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66일
2024-02-01(목) 이사 전날
이사 당일에는 너무 정신없을 거 같아서 이사 갈 집 근처에 살고 계신 외할머니댁에 너를 맡기기로 했단다. 그래서 아침부터 부지런히 너와 너의 짐을 한가득 싣고 이동했다. 그새 네 짐이 많이 늘었더라. 그래서 외할아버지까지 동원해 차 2대로 이동했어. 첫 장거리라 긴장이 많이 됐는데 옷도 시원하게 입히고 쪽쪽이까지 준비해 할아버지 차로 이동하는 내내 잘 자더구나.
사실 지금 살고 있는 집 전세가 너를 낳기 직전까지도 나가지 않았었어. 그래서 만삭의 몸으로 미리 이사 오고 싶은 곳의 매물을 급하게 몇 개 봐뒀었지. 그런데 너를 낳자마자 지금 집 전세가 나갔고 엄마는 이사 들어갈 집을 미리 볼 수가 없었어. 그래서 이 집을 계약할 때 엄마는 조리원에 있었단다. 집 상태를 제대로 못 보고 계약을 한 셈이지. 드디어 이사 전날인 오늘에서야 집 상태를 제대로 봤단다.
그런데 세상에 집을 이렇게 험하게 쓰고 나갈 수 있나 엄마 입에서도 험한 욕이 나올 뻔했다. 온갖 곳에 양면스티커로 무언가를 붙여놓은 흔적, 모서리 충돌 방지 우레탄 폼, 여기저기 못질까지. 특히 주방은 음식 찌든 때가 곳곳에 상당했고 싱크 상판은 깨지기까지 해서 진정 여기서 음식을 해 먹었단 말인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아 게다가 화장실 거울은 변색까지 되어있네. 이걸 왜 미리 발견하지 못했는지 에효. 대리석 상판은 깨진 부분 복구랑 연마처리도 필요해 보이는데 집주인이 둘 다 처리해 줄지 모르겠다. 잔금 치르기 전 계약에 명시해야 하나 싶은데 머리가 너무 아파.
엄마는 하루를 살더라도 예쁘고 깔끔한 집에서 살고 싶은데 6년 만에 다시 남의 집에 산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구나 싶어 슬프다. 그래도 톤톤이가 커가는 동안 엄마만의 노하우로 하나씩 손보며 예쁜 집에서 살 수 있도록 노력해 보려고. 갈 길이 구만리지만 해볼 테다.
어느덧 저녁 9시 반. 이제 입주청소도 다 끝나고 수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데 네가 옆에 없으니 기분이 묘하구나. 지금쯤 아음이 너는 마지막 수유를 하고 있겠지? 어제 예방접종으로 아팠던 터라 더 걱정이 되긴 하는데 아까 5시에 130ml 먹는 걸 보고 와서 그런지 그나마 마음이 놓인다. 게다가 외할머니는 엄마를 포함한 3남매를 키워낸 베테랑이니 괜한 걱정인가 싶기도 하다. 오늘 엄마 아빠 없어도 꿀잠 자길 바라며 내일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