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햇살을 온몸에 받으며 가을길을 두 발로 꼭꼭 밟으며 걸어본 사람은 안다.
'행복이 뭐 별 것인가? 이것이 행복인 것을.'
살갛에 닿는 따사롭고 부드러운 햇볕과 작은 바람에도 춤을 추듯 날리는 색색으로 물든 나뭇잎.
그래서 나는 집에서 1시간 6분 거리에 있는 강연 장소까지 걸어서 가기로 한다. 4시 반 즈음에 정장에 백팩을 메고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선다. 우리 동네는 넓고 쾌적한 공원을 가지고 있고 옆으로 조금 나가면 어마어마한 학원가가 아이들을 삼키는 곳이다. 첫 아이 첫 돌 될 즈음 이 동네 놀이터에 반해 학원가를 보지 못하고 이사 온 나는 아이들이 성인이 된 지금까지 되도록 이곳에 살고 있다. 다양한 꽃과 나무로 아름답게 조성된 공원에 매료되어서 말이다. 학원은 되도록 멀리하고 놀이터와 공원을 가까이 하면서 살아온 것 같다.
가을이 만연한 거리는 샛노란 은행잎이 소복소복 쌓이고 붉은 단풍잎과 갈색의 대왕참나무잎과 느티나무 잎들로 그야말로 황홀경이다. 잘 정돈된 도시와 자연스러운 조경이 만나 세련되고 아름다운 도시의 가을을 만들어 낸다. 내가 낸 세금으로 관리되는 우리 동네의 이곳저곳을 걸으며 가을을 충분히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큰길을 따라 10분쯤 걸어가니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들이 봇물처럼 교문을 빠져나와 낙엽 흩날리는 길을 걷는다. 갇힌 공간을 나와 열린 공간을 걸으며 깔깔거리고 들까부는 모습이 그저 예쁘고 사랑스럽다. 자전거를 타고 대여섯 명의 남학생이 지나가고 똑같이 검은색 후드를 입은 학생커플이 정답게 이야기하며 걷는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정답다. 서로 보폭을 맞추어 걷는 걸음이 어여쁘다. 붕어빵 가게 앞에서 빵이 구워지기를 기다리는 표정에 즐거움이 가득하다. 둘만 있으면 세상 어디로든 달려갈 것 같은 신뢰로운 눈빛이 든든하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 따뜻한 렌즈가 씌워진다. 새들은 더 이상 울지 않고 노래하게 되고 가게마다 울려 퍼지는 사랑노래가 나를 주인공으로 한 것만 같다. 답답한 학교도 그 아이를 만날 수 있는 달콩한 공간이 되고 지친 하굣길도 서로 이야기하며 거니는 멋진 데이트 코스가 된다.
아이들이 있는 풍경은 생동감이 넘친다. 남학생끼리 장난으로 주고받는 거친 제스처에 깜짝 놀라 바라보면 정작 자신들은 깔깔 거리며 웃고 있다. 어찌 되었건 자유의 시간, 집으로 갔다가 다시 학원에 가야 하지만 잠깐의 시간 동안 아이들은 펄떡 거리며 살아있다.
'우리는 갇혀있어요. 커다란 새장에요. 날아갈 수 없어요. 새장 안에서만 푸드덕거려야 해요.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없고 원하는 것을 할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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