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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찌 Nov 21. 2023

겨울 달리기 복장이 고민이라면

서울마라톤 준비하며 남긴 1~3월 복장 기록을 돌아보며

겨울 달리기 복장 기록을 시작한 이유



달리기 좋은 계절 vs 달려야만 하는 계절


달리기 가장 좋은 계절은 언제일까? 많은 사람들이 봄과 가을을 꼽지 않을까? 실제로 봄과 달리기에 달리기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아 걷기만 해도 좋은 날씨에 러닝은 시작해 봄직한 운동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달리기에 재미가 붙기 시작하고, 누군가의 권유로 마라톤 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국내 3대 마라톤을 포함, 대부분의 마라톤 대회는 봄과 가을에 몰려있다. (서울마라톤은 3월, 춘천마라톤과 JTBC마라톤은 10월 말에서 11월 초) 마라톤이다 보니 조금 도전적인 10K 참가한다고 봤을 때, 전문가는 최소 주 3일 최소 4주의 훈련 기간을 권장한다. (참고) 물론 참가자의 기량과 목표하는 마라톤 거리에 따라 연습해야 하는 기간이 상이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달리기 입문자이고 대부분의 낮 시간을 책상에서 공부하거나 일하는 보통의 현대인이라면 주 3일 최소 2~3개월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제 산수의 영역만이 남았다. 10월 대회를 위해 8월부터 10월까지 여름 달리기를, 3월 대회를 위해서는 1월부터 3월까지 겨울 달리기를 달려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오 정리하다 보니 가을 대회는 그래도 상대적으로 날씨가 좋은 10월에 훈련할 수 있어서 더 낫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피할 수 없었던 겨울 달리기, 그리고 복장 기록의 시작


나 같은 경우 2022년 9월에 처음 달리기에 입문했고 겁도 없이 2022년 11월 중순 손기정마라톤 10K에 도전했다가 제대로 마라톤 뽕을 맞았는데, 그 약빨이 채 없어지기도 전에 12월부터 서울마라톤을 사전예약해 둔 터라 겨울 달리기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11월 대회에서는 초보자가 요령 없이 10K를 뛰어버린 탓일까? 근육과 관절에 큰 무리가 와서 보름 정도 휴식기를 가졌었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12월부터 업무 폭탄으로 시작해 코로나 확진으로 격리 기간을 거치면서, 결국 한 달 반 넘게 달리기를 멈추게 되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다시 뛰기를 마음먹었을 때는 이미 12월 31일, 한 겨울이 되어있었다.


가을 달리기 한 철만 경험해 본 나로서는 겨울 달리기 복장이 도저히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셀프 레퍼런스를 만들어 나가 보기로 했다. 나가기 전 복장을 찍고, 달렸을 때 날씨를 사진에 함께 남기고, 달리고 난 결과 이 복장이 적당했는지 보완이 필요했는지 기록하면서 감을 잡아나가 보기로.

뒤로 갈수록 점점 가벼워지는 옷차림


3달간의 복장 기록



Detail 01. 두꺼운 털 제품 대신, 얇은 기모와 장갑을

1번째 기록 - 달린 뒤 자취를 감춘 털모자와 털장갑

1월 11일, 첫 복장기록이다. 첫 번째 사진도 엄청난 고민 끝에 골라둔 뒤 찍은 사진인데, 옷을 입으면서도 수시로 마음이 변해 기록이 더럽(?)다. 귀를 덮는 헤어밴드와 캡모자 조합에서 아무리 그래도 영하인데 하는 마음으로 털모자로 교체, 긴팔만 입는 건 오버 같아서 패딩조끼를 추가해 입었다.


나간 직후에 느껴지는 쌀쌀한 날씨에 얼굴이 시려오자 ‘털‘ 나름 잘 챙겨다 싶어 뿌듯했는데, 20여분을 달리고 나니 털장갑은 어느새 주머니로, 털모자 안은 열이 가득 차 있어 모자를 벗어 재껴 버렸다. 털은 역시나 무리였나?

2번째 기록 - 역시나 털은 무리라는 결론

달릴 때 털 제품은 달리는 동안 열 배출이 전혀 되지 않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렀지만, 이걸 대체할 만한 제품이 없어서 결국 두 번째 달리기에서도 다시 한번 털모자와 털장갑을 장착하고 달려야 했다. 그래도 첫 번째 기록을 토대로 좀 더 따뜻해진 날씨에 맞게 상의를 좀 더 얇은 걸로 선택해 입었는데 딱 좋았다. 눈도 오고 바람도 불어서 집 밖을 나간 직후에는 약간 추웠지만 역시 뛰니까 바로 따뜻해지는 매직.


