 인연

  대학 등록금 문제 등 경제적 문제로 인하여 대학 2학년 때 까지 다니다가 휴학하고 다시 대학 3학년으로 복학했다.

 우리 과 정원이 약 28명인가 했는데 IMF여파로 남학생은 군대를 가거나 대부분 휴학을 했고 우리 때부터 붐이 불었던 어학연수를 떠나는 학우들이 많아 우리 학과 3학년은 나를 포함해서 달랑 정원이 5명 이었다.

 남자 선배 2명과 내 여자 동기와 여자 후배 이렇게 구성되어 있었다. 


 첫 개강 날이었다. 같은 과 한 남자 선배가 교실로 들어오는데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근데 그 선배가 먼저 나를 알아봤다.

 ‘너 그때 우리 집에 왔었던 애 아니니?’

 처음에는 그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신입생일 때 선배님들과 단체로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다들 모여 있었다.


 영화 상영 시간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여기 근처에 살고 있었던 그 선배가 신입생들에게 점심을 대접하고 싶다며 자기네 집으로 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선배님들이 같이 가보자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신입생을 초대한 선배네 집으로 향했다.

 그 집으로 가고 있는데 선배들이  

 ‘이 선배네 집 부자니까 한번 꼬셔봐’ 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 선배네 집에 들어갔는데

 집은 굉장히 큰 평수에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였다. 거의 20여명이 조금 넘는 인원이 들어가도 집이 좁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넓은 평수에 전망도 좋고 인테리어도 멋졌다.

 그래서 들어가자마자 느낀 것은 진짜 부자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선배는 중국집에 배달을 시켜서 점심을 다 같이 먹자며 먹고 싶은 요리를 마음껏 시키라고 했다.

 신난 우리는 이것저것 시키고 거기서 점심을 먹고 바로 나와서 다시 영화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그 선배를 학교에서 본 기억이 전혀 없어서 3학년으로 복학했을 때 그 선배를 기억하지 못했다.

 근데 그 선배는 1학년 3월 달에 자기 집에 온 나를 기억하고는 

 ‘너 그때 우리 집에 왔었던 애 아니니?’ 하며 나를 알아본 것이다.

 나는 그 이후로 몇 년이 지났는데 어떻게 알아봤냐고 물어봤다.

 그 오빠를 처음 봤을 때 그냥 선배님이구나 라는 생각 외에 다른 느낌은 없었다.

 항상 그 오빠와 내 여자 동기는 같이 다녔는데 둘이 사귀는 사이 아니면 썸을 타고 있는 사이라고 눈치를 챘다. 


 그리고 딱 5명밖에 없으니까 점심도 같이 먹고 여행도 다니는 등 정말 가깝게 지낸 시기여서 내 대학 생활 중 그나마 가장 재밌었던 때가 바로 이 때였다.

 그래서 그 오빠하고도 친해졌고 어떻게 하다 전화 통화를 처음 하게 되었는데 그 때는 삐삐 세대에서 핸드폰 세대로 바뀌는 시점이어서 전화가 잘 안 터질 때가 종종 있었다.

 통화를 하는데 신호가 끊어져서 다시 전화를 걸었는데 선배도 내게 전화를 걸고 있는 중이라 서로 한동안 계속 통화중이라는 안내 소리를 듣다가 다시 연결되면 통화를 이어 가고는 했다.


 별다른 얘기는 아니었다.

 그냥 학교 얘기 정도? 그런데 그 별거 아닌 일상 이야기로 기본 30분 넘게 통화 했었던 것 같다.

  그 오빠가 낯을 가리는 성격이었는지 그 동안은 주로 내가 먼저 말을 붙이고 일상적인 얘기 몇 마디만 했었는데 그 통화 이후로 허물없이 지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동기 그러니까 내 친구가 나한테 어느 날 고민이 있다면서 수업 끝난 빈 강의실에서 그 오빠와의 이야기를 나에게 털어 놓았다.


