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봉선화 꽃물 들일까
호미를 내려놓으며
엄마가 웃는 날
박을 삶아 만든 바가지 가득
우린 봉선화 꽃을 땄어요
별이는 잎파리도 땄대요
괜찮아 잎파리도 콩콩 빻으면
붉은 물이 나온단다
별이가 엄마 등뒤로 숨으며
혓바닥을 낼름 내밀었어요
돌절구에 꽃잎과 이파리를 넣고
나무 절구공이로 살살 찧노라면
코끝에 훅 끼치는
봉선화의 여름
온 몸으로 태양을 머금은
처연하게 붉은 미소
손가락을 쫙 펼쳐볼까
그렇지 잘 하는구나
빨래줄에 줄지어 앉은 제비처럼
차례를 기다리는 아이들
아빠도 해줄까?
고된 농사일 잠시 쉬고
마루에서 낮잠을 주무시는
아빠의 엄지 발가락에도
아이들의 짖궂은 봉선화 꽃물이
붉게 물든다
네 아이 손가락에 몇 개씩
손톱 끝마다 여름을 소복하게 올려놓고서
엄마와 아이들은
첫눈이 오기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