1월 15일, 드디어 얇은 기모 비니와 기모 장갑을 득템 했다.

3번째 기록 - 찾았다 영상 0˚에 딱 맞는 조합!


데카트론에서 구매한 스키용 폴리에스터 비니랑 얇은 기모 안감 러닝 장갑으로 무장했는데 너무 좋았다. 땀을 잘 흡수하면서도 어느 정도 열 방출을 하면서 적당한 보온감을 유지하다 보니까 달리기를 끝낼 때까지 모자를 벗지 않아도 편안했다. 게다가 장갑은 스마트 기기 터치도 되니까 너무 편했다. 단 돈 5천 원, 8천 원으로 벌써 겨울 달리기 준비는 완벽해졌다.


Detail 02. 부산의 바닷바람은 강했다


달리기에 취미가 붙은 이후 우리 부부는 여행을 갈 때마다 달릴 것을 염두에 두고 최소한의 운동복과 운동화를 챙겨간다. 올 1월에는 신랑이 급 1주 휴가를 받게 되면서 부산 광안리로 4박 5일을 내려가게 되었다. (나는 워케이션, 신랑은 베케이션) 마침 서울이 추워지기 시작해서 이참에 따뜻한 부산에서 달릴 수 있다는 생각에 많이 들떠버렸다. 사전에 날씨 앱으로 살펴보니 역시나 영상 4도에서 6도 사이를 맴도는 걸 확인하고 얇은 옷들만 간단히 챙겨 왔는데…

4번째 기록 - 바닷바람에 당하기 직전 그저 신난 두 사람


그렇다… 부산의 바닷바람은 매서웠다. 분명 수원에서는 영상 4도에 저 정도 장착이면 충분히 따뜻했는데… 바람은 생각보다 큰 변수였다. 특히 바닷바람은 더욱더. 이 날은 롱런을 뛰는 훈련 스케줄이어서 50여분을 달렸고, 그 열기로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해봤지만 추위를 피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를 어쩌나… 얇은 옷만 챙겨 왔던 터라 여기에서 바람막이 재킷을 하나 구매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신랑이 발수재킷, 바람막이, 두툼한 조끼 등 다양한 버전의 외투를 챙겨 온 덕분에 그의 옷으로 버텨보기로 했다.

5번째 기록 - 얇은 바람막이 추가 장착
6번째 기록 - 도톰한 발수자켓 추가 장착

온도 자체가 낮은 건 아니고 바람이 많이 불어 체감온도를 낮추는 거였어서, 옷 장착은 수원에서 영상 4도일 때 입었던 장착을 최대한 유지하고, 바람을 막을 수 있는 외투 하나 정도만 추가했는데, 딱 적당했다. 괜히 바람막이를 입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겹겹이 입으니 옷과 옷 사이에 공기층이 생겨 적은 무게로도 따뜻함이 배가 되는 것 같았다. 이때 경험 덕분에 남은 겨울 달리기 내내 날씨 앱에서 온도만 보는 게 아니라 바람세기 정도를 꼭 같이 보는 습관이 생겼다. 바람세기가 체감 온도를 확 낮출 수 있다는 걸 명심하자.


Detail 03. 체감온도 영하 7도에는


부산에 다녀온 뒤 부쩍 체감온도에 관심이 생겼다. 온도뿐만 아니라 ‘바람’과 ‘햇빛’ 세기를 꼭 같이 살펴봐야 실패 확률을 낮출 수 있다. (최근에는 아예 이런 요소를 고려해 체감온도를 알려주는 accuweather라는 어플을 애용하고 있다) 1월 23일 이날도 온도는 영하 4도였지만 평소와 다르게 바람이 많이 불어서 체감온도는 영하 7도 정도로 봐야 할 것 같았다.