 선배는 군 입대로 인해 휴학을 했다가 이번에 3학년으로 복학을 했다는 말로 시작했다.

 그리고 자기는 1학년 때부터 그 선배와 친분이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는 거의 사귀는 사이였다고 말하는 것이다.

 한번은 그 오빠 집에 놀러가서 집 컴퓨터를 켰는데 바탕화면에 자기 사진을 배경 화면으로 깔아 놓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랬다고 한다.

 그 오빠는 ‘내가 컴퓨터 킬 때 마다 보기 위해서 너 사진을 배경화면으로 해 났어’ 라고 심쿵 하는 멘트를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정말?’

 ‘그렇게 안 보이는데 그 선배 직진형이구나. 널 좋아하나보다! 어쩐지 항상 둘이 같이 다니는 모습을 많이 봤어’ 라고 말했더니

 사실 좀 친해지고 나서는 오빠가 자기 친구들한테 자기를 소개시켜 주는데 친구들이 ‘여자친구? 맞지? 여자친구?’ 라고 물어보는데 그 오빠가 아무 대답 없이 그냥 웃었다는 것이다.

 침묵의 긍정이었다.

 그리고 복학하기 전 부터 둘이 자주 만났던 사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어떤 사이인 것 같냐며 나에게 물어보았다

.

 사실 그 때 까지 나는 모태솔로였다.

 예쁘장한 얼굴로 신입생으로 들어왔을 때 위 학번 선배들한테 인기가 꽤 있는 편이었지만 나는 그 때 94학번 선배를 짝사랑 하고 있던 시기여서 다른 사람이 대쉬를 해도 거절했었다.

 그 얘기를 들으니까 아무리 내가 모태솔로라 연애 무식자일 수 있겠지만 누가 들어도 둘은 썸을 타거나 사귀고 있는 사이로 보였다.


 ‘이제 사귀는 사이다’ 라는 말만 하면 되는 사이라 판단했다.

 그래서 내 친구한테 너한테 분명히 감정이 있으니까 잘해 보라고 했다.

 내 친구는 사랑을 하는 사람처럼 들떠 보였고 행복해 보였다.

 그래서 그 이후로도 그 오빠 이야기를 할 때의 모습을 보며 ‘아...이 친구가 이 오빠를 많이 좋아하는 구나’ 라는 느낌을 받았고 나는 괜히 그 오빠랑 친해져서 오해를 받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다 4월 달이었나? 오빠가 여행을 가자고 했다.


 설악산 콘도 예약을 했다면서 다 같이 2박 3일 동안 여행을 가자고 했다.

 근데 그 때 당시에는 엄마가 자궁 적출 수술을 받고 복대를 차며 가게를 하고 계실 때여서 차마 아픈 엄마만 두고 나 좋다고 여행을 떠날 수 없다라는 생각이 들어 적당한 이유를 대면서 거절했다.

 선배는

 ‘현진이 안가면 나도 안가’ 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내 친구가 이 오빠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둘 사이에 있었던 일을 다 아는데 괜히 저 말 때문에 내가 오해를 받고 그 친구와 멀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그 오빠는 계속해서 전화해서 가자고 했고 나도 바람을 쐬고 싶었기 때문에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왠지 우리 둘 사이에 무슨 기류가 흐르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나머지 학교 사람들도 그걸 눈치 채고 있는 것 같았다.


 그냥 그 오빠가 나한테 하는 말은 직설적이었다.

