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로다짓기 최주선 Jun 30. 2021

내 아이도 소아 강박증이었나 보다.

내 금쪽이도 그랬었구나.


                                                내 아이도 소아 강박증이었나 보다.



얼마 전  TV 프로그램인 요즘 육아 금쪽이 프로그램을 봤다.

손 씻기에 집착을 하던 금쪽이의 모습이 나왔다.

강박증으로 힘들어하는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쭉 보면서 아이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

 사이에서 상호작용하는 엄마는  얼마나 힘들었을지 공감이 었다.


어린 자녀들을  키우고 있는 육아맘들은 어느 부분 이상 모두 다 공감할 것 같다. 

'불안' 엄습해 오는 것은 불가항력적이다.

첫째 별이가 어렸을 적에 분리 불안이 심했던 기간이 있었다.  2년간 최고 피크였다.

그때는 아이의 불안에 대해서 이해할  없고, 너무 답답하고 힘들었다.


연년생 아이 둘을 키우던 당시 나도 너무 지쳐 있었다. 아이의 불안이 찾아와 지나치게 군다고 생각할 때마다 아이의 불안에 대해서는 조금만 공감하고 아이가 불안으로 느껴질 때마다 보였던 행동에 대해 나무라는 것은 컸던  같다.


우리는 3층 건물 빌라의 2층에 았다.

바로 아래  앞에 세워진 차를 뒤차가 나가도록 잠시 빼주러 내려가면 난리가 났다.

 계단만 내려가면 되는  앞에 쓰레기만 버리고 오면 되는데 그 찰나를 참지 못했다.


 앞에 3분 거리의 편의점에 잠시 다녀오는  조차도 혼자서는 나가지 못하게 막는 아이의 태도에 진절머리가 다.


춥디 추웠던 겨울, 한 번은 윗집에서  빼 달라는 전화가 와서 잠깐  빼러 가야 했다. 내복만 입은 아이들 옷을 다 입혀서 내려갔다 오는 일이 거웠다.

하는 수 없이 아이들을 집에 놓고 잠시 내려갔다 온 5분, 그 사이를  참고 엄마를 목놓아 부르며 우는 아이가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대체 뭐가 그렇게 불안했던 걸까...?


아이들이 좀 더 어렸던 3-4세 무렵에는 잠깐씩 1-2 사이 잠시 자리를 비우는 일에 민감하지 않았던 아이가 어느 날부터 갑자기 보이는 행동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됐던 것이다.


그때 한참 고민 끝에 찾았던 원인은, 내가 벌려 놓은 일에 대한 아이의 부정적 경험에 있었다.


 아이가 5, 작은 아이가 4 있을 때 일이다.

남편은 근 후, 나는 출퇴근 길이 차를 타고 아이들 등 하원을 시켰다.


비가 많이 오던 ,

출근을 하기 위해 아이 둘을 차에 태워 둘째는 가정 어린이집에 , 첫째는 민간 어린이집에 각각 내려 주기 위해 차를 몰고 아파트 주차장에 세웠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아이 둘을 데리고 나갈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아이에게 문 앞 50미터쯤 되는 아파트 1 입구 어린이집에 동생을 내려 주고 올 테니 차에서 잠시 핸드폰을 보면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당부하고 얼른 뛰어서 아이를 내려다 주었다.

막 뛰어서 돌아오는데 아이는 낯익은 할머니에게 안겨 울고 있었다. 그분은 어린이집이 있는 같은 동에 살고 있는 아이의 할머니셨다.

너무 놀라서 뛰어 오면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묻자,

할머니는 지나는 길에 아이가 차에서 울고 있어서 두드리니까 아이가 할머니는 알아보고 차에서 내렸단다.  혼자 뒀냐고 나를 나무랐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아이를 데리고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금방 바로 앞에 보여서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아이가 무서웠나 보다 말하며 상황은 마무리되었다.


 일이 있은 후로부터 아이에게 분리불안이 생겼던  같다. 아이는 한동안 깜깜한 게 무섭고, 집에 있는데 누가   다고 했다. 누군가 창문으로 들어올 것 다며 자주 말했다.

거의 2 정도는 그랬던  같다.  


지금 보니 내가 아이에게 불안을 느낄만한 빌미를 제공한 거다.  별이는 강박증은 아니었지만 불안이 심했던  같다.


엄습하는 불안, 침습하는 불안이 아이에게 생겼었던 것이라는 것을 금쪽이  편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세상에…. 그랬던  나는 몰랐던 이다.

 시간을 지내면서 아이에게 수없이 괜찮다.

괜찮아질 거다라고도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그 보다 뭐가 무섭냐, 동생도 있는데  무섭냐, 아무도 안 올라온다, 우리 집에는 아무도 못 들어온다고 수없이 이야기했던  같다.  

어렸을 때부터 워낙 똑 부러지고 야무진 아이가 그런 일을 못 참는다는 게 이해가 안 됐던 것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아이는 괜찮아졌고, 어느 날 엄마에게 스스로 쓰레기 버리러 혼자 다녀와도 좋다며 허락을 해주었다.

아이는 스스로도 자신이 이제   커서 이겨낼  있다는 뿌듯해했다. 

칭찬을 얼마나 많이 해주었던지,

솔직히 해방된 듯한 기분이었다 ㅎㅎ.

지금도 그때의 일들을 이야기하면서 회상하곤 한다.  


가만 생각해보니 나도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밤마다 집의  창문을  단속하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잠자리 들기 전 , 아빠는 항상 단속을 하셨다. 그리고 방에 들어가시면  내가     확인을 했었다.  

밤이면  도둑이 들어올 것만 았다.

 당시 우리 집은 주택이었고, 대문 열고 들어오면 바로 이어지는 계단 10가 있었다. 그 계단을 오르면 바로 현관문으로 연결됐다.

창문은 나무 프레임에 단창이었고, 열쇠 모양 같이 생긴 잠금장치를 돌려서 잠가야 했다.

그 당시, 동네 좀도둑이 으니 조심하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 소문 덕인지 밤마다 같은 꿈을 자주 꿨다. 캄캄한 , 내가 문을  잠그려는 순간  문 사이로 도둑이  손을 었다. 기겁하면서  꿈에서  일이  자주 있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항상 같은 사람에게 쫓기는 여러 번 다.

그래서 더욱 창문 단속을 열심히 을까,

지금 보니 그것도 불안의 일종이었다.  심하게 진행되었다면 심각한 강박증으로 이어졌을  같다.

나이가 들어가고 세월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없어졌지만, 외국에 나와 살면서 다시 밤에 문단속을 열심히 하게 되었다. 의식적으로 말이다.


이런 경험을 가진 내가 아이의 불안에 대해서 깊이 공감해 주지 못했던 게 못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방송을 보면서  손이 더러워지는 게 싫어서 슬라임도 못 만지던 금쪽이 가 강박과 불안을 이겨내고 슬라임을 꺼내서 노는 순간  마음이 너무 뿌듯했다.  


방송을 볼 때마다 느낀다.

아이와 부모의 변화가 단번에 일어나는 것은 아닐 게다. 그만큼 쏟는 노력과 애씀의 결과가 긍정적임에  기분이 좋다.  


부모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아이를 위한 감정을 읽어주고 공감해주어야 한다.

아이에게 안정감을   있는 울타리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 항상 옆에서 아이에게 안정된 감정과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공감하고 기다려줄 수 있는 태도,

부모 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 필요한 태도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외할머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