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별이의 햇볕에 그을린 얼굴과 반짝이는 눈빛을 보고 마음이 놓였다.
'별이가 잠수를 오래 타지 않아서 다행이야.'
다시 고요한 시간. 나는 혼자 캠핑카 '파란 바람' 안에 들어왔다. 오각형의 작은 랜턴을 켰고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는다.
‘내가 이 책을 몇 번을 읽었을까? ’
초등학교 4학년 무렵부터 지금까지 일곱 번 정도 읽었던 것 같다. 중간중간 책장을 펼쳐서 특정 페이지만 읽은 것까지 합치면 정말 오랫동안 여러 차례 이 책을 뒤적이며 보았다고 할 수 있다.
노인이 파도와 배고픔과 싸우며 목숨을 걸고 커다란 고래를 잡고 환희했지만 결국 고개를 끌고 선착장에 도착하여 보니 거대한 고래는 뼈만 남고 노인은 온몸에 상처만 남았다.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이 장면을 머리에 그려보며 내가 살아갈 인생도 고래를 잡으려 고군분투하는 과정이 될 것이고 마침내 운이 좋아 잡는다 하여도 결국 뼈다귀와 상처만 남고 쇠잔해진 체력으로 남은 날을 살아가게 될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장면, 희망을 안겨준 것은 이 책에 나오는 소년과 노인의 우정이다. 선창가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동전 몇 푼을 받는 소년은 노인을 위해 날마다 깡통에 따끈하게 데운 우유를 사다 준다. 소년에게는 귀한 돈이고 날마다 우유를 사려면 적지 않은 비용이 들 텐데도 소년은 노인이 회복할 때까지 날마다 노인을 찾아가고 우유를 사다 준다.
'인생은 쓸쓸한 것이다. 다 부질없는 짓이야. 결국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거야.'
초등학교 4, 5학년 때부터 이런 염세적인 세계관을 갖게 된 것은 순전히 '노인과 바다' 덕분이다. 그 장면을 읽을 때 가슴속에서 휘이잉 바람소리가 들렸다. 결국은 거친 파도와 싸우다가 뼈만 남은 고래를 끌고 지친 몸으로 항구에 도착하는 것, 그것이 인생이라고 한숨을 쉬고 있을 때 내 마음을 어루만져 준 것이 바로 소년의 등장이다.
서로 챙기고 존중하며 세대를 뛰어넘는 우정의 관계를 유지하는 노인과 소년의 모습에서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웃었다. 안도의 한숨,
"그래, 이런 소년 같은 인간성을 가진 사람이 있어서 인생은 살만 한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을 만나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세상에서 만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 자기 가족을 위해 작은 손해도 허용하지 않았다. 아무리 친해도 성적 앞에서는 우정도 없었고 자신이 불리하다 싶으면 친구끼리의 비밀도 언제든지 펼쳐 보였다. 그것은 나이를 한 살 더 먹을 때마다 사람에 대한 신뢰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앞에 나타난 것이 별이이고 그 아이는 무언가 달랐다. 말수가 없었지만 꾸며 말하지 않았고 숨기지 않았다. 나는 친구가 많지 않다. 누런 화초잎 같은 시든 관계는 모두 잘라 버렸다.
"싱싱한 화초의 잎 같은 사람만 남겨서 내 인생의 산소포화도를 높여보자. 매연은 이제 그만. 화려한 뱀의 혓바닥을 가진 사람 때문에 나는 더 시상 상처받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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