 여자 후배가 나에게 남자가 쌍거풀 있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나고 물어봤고 난 쌍거풀 있는 남자를 싫어했기 때문에 쌍거풀 없는 남자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그 오빠가 대뜸

 ‘나처럼?’ 이라고 물었고 여자 후배는

 ‘저 오빠 좋아하는 거봐. 되게 좋아 하네’ 하면서 웃길래 내가 느끼는 기류를 이들도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는 가끔 집에 있을 때 통화를 하고는 했는데 어느 날은 2시간 넘도록 통화를 했고 통화하는 내내 그 시간이 즐거웠고 내 마음은 설레이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친구가 하는 말이 사실은 우리가 1학년일 때 저 오빠랑 우리 동기 A와 사귀었던 사이였고 그래서 A와 친했던 이 친구는 그 오빠네 집에 놀러간 날이 몇 번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둘이 사귀다가 어느 날 싸워서 헤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어서 하는 말이 그 오빠와 복학하기 전에는 자주 만나는 사이였는데 복학 하고 나서는 밖에서 따로 만나는 날도 없고 자신한테 그렇게 잘해줬는데 지금은 그렇지도 않다면서 바람둥이 기질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까 매우 복잡한 감정에 사로 잡혔다.

 첫째는 어찌 됐든 우리 과 동기였던 A와 이 오빠가 사귀었던 사이라는 것을 알고 무척 놀라웠고 여태까지 그런 사실을 몰랐던 나는 조금 혼란스러워졌다.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던 내가 그동안 뭐하고 다녔나 싶고 내가 바보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정말 우리 여자 동기랑 사귀었던 적이 있었는지.


 이 날도 집에서 통화를 할 때 나는 누가 말했다고는 얘기하지 않고 A와 오빠가 사귀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단도직입적으로 정말 A와 사귀었냐고 물었더니 한참을 말하지 않다가 ‘아니’ 라는 대답을 들었다.

 사실 그 대답을 들었을 때 기분이 좋았다.

 그 때 느꼈다.

 내가 이 오빠를 좋아하고 있구나.

 대학 1학년 때 첫눈에 반해 선배를 짝사랑 하던 마음과는 완전히 다른 마음이었다.

 짝사랑은 풋사랑에 그쳤던 해프닝이지만 난 이 오빠를 처음으로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었다.


 그래서 친구한테 ‘오빠에게 슬쩍 물어봤는데 A와 사귀었냐고 물었더니 사귄 적 없다며 대답했다’ 고 하니까 무슨 소리냐며 둘이 여행 다니며 찍은 사진을 많이 봤다고 하면서 이 오빠 말을 전부 믿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이 오빠와 친한 여자 선배가 이 오빠가 기억을 못 하는 척 할 때가 있고 가벼운 거짓말로 위기에서 빠져 나갈 때가 있다고 말한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생각이 복잡해졌다.

 처음엔 못 느꼈는데 생각해보니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심리가 있고 자기 사생활이 오픈 되지 않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 같았다.


 그래서 그 오빠에 대해 뭐가 사실이고 뭐가 거짓인지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사귀었으면 사귄 거지 굳이 아니라고 부인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눈 가리고 아웅이지 둘이 연애하는 걸 본 동기들이 몇 명인데 거짓말 하는 그 오빠에 대한 믿음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난 누군가가 믿음, 소망, 사랑 중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냐고 묻는다면 믿음이라고 말할 정도로 사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믿음 즉, 신뢰를 중요시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오빠에 대한 내 마음에 방어기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어찌됐든 난 2박 3일간 설악산 여행을 떠나기로 했고 우리 5명은 설악산 근처 콘도에 도착했다.

 첫날은 저녁을 해 먹고 뜬금없이 고스톱을 치자는 말이 나와서 치기로 했는데 난 지금까지도 고스톱을 못 친다. 못 친다고 하자 오빠는 그럼 나와 자기가 편을 먹겠다고 했고 나한테 코치를 해줬다.

 그리고 술자리를 갖었는데 다들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어서 마시고 죽자 라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좀 진지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뭐냐는 질문에 나는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면 참 행복할 거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술자리는 간단하게 끝났다.

 근데 내가 당일치기가 아닌 몇박 몇일 여행을 싫어하는 이유는 유독 아침에 힘을 못 쓴다.

