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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내음 가득한 밭에서

by 남효정

사실 나는 부모님의 농사에 큰 도움이 안 된다.

먼지 알레르기가 있고 농사와 관련하여 일머리가 좋지도 않다. 하지만 가끔 토요일 아침 일찍 부모님이 사시는 시골집으로 행한다. 교통사고로 회복 중이신 엄마가 식사를 잘 하실 수 있도록 맛있는 음식을 해 드리고, 혼자서 농사일을 하면서 엄마를 돌보아야 하는 아버지의 말벗이라도 되어드리려는 마음에서다.


동생과 전통시장 엄마 단골집에서 장을 봐서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한식, 중식, 제과제빵 자격증 보유자인 동생이 요리해준 점심을 먹고 바로 밭으로 간다. 프로 농부처럼 장갑에 모자에 잔뜩 차려입고 우리와 아버지가 도착한 곳은 생강밭이다. 아버지는 어젯밤 비가 내려서 진흙이 땅땅하게 달라붙은 생강을 삼발이를 사용해 캔다. 삼발이는 삼지창 모양의 농기구로 이번처럼 생강을 수확할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삼발이는 뾰족한 세 갈래 끝으로 흙을 깊이 찔러 넣어 생강 주변의 흙을 부드럽게 풀 수 있다. 생강을 직접 건드리지 않고도 흙을 들어 올릴 수 있어 손상 위험이 줄어든다.


"생강이 최대한 쪼개지지 않게 큰 덩어리 그대로 흙만 털어낸다는 생각으로 해라. 잘게 쪼개 놓으면 상품 가치가 없어. 구강은 여기 이 비료포대에 담고 벌레 먹었거나 썩은 것은 여기에, 좋은 것은 여기 새 마대자루에 넣어. 알았지?"


“넵! 잘 알겠습니다. 아빠.”


대답은 언제나 시원하게 잘한다. 아버지는 요즘 대세 남성의 성격인 다정함과 섬세함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어 작은 것도 하나하나 설명해 주신다. 내가 삼발이를 사용해 생강 포기를 뜨려 하자 나에게 손짓하시더니 이쪽으로 오라 하신다.


"거기는 흙이 딴딴해서 힘드니 이 쪽에서 해라. 여기는 흙이 포실포실 해. 하다가 힘들면 안 해도 되고 가서 감이나 몇 개 따고 놀아."


"하다가 힘들면요. 일단 열심히 해보고요. 아빠."


사실 나는 어깨가 좀 아프다. 파스를 잔뜩 붙이고 아픈 걸 최대한 들통나지 않게 하려고 애쓰면서 말한다. 동생도 정형외과에서 어깨주사를 맞고 왔다. 아버지가 캐서 1차로 흙을 털어주신 생강을 따는 것은 그래도 좀 나았다. 엄마가 앉는 동그랗고 빨간 일 의자에 앉아서 태어나서 처음 생강 뿌리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KakaoTalk_20251101_165104035_04.jpg 생강 뿌리를 자세히 보다_2025.11.1 사진 남효정


"생강 뿌리가 잔뿌리가 아니라 굵게 달리는 게 신기하다. 생강 뿌리 태어나서 처음 봐."


"언니, 정말? 태어나서 처음 본다고?"


"웅, 그 정도로 일을 안 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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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바로, 여기서 행복한 일상을 살아가는 남효정의 브런치입니다. 음악과 문학을 사랑하는 가족이야기, 자녀와 친구처럼 살아가기, 어린이와 놀이, 교육, 여행 이야기 등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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