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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효정 Nov 01. 2024

동글동글 주머니를 만드는 방울초롱아재비꽃

아이들이 모자를 쓰고 물병을 메고

우리 오늘 뭐 하고 놀까

왁자지껄 이야기하며 나오는 집


그 집 대문에 동글동글

이야기 주머니를 만드는

방울초롱아재비꽃이 피었습니다


나는 숲에 가서 열매를 주워야지

첫 번째 주머니에는

별이의 이야기를 담고


나는 아가동생이 미워

두 번째 주머니에는

슬아의 이야기를 담고


나는 진솔이랑 손잡고 싶어

세 번째 주머니에는

결이의 이야기를 담고


나는 낮잠시간에 자고 싶지 않아

네 번째 주머니에는

소담이의 마음도 담지요


주황색 대문의 창살을 타고

방울초롱아재비는 자라나서

동글동글 주머니를

자꾸자꾸 만들어요


꽃 진 자리마다

조롱조롱 매달리는

연둣빛 풍선


아이들의 이야기를

둥둥 하늘로 띄워 보내려나

무거운 마음 가볍게 가볍게

날려 보내려 하나


얘들아 너희들의 이야기를

내 주머니 풍선에 다 담았어

이걸 하늘로 날려 보내도 될까?


아이들은 고개를 흔들었어요

방울초롱아재비는

어떻게 할까 날마다

곰곰이 생각했어요

마침내 이야기들을 가슴에

꼭 품었지요


쌀쌀한 바람이 불면

아이들의 이야기는

하얀 하트무늬가 있는

까맣고 작은 씨앗으로 변신해요


쉿, 이건 비밀인데요

이걸 이듬해 땅에 심으면

아이들의 이야기가

하얗게 꽃으로 피어난대요


날마다 늘어나는 이야기

방울초롱아재비의 주머니도

자꾸자꾸 많아집니다

연둣빛 귀여운 이야기 주머니


방울초롱아재비야 안녕?

오늘도 아이들은 산놀이를 가다가

손을 흔들며 인사합니다

우리 놀고 올게

동생들이랑 터전을 잘 지켜줘


방울초롱아재비꽃은

가을햇살이 비치는 마당에서

산놀이 마치고 돌아오는 아이들

발자국 소리가 들릴까

빼꼼히 골목을 내다봅니다

2024.10.30. 방울초롱아재비꽃. 풍선초라고도 불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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