 야행성에 저혈압이었던 나는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고 정신을 차리는데 까지 약 1시간이 걸린다.

 설악산에 여행을 간 그 다음 날 다 일어나서 씻고 있는데 나 혼자 못 일어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아침에 못 일어나는 애가 그 전날 못 마시는 술을 분위기로 마셨더니 더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나는 계속 누워 있었다. 그러자 오빠도 내 옆에 가만히 누워 내 팔을 들어 흔들어 보더니 힘없이 축 늘어진 걸 확인하고는 술을 잘 마시게 생겼는데 정말 술을 못 마시는구나 라고 말하며 그대로 계속 내 옆에 누워 있었다.

 이미 일어난 사람들은 너무 일찍 일어났다며 좀 더 누워 있다가 일어나자며 다시 누웠다.

 그런데 오빠가 내 손 위에 자기 손을 살포시 올려놓는 것이다. 처음에는 실수로 올려놓은 건 줄 알았는데 그대로 그렇게 우리는 사람들이 일어나기 전까지 손을 잡은 것도 그렇다고 안 잡았다고 말할 수 없는 스킨십이었다.

 나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분명 오빠를 좋아하고 있었다.

 어쩌면 바람둥이 일 수 있고 거짓말을 잘하는 남자일 수도 있는데도 난 그 오빠가 좋았다.

 거기다 그 전에 누군가를 사귀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내 마음은 조심스러우면서도 순수했다.

 내가 처음으로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우리는 일어나서 설악산을 등반했다.

 근데 오빠가 계속 내 옆에서 따라 다녔다. 그러자 후배 여자 아이가 뭐라고 말을 걸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오빠는 이런 대답을 했다.

 ‘현진이가 예뻐서 누가 납치해 가면 어떻게...그리고 귀여워’ 라고 말하며 내 뒷머리를 쓰다듬는 것이다.

 난 겉으로는 평정심을 잃지 않고 가만히 있었지만 속으로는 너무 좋아하고 있었고 설레임을 느끼며 이 오빠 또한 나를 마음에 두고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렇게 어느새 우리 둘이 짝이 돼서 설악산 흔들바위 까지 올라갔고 거기서 사진을 찍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거기서 좀 많은 얘기를 했던 것 같다.

 나는 오빠한테 남자들이 그러는데 내가 접근하기 어려운 스타일에 도도해보여서 쉽게 말을 붙이기 어렵다 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며 오빠도 처음에 나를 봤을 때 그런 느낌이었냐고 물었다. 

 그러니 오빠가 하는 말이

 ‘아니. 그런 모습 없는데. 대신 이런 생각은 했어. 널 처음 봤을 때 남자 꽤나 울리게 생겼다고 생각 했어’

 다시 마음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런 기분을 느낀 건 처음이었으니까 그 떨림이 좋았다.


 그러면서 갑자기 궁금해졌다. 

 우리 과 동기였던 A의 어떤 모습에 끌려서 둘이 사귀게 됐을까?

 나는 A와 거의 말을 한 적이 없을 정도로 친하지 않았다. 그냥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는 키가 170cm쯤 되고 마른 편이며 말은 없고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다.

 그런데 나랑 비교해 보면 반대이다.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말랐다는 거. 그러나 나머지는 나와 정반대였다. 

 난 키가 작고 활발한 성격이었다.


 어찌됐든 2박 3일 간의 여정을 끝마치고 오빠 집 근처에 도착해서 밥을 먹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헤어지는데 난 솔직히 집이 인천이니까 만약 이 오빠가 나한테 호감이 있다면 학교 사람들하고 헤어지고 나서 차로 날 인천까지 데려다 주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했다.

 그런데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똑같이 헤어졌다. 

 그래서 그 오빠는 자기가 조금이라도 마음이 있으면 여자에게 습관적으로 듣기 좋은 달콤한 말로 희망 고문을 하는 스타일이라고 판단했다. 

 이제 정신 차리자고 내 자신을 다독였다.  