부산에서의 기억을 떠올려봤다. 얇은 바람막이라도 여러 개를 겹쳐 입으면 옷 사이사이의 공기층이 보온에 유리했었지. 그래서 이번에도 상의와 하의를 모두 3겹씩 겹쳐있기로 했다. 기모 위에 기모 위에 방풍되는 소재의 옷까지. 덕분에 춥지는 않았는데 옷이 무거워져 그런가, 설 연휴 동안 피로가 쌓여서 그런가 몸이 조금 무거운 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춥지도 덥지도 않은 딱 적당한 장착이었던 것 같다. (그나저나 이런 추위에도 달리러 나가는 러너가 됐다니, 복장 기록이 재미있어서가 아닐까)

7번째 기록 - 상하의 모두 3겹씩 만반의 준비


Detail 04. 영하 3도에서 영상 2도 사이, 지퍼 달린 옷이 필요합니다


1월 마지막주부터 2주가량, 영하 1-3도의 날씨가 계속되었다. 기모 제품은 1개로 줄이되, 얇은 옷을 1~2개 정도로 줄여서 겹쳐 있기 시작했다. 밤에 달리냐, 낮에 달리냐에 따라 그 두께는 조금씩 변화를 줬는데, 이때 ‘지퍼 달린 옷‘은 복장 선택의 실패 오차를 현저히 줄여주는 효자템이었다. 덥다 싶을 때 지퍼를 내리면 열 방출이 잘 되면서 순식간에 상쾌함을 느낄 수 있다. 달리기를 마무리하고 집까지 걸어가는 동안에는 다시 지퍼를 올려 감기에 걸리지 않게 하는 역할까지. 그래서 내 러닝 상의는 대부분 지퍼가 달려있다. 특히 셔츠 같은 경우는 반집업 스타일이 좋다.

온도는 비슷하지만, 바람과 햇살에 따라 복장 선택이 까다로워진다


Detail 05. 영상 3도에서 10도 사이에는, 햇살 유무가 중요하다


봄이 오는 기운을 가장 빨리 받을 수 있는 방법이 달리기가 아닐까? 2월 둘째 주가 되자 조금씩 날씨 영상으로 올라오는 날이 많아졌다. 완연히 따뜻해진 날씨에는, 특히 햇살이 가득한 시간대에는 상의는 2겹 하의는 1겹으로 옷의 가짓수가 줄어들었다. 그마저도 햇살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지퍼를 모두 내리고 카라를 펄럭이며 달리곤 했다. 거의 영상 10도를 바라보는 날씨에는 기모 장갑과 모자는 벗어버리고, 해를 가릴 수 있는 테니스 모자나 귀 덮는 얇은 소재의 헤어밴드로 대체하기도 했다.

영상의 날씨에 햇살까지 따뜻하다면


영상의 날씨지만 햇살이 없는 오후이거나, 늦은 밤에는 여전히 쌀쌀했기 때문에 상의는 2~3겹, 하의는 1~2겹을 취사 선택해 입었고, 기모 장갑과 모자는 필수로 챙겨 나갔다. 애매하다 싶을 때는 역시나 지퍼 달린 옷을 활용해 달릴 때만 지퍼를 내리는 식으로 활용했다.

영상의 날씨지만 햇살이 없는 오후이거나, 늦은 밤이라면


Detail 06. 드디어 마라톤 당일, 나의 선택은?

서울마라톤 당일 최종 복장 선택! (오른쪽 사진에는 없지만 패딩 조끼도 입고 달렸다)


마라톤 당일의 날씨는 아주 화창했다. (기상청의 과거 날씨를 조회해 보니 최고기온은 영상 14도, 최저기온은 0.3도였다) 대회장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영상 7도 정도로 살짝 쌀쌀했지만 출발 시간이 다가올수록 따뜻한 햇살 덕분에 조금씩 기온이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스타트 라인 뒤로 삼삼오오 모여있는 사람들의 열기 때문이었으려나? ) 


지난 3개월의 복장 기록을 토대로 선택한 나의 10K 마라톤 복장은 상의는 기모 긴팔과 패딩 조끼 하의는 기모 없는 레깅스 그리고 귀를 덮는 얇은 헤어밴드와 얇은 기모 장갑이었다. 작년 손기정 마라톤 때는 이런 기록도 없고, 마라톤 참가도 처음이라 따뜻하게 입고 갔다가 외투를 허리에 두르고 달리느라 신경도 쓰이고 고생도 했었는데 이번에는 꾸준한 기록 덕분에 최적의 컨디션으로 옷의 방해 없이 달렸고 개인 PB도 달성했다!



