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업도에서 배를 타고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로 향한다. 배가 굴업도를 떠나는 순간, 섬의 능선은 안개에 스며들며 서서히 멀어져 간다. 오늘따라 잔잔한 바다는 유리처럼 맑고, 햇살은 물결 위에 금빛 실을 수놓는다.
그 빛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별이와의 대화가 생각난다. 일 년 전쯤 홍대입구 한 카페에서 공부를 하던 별이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김초엽의 소설 읽어봤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응. 읽어봤지. 거기에 여러 편의 단편이 실렸는데 나는 그 소설이 제일 인상적이었어. 거기 우주인이 되기 위한 피나는 훈련장면들도 나오지. 그런 고통을 감수하면서 우주에 가고 싶었을까? 호기심이란 게 그렇게 강력한 걸까 신기했어. 그런데 왜 우주인 훈련을 다 받고도 주인공의 고모는 우주로 출발하기 바로 전에 사라졌을까?"
"고모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남겨지기를 선택했어. 왜?"
"두려움 때문이지 않을까? 우주로 가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잖아. 지구에 남겨진 모든 것들이 고모의 마음을 붙잡은 거야. 너라면 어떨 거 같아. 우주에 대한 강한 호기심에도 불구하고 지구에서 살기를 선택한 거지."
"고모는 물고기 인간이 된 거야. 그것도 그녀의 선택이지 않을까. 심해에서도 견딜 수 있고 편안하게 숨도 쉴 수 있게 되었잖아. 그녀는 바다로 떠났어. 우주 대신에 바다로."
별이는 '바다로'라고 한 번 더 읊조리듯 말했다.
나는 장난기가 발동하여 책을 소개해주는 유명 유튜버를 흉내 냈었다.
"여기서 바다는 말이죠. 우주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볼 수 있어요. 우주가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세계이고 그렇게 빠른 속도는 관계를 이어갈 수 없게 하며 자신의 감정을 희생시켜 건조한 인간으로 살게 합니다. 고모가 두려움 때문에 우주선 출발 직전에 도망친 것이 아니라 고모는 선택한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느림과 관계의 연결을 말입니다."
그때 나도 바다를 선택할 거라고 말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지금 바다를 선택해 느리게 살아가고 있다. 어느덧 배는 항구에 멈추고 큰 백팩을 멘 손님들은 바삐 각자의 집으로 향한다. 나는 인천 여객터미널에 주차해 놓은 캠핑카 파란바람을 타고 할아버지가 사시는 보령시 청라면으로 향한다. 날마다 나와 함께 있던 파란 바람은 항구에 가만히 서서 나를 기다렸을 것이다. 아니면 '이거 혼자여서 자유롭고 편안하네'하면서 오랜만에 꿀잠을 잤을 수도 있다.
인천항 여객터미널 도착해서 간단하게 커피 한 잔에 도넛을 먹고 바로바로 보령시로 향한다. 할아버지는 보령시에서도 한 참을 들어가면 있는 외딴 마을에 사신다. 출발한 지 3시간쯤 걸려 나는 청라면의 시골마을에 도착했다. 차를 주차해 놓고 오솔길을 따라 숲을 통과하여 30분은 족히 걸어 들어간다.
울창한 초록을 헤치고 가니 거 멀리 낡은 셔츠에 헐렁한 바지를 입은 할아버지가 보인다. 나뭇가지를 헤치며 걸어가자 할아버지가 인기척을 느끼고 이쪽을 본다.
"우리 손녀, 어서 오너라."
나는 스무 살이 넘었는데도 강아지처럼 깡충거리며 할아버지 품에 안긴다.
"아이구. 옷 버린다. 나 흙투생이여."
할아버지는 이리저리 나를 살펴보더니 환하게 웃으시며 말씀하신다.
"여행 다닌다고 하더니 더 까무잡잡 해졌네. 건강해 보이는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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