 그리고 내 상황이 데이트 할 상황도 아니었다.

 그렇게 설악산을 갔다 오고 나서 왠지 그 오빠와 나는 약간 멀어진 거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는 뭐 이유가 있었고 그 오빠는 왜 조금 변한 모습을 보였는지 물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정거장에서 만났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까 영화 ‘친구’ 얘기가 나왔고 우리 둘은 영화를 보러 극장으로 갔다.

 내가 핸드폰을 바꿨는데 옛날에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2G폴더 폰을 꼭 목에 걸고 다녔다.


 일종의 나름 플렉스였다. 난 이런 기종의 핸드폰을 쓴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과 핸드폰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는 장치였다.

 나한테 덥석 따라오라고 하더니 그 때 당시에 지금의 펭수 보다 더 유명한 마시마로 인형을 사주면서 핸드폰에 달아 주었다.

 그리고 일주일이 흘렀을 것이다. 

 그 오빠가 나한테 이메일을 보냈는데 영화 친구와 관련된 만화 몇 컷 자리를 보내고 내용은


 ‘너는 영화 관련 일을 해야 하니까 영화를 많이 봐야 돼.

그러니까 오빠랑 영화 보러 다니자‘ 라는 내용과 함께

 ‘넌 이지적이야’ 라고 남겼다.

 일종의 데이트 신청이었는데 그 때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왜 오빠랑 영화를 봐! 싫어 ㅋㅋㅋ’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

 만약에 그 때 영화를 보러 다니고 맛있는 걸 사 먹고 평범하게 데이트를 했다면 그 오빠와 나는 연인 사이가 되었을끼? 


 어쩌면 내가 놓친 시간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내가 후회하는 인연이고 되돌리고 싶은 시간이다.

 또 다시 이 오빠의 직진행이 발동했다.

 학교 축제 기간이어서 약 3일간 수업이 없었다.

 축제가 끝나서 다시 수업을 나갔는데 전공과목이어서 나를 포함에 5명이 교실에 다 모여 있는데 그 오빠가 내 뒤에 앉아서 어깨에 손을 올리더니


 ‘그동안 보고 싶었어’ 라고 말하는데 사람들이 많은데서 이런 말을 들으니 당황한 나머지 나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아무 말 없이 어깨 위의 손을 치우고 말았다.

 나는 계속해서 이 오빠의 감정이 뭔지 헷갈렸다.

 그래서 그런지 계속 방어기제가 있었던 것 같다. 혹시나 상처받을까봐 전진하지 못하고 나 자신을 보호하려는 심리였다. 이때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상처받는 것이 싫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만큼 이 오빠를 좋아하는데 인연이 아니라면 어떻게 하나 두려움을 갖었던 것 같다.


 그러다 여름 방학을 맞았는데 가끔 전화를 하면 2~3시간 정도 했었는데 방학이 되었는데도 전화가 없길래 용기를 내어 내가 먼저 전화를 걸었다.

 그러다가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나한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어 보길래 지금도 그렇지만 여름엔 냉면 겨울엔 만둣국이라고 대답했다.

 서울에서 만나기로 했고 드디어 D-DAY날!


 학교에서 보았던 모습과는 달리 그날은 달라 보였다. 그리고 향수를 뿌렸는지 은은하게 향수 향이 느껴졌다

 오빠는 나를 차에 태우고는 교외로 드라이브를 해서 경치 좋고 분위기 좋은 냉면 전문집에 도착해서 냉면을 먹으며 이런 저런 얘기를 했는데 오빠는 이상하게 계속 연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리고 마땅히 볼 영화가 없어 영화 미이라2를 봤는데 오빠가 말하기를

 ‘이 곳은 밖에서 너와 처음 만난 곳이여서 내게 의미가 있어’ 라고 말하는 것이다. 난 그 말에 너무 떨려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강남의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다음으로는 오빠가 자주 간다는 BAR를 가기로 했다.