정리해 보면


Summary 01. 기온별 복장 조합과 팁


매섭게 추운 날씨, 영하 10도 ~ 영하 4도

상의 조합 (3겹) : 기모 긴팔 + 패딩 조끼 + 바람막이

하의 조합 (3겹) : 기모 레깅스 + 레그 워머 + 조거 팬츠

머리 : 얇은 기모 비니

손 : 얇은 기모 장갑

Tip. 아무리 추워도 털 소재 복장은 피하기


지퍼 달린 옷이 필요한 날씨, 영하 3도 ~ 영상 2도

상의 조합 (3겹) : 기모 긴팔 + 패딩 조끼 + 얇은 바람막이 or 도톰 긴팔 + 패딩 조끼 + 도톰 바람막이

하의 조합 (2겹) : 기모 레깅스 + 레그 워머 or 조거 팬츠

머리 : 밤엔 얇은 기모 비니, 낮엔 귀 덮는 헤어 밴드

손 : 얇은 기모 장갑 (벗었다 꼈다)

Tip. 두꺼운 옷 1개보다, 얇은 옷 여러 겹 입기

Tip. 상의는 지퍼 달린 제품을 활용해서 열 배출을 해가며 체온을 적절히 유지하기


낮이냐 밤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영상 3도 ~ 영상 10도

상의 조합 (2겹) : 기모 긴팔 + 패딩 조끼 (or 도톰 긴팔 + 바람막이)

하의 조합 (1~2겹) : 기모 레깅스 (레그 워머 or 조거 팬츠는 개인 컨디션에 따라 선택)

머리 : 밤엔 얇은 기모 비니, 낮엔 귀 덮는 헤어 밴드

손 : 얇은 기모 장갑 (벗었다 꼈다)

Tip. 가장 큰 변수는 바람과 햇살이니, 체감온도 알려주는 야후 accuweather 앱 활용하기


Summary 02. 복장 기록 속 아이템 하나씩 뜯어보기


머리, 손

귀 덮는 얇은 기모 비니 : 데카트론 웨지 성인 스키 폴리에스터 비니 4,900원

귀 덮는 헤어 밴드(기모 x) : 데카트론 팁런 성인 러닝 귀커버 귀도리 헤어밴드 6,000원

얇은 기모 장갑 : 데카트론 칼렌지 베이직 러닝 스마트폰 터치 장갑 7,900원

상의

얇은 긴팔 : 데카트론 칼렌지 런드라이 여성 반집업 러닝 긴팔티 20,000원

도톰한 긴팔(기모x) : 2022 손기정마라톤 기념품

기모 긴팔 : 데카트론 칼렌지 런웜 여성 반집업 긴팔티 20,000원

패딩 조끼 : 데카트론 킵런 런웜 여성 러닝 패딩조끼 37,000원

얇은 바람막이 : 데카트론 에바딕트 여성 트레일러닝 바람막이 자켓 54,000원

도톰 바람막이 : 르꼬끄 반집업 바람막이

도톰 발수자켓 : 무인양품 발수 후드 재킷 (남성용 S사이즈) 49,900원

하의

기모 레깅스 : 안다르, 룰루레몬 패스트 앤 프리

조거 팬츠 : 안다르

레그 워머 : 안다르




사실 나는 이미 지난가을 달리기에 입문했을 때부터 밑미의 달리기 모임에 참여하면서, 달릴 때마다의 경험을 글과 사진으로 남겨 인증하는 방식으로 기록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었다. 그러다 겨울 달리기를 앞두고 여느 초보 러너들과 같이 겨울 달리기 복장이 감이 오지 않아 모임 내 달리기 선배들에게 겨울 달리기 복장을 물어보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뛰러 나가려고만 하면 뭘 입어야 할지 막막해지는 건 매한가지였다.


그렇게 셀프 레퍼런스를 남기기 위해 시작한 복장 기록이었는데, 생각보다 모임 내 달리기 친구들의 반응이 매우 좋았다. 나와 비슷한 시간대에 달리는 분들이나, 여행지에서의 달리기를 고려하는 분들에게도 반응이 좋았고, 새로운 달리기 아이템이 추가될 때마다 추천템, 비추천템을 공유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결론적으로 지난 3개월의 복장 기록은 겨울 달리기를 꾸준히 이어나가게 만든 원동력 중 하나가 된 것 같다.


이제 나는 겨울 달리기가 더 이상 무섭지 않다.

겨울 달리기를 사랑하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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