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오십 개 가지고 나온 택배가
이제 열세 개 남았다
흐르는 땀
계단을 오르는 지친 발자국
헉헉 몰아쉬는 숨
지금쯤 아내는 무얼 하고 있을까
된장찌개를 데우고 또 데우다가
애써 기다리는 마음을 접고
개구쟁이 두 녀석을 씻기고
재우고 있겠지
여보, 나는 은방울꽃이 참 좋아
종소리가 날 것만 같아
당신은 어쩌면 이렇게
은방울꽃 부케가 잘 어울릴까
우리가 같이 살면
기쁜 일이 생길 때마다 작은 종이
하나씩 울릴 거야
어느 날엔 한 개도 안 울려서
속상해하고
또 어느 날엔 두 개가 함께 울려서
마음이 셀레일 테고
하지만 걱정 말아요
머리에 흰 눈 소복이 쌓이는 날에
은방울꽃 작은 종이 일제이 울리며
행복한 노랠 불러줄 거야
그때쯤 우리가 걸어온 길에
은방울 꽃이 한가득
피어 있을 테니까
이제 택배는 단 하나 남았다
흑임자 인절미와
해풍을 견딘 쑥을 듬뿍 넣은 팥앙금 쑥떡
꼬르륵 배가 고프다
아, 감사합니다. 일층이구나
현관 앞에 살며시 떡 상자를 놓아두고
시계를 본다.
뚜뚜뚜뚜, 자정이다
당신은 은방울꽃을 닮았지
동글동글한 얼굴도
까르르 웃는 웃음소리도
이 일도 몸에 익으면
좀 더 일찍 집에 갈 수 있어
한강을 건넌다
어두운 강물 위로
쏜살같이 달린다
아, 집으로 간다
한참 늦은 밤
된장찌개 따끈하게 데워
마주 앉은 두 사람
서로의 지친 눈을
가만히 바라보다
빙그레 웃는다
작은 식탁에 한 송이 두 송이
은방울꽃이 자꾸만 피어난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오고
꽃은 두 사람을 노래한다
그들은 오늘의 삶을 춤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