 청담동의 세련되고 조용하며 분위기 있는 곳이었다.

 오빠가 친구들과 자주 오는 곳이라고 말하고 가끔 연예인을 볼 때가 있다며 주로 양주를 마시는데 다 못 마시고 가는 날에는 키핑을 한다고 했다.

 그곳은 술값이 매우 비싼 BAR였다.

 난 무알콜 칵테일 중 추천을 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용기를 내서 꼭 물어보고 싶은 말을 했다.

 ‘오빠. 나 솔직히 헷갈려. 우리가 어떤 사이지?’ 라고 말했더니 돌아온 대답은 너무 충격적이었다.

 ‘뭐가 헷갈려? 학교 선 후배 간에 영화도 볼 수 있고 그런 거 아니야? 라는 질문에 난 바보가 된 것 같았고 너무 창피했다.

 그리고 덧 붙여서 얘기한 것은 더 충격적이었다.

 ‘나 여자 친구 있어. 지금 캐나다에서 유학 중인데 그 아이 나이 알면 너 깜짝 놀랄 것? 고등학생이야’ 라고 말하는 것이다. 


 난 얼굴이 너무 화끈거려서 얼른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만 일어나자고 했고 새벽 2시여서 타고 갈 지하철이 끊긴 상태라 그 오빠가 우리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너무 괘씸했다.

 여자 친구 있는 사람이 내 친구한테 바탕화면에 너 사진 깔아 놓고 매일 본다고 얘기하고 자기 친구들한테 여자 친구라고 소개시켜 준 사람.

 그리고 내 친구와 멀어지고 내가 충분히 오해할 만한 멘트들을 해 놓고 이제 와서 날 마치 혼자 착각에 빠진 여자애로 만든 것이 어이가 없었다. 


 그 다음날 그 오빠랑 친하게 지냈던 동기 언니한테 

 ‘그 오빠 미성년자 여자 친구가 캐나다에 있다면서요?’

 ‘아... 그 애’

 ‘알아요?’

 ‘어! 근데 무슨 여자 친구야. 그냥 스키 동호회에서 만난 고등학생인데,,’ 

 ’둘 사이가 발전했는데 언니가 모르는 거 아니야?‘

 ‘아니.. 둘 사이는 그런 사이가 아니야’ 


 이런 말을 들으니 참 복잡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들 사이에 거짓말 잘하는 사람이라고 소문나고 마치 사람을 믿지 못하는 것 같은 그 오빠가 오히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 마음을 접어버렸다.

 이 사람은 이런 멘트를 날리는 게 습관이고 타인을 믿지 못하고 자기애가 강하며 크고 작은 거짓말로 위기를 넘기는 사람이구나라고 판단했다. 그리고는 그 이후부터 4학년 졸업하기 전 까지 거의 모르는 사이처럼 지냈다.

 그리고 잠시 술을 마시지 않았던 아빠가 3학년 여름방학 때부터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가정 폭력 역시 시작되었기 때문에 연애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면접을 보던 시기에 어쩌다 그 오빠와 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대부분 다닐만한 기업이 서울에 있고 난 집이 인천이어서 취업이 되어도 문제라고 했더니

 ‘그럼. 우리 집에서 다녀!’ 라고 또 뜬금없는 말을 하길래 나는 장난치지 말라고 했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장난 아닌데...우리 집 크잖아. 누나들 다 결혼해서 미국에 있고 방이 다 비워있어. 그러니까 우리 집에서 다녀!’

 ‘오빠네 부모님은? 부모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 하겠어

그리고 우리 집이 참 허락도 하겠다‘ 하며 넘겨버렸다.


 아직도 별 생각 없이 상대방을 오해하게 만드는 얘기를 하는 사람인가 싶었다.

 무슨 간접적인 프로포즈도 아니고 무슨 뜻으로 그런 얘기를 한 건지 아직도 궁금하다.

