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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 내리는 날의 산책

by 남효정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보라색 우산에 초록색 줄기와 분홍꽃이 그려진 우산을 같이 쓰고 우리는 산책한다. 아침이고 쌀쌀한 날씨에 바로 산책을 하기보다는 먼저 몸을 좀 녹이기로 한다. 탁 트인 창문뷰를 자랑하는 카페에서 사이즈 업한 라떼 한 잔,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키고 가져간 구운 계란 하나에 제법 향긋한 귤도 두어 개 테이블 위에 올린다.


"너도 바쁘고 나도 할 일이 많은데 자꾸 놀자고 하면 안 돼."


옆지기는 늘 마음이 바쁘다. 나는 바빠도 마음에 평정심을 제법 잘 유지하는 편이다.


"일이 많을수록 걸어야 해. 이렇게 쉼표를 찍고. 그래야 일도 더 잘 되지."


일주일 동안의 이런저런 이야기, 토요일에 교육부 연수 다녀온 이야기, 아이들과 부모님 이야기 등을 하며 우리는 통창 넘어 날씨를 살핀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진다. 창 밖에 하늘색 비옷을 입힌 불독을 끌고 가는 중년의 여성이 보인다. 어찌 된 일인지 불독은 유리창 너머 우리가 앉은 위치 정도에서 온 힘을 다하여 자리에 멈추어 선체로 끌고 가려는 주인의 힘에 저항한다.


"산책 가기 싫은 모양인데. 컨디션이 별로인 모양이야."


"저것 봐. 너무 억지로 끌고 간다. 애완견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단박에 알 수 있어."


"불쌍하다. 동물이고 사람이고 서로 관계 맺을 때 그 중심에는 존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해. 비가 온다고 예쁜 비옷을 입히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목줄을 저렇게 무자비하게 잡아당기는데."


"중요한 건 저 개는 비옷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는 거야."


일요일 오전의 카페는 제법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가 백색소음으로 들린다. 우리는 창문 쪽에 앉는 것을 좋아해서 카페 문을 밀치면서 창문 쪽 자리가 남아있기를 바라곤 한다.

한 시간쯤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우리 자리가 나는 것을 보고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는 딸을 데리고 온 엄마가 활짝 웃으며 다가온다. 내가 미소를 지으니 엄마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나도 밝게 웃으며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모르는 사이지만 우리가 앉았던 자리에서 딸과 엄마의 다정한 대화가 가득 피어나길 기대했다. 나의 옆지기는 조금 헝클어진 곱슬머리이고 머리가 부쩍 많이 빠져 머리숱이 적어졌다. 나는 수수한 롱웨이브 헤어다. 아직 머리숱도 건재하다. 우리는 이야기를 나무며 대왕참나무 갈색잎과 느티나무 노란 잎, 빨간 단풍잎이 떨어지는 길을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간다.


빗속을 달리는 사람들.

저들은 달리기의 고수다. 빗방울이 굵어져도 흔들림 없이 달린다. 사람의 심리는 참 이상해서 누군가 달리면 나도 달리고 싶다. 고수가 한참 앞질러 가자 나도 빗속을 100걸음 정도 달려보았다. 걷는 것보다 한결 몸과 마음에 생기가 더해지는 느낌이다.


KakaoTalk_20251026_141705277_10.jpg 노랗게 물드는 마로니에 나무_사진 2025.10.26. 남효정


"마로니에 나무 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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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바로, 여기서 행복한 일상을 살아가는 남효정의 브런치입니다. 음악과 문학을 사랑하는 가족이야기, 자녀와 친구처럼 살아가기, 어린이와 놀이, 교육, 여행 이야기 등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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