 그러다 졸업하기 전 교수님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날이어서 63빌딩의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졸업생과 교수님의 만남의 자리에 참석한 날이었다.

 그 오빠는 유명 대기업에 취직을 한 상태라 그 자리에 나오지 않을 것 같았는데 늦은 시간에 참석을 해서 오랜 간만에 얼굴을 본 날이었다.

 교수님과의 시간이 끝나고 졸업생끼리 2차를 가는데 집이 인천이어서 지하철이 끊기는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참석해야 될지 말아야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더니 오빠가


 ‘내가 데려다 줄게’ 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못 들은 척 무시한 채 계속 갈등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또 다시

 ‘내가 데려다 줄게’ 라고 말했고 나는 잠깐 2차에 갔다가 지하철 타고 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2차 장소로 이동했다.

 나는 그 오빠 얼굴을 아예 보지도 않았고 그 근처에 앉지도 않았다.

 그런데 여자 선배가 나에게


 ‘그 친구가 그러는데 자기하고 자기 친구하고 너랑 나랑 2:2로 호텔에서 놀자는데?’ 라는 말을 하는데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싶었다.

 ‘언니랑 나하고 그 오빠하고 그 오빠 친구하고여?’

 ‘응’

 ‘왜요?’

 ‘그냥 놀자는데?’

 ‘호텔에서?’

 ‘응’

 이상했다.


 그 언니는 남자친구가 있었고 그 오빠와 그날 이후로 어색해져서 그냥 그렇게 지내는 와중에 다른 데도 아니고 호텔에서 놀자는 건지 너무 뜬금없는 제안이었다.

 그 어떤 여자가 들어도 이게 무슨 꿍꿍이 속인가 싶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저의를 생각할 것이다.

 난 언니의 말을 마치 못 들은 것처럼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고 지하철 막차 시간에 맞춰 조용히 호프집에서 나오는데 오빠가 다가와서는 조용히 나가는 문을 열어 주었고 난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고 나서 왜 오빠가 그 언니한테 그런 제안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머리 속에 맴 돌아서 그 오빠한테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전화를 해서 물어보니까 그런 말을 한 게 맞다는 거다.

 그래서 재치 있게 넘기려고 농담을 했다.

 ‘나 술 못 마시는 거 알잖아. 

 그날 술 마실 텐데 술 마시고 나서 뛰어 내리겠다고 주사 부릴거야’ 

 ‘그럼 내가 잡으면 되지’ 라고 말하는 게 장난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그 제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근데 이런 비슷한 감정으로 혼란을 준 적이 그 뒤에 또 있었다.

 졸업 후에 직업으로 학원 강사를 하고 있었는데 오래간만에 그 오빠를 다시 서울에서 만나기로 했었다.

 저녁을 먹고 이동하려는데 자기 친구들 있는 곳으로 가자고 했다.

 나는 그냥 둘이 있고 싶었다.

 그리고 내일 오빠 회사 나가야 되니까 그냥 여기서 헤어지는 것이 좋지 않을까라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면서 오빠의 마음을 떠 봤다.


 오빠는 잠시 생각하더니 나를 집에 데려다 준다며 인천 방향으로 핸들을 틀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쩌면 이것이 우리 사이에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는 날이었다.

 남자는 여자를 자기 친구들에게 소개시켜줄 때 그냥 아는 사이가 아닌 좀 더 특별한 사이가 되었을 때 보여준다고 들었다.

 그리고 이 오빠가 중간 중간 자기 친구들과 통화할 때 뭔가를 당부하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상처 받기 싫었던 나는 또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고 말았다.  

 인천으로 가는 길은 그날따라 굉장히 차가 많이 막혔다.


 차 안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했던 것 같다.

 거의 우리 집 근처에 다 왔는데 오빠가 

 ‘야! 우리 저기 가자! 저기 좋은데?’ 라고 하길래

어디를 가르키는 건지 보았는데 모텔이었다.

 난 그냥 웃으면서 오빠의 머리를 살짝 밀었다.

 날 쉽게 봐서 원나잇 할 생각에 호텔이나 모텔을 가자고 했던 건 아닌 것 같다.


 내가 얼마나 보수적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어도 2년 동안 지켜 본 오빠는 그렇게 경솔한 사람이 아니다.

 물론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바보라고 생각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나에게 믿음을 완전히 주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나를 헷갈리게 하고 힘들게 했던 사람이지만 그도 한 때는 나를 좋아했던 순간이 있었다.

 그런데 직진형으로 다가올 때 마다 내가 도망 다니니까 극단적인 찬스를 마련하려고 그런 건 아닐까 싶다.

 그리고나서 또 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오빠 목소리가 많이 안 좋았다.


 무슨 일이 있냐고 하니까 아버지가 사기를 크게 당했다고 한다.

 그 오빠한테 직접적으로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학교 소문으로는 그 오빠 아버지가 대기업 계열의 한 기업의 사장이었고 지금은 명예퇴직을 했다고 소문이 났다.

 피해액을 물었더니 약 30억에 달한다며 매우 우울해 보였다.


 오빠는 내게 월미도를 가자고 했다.

 그 오빠는 내 옆에서 따라 걷지도 않았고 혼자서 여기 저기 다니면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카페에 들어갔는데 오빠는 맥주를 시켰고 나는 그냥 음료수를 시켰다.

 카페에서도 우리 둘은 별 말이 없었다.

 순간 내가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기분이 상했다.

 그래서 그만 일어나자고 했고 월미도를 빠져 나가는 길에 음주단속을 하고 있었다.


 그 오빠는 주량이 매우 쎄다. 그리고 내가 술을 안 시켜서 그런지 자기도 한 잔만 먹은 상태여서 별 탈 없이 음주 단속을 패스했다.

 내가 차 안에서 그랬다.

 ‘내가 선견지명이 있나봐.

 속상한 마음에 우리 둘이 진탕 술 마셨으면 걸릴 뻔 했어‘ 라고 말했더니

 ‘예쁘고 현명하고 지혜로운 너를 누가 데려갈까?’ 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달콤한 말은 여러 번 들었기 때문에 그냥 나를 좋게 봐주는 구나하면서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나 여행 이야기가 나왔고 오빠는 정동진을 가자고 했다.

 그리고 정동진을 당일치기로 갔다 오기로 했는데 오빠가 이번달 월차를 이미 썼기 때문에 또 월차를 낼 수 없어서 아침 일찍 나한테 전화해서 못 갈 거 같다는 말을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월차 계산도 하지 않고 여행 계획을 세운 오빠한테 조금 화가 났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는 만난 적도 없고 특별히 연락한 적도 없다.

 그리고 그 오빠가 나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그리고 날 설레게 했던 그 말들이 진심이었는지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그 때 BAR에서 우리 사이가 헷갈린다는 나의 물음에 그냥 선, 후배 사이라고 단정 지었던 오빠 말처럼 그냥 선, 후배 사이일 뿐 이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때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알지 못하는 사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싱그러운 봄날에 순수로 다가왔던 그 오빠와의 허물없는 첫 만남과는 달리 오해로 얼룩진 관계 속에서 연락이 끊어지고 그 자리에는 씁쓸함과 함께 허무함만 남게 되었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것은 내가 처음으로 그리고 한 때 진심으로 좋아했던 사람이다.

 아직도 가끔 꿈속에 그 오빠와 대학 캠퍼스 생활을 하는 모습을 꿈 꿀 때가 있다.

 지금은 두 사람 모두 40대가 넘은 중년의 나이가 되었는데 어떤 모습일지 그리고 토끼 같은 자식과 사랑하는 아내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누구든 살면서 한 사람을 마음 한 구석에 기억한다고 한다.

 첫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그러나 우리의 인연은 마침표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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