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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Jun 30. 2021

외할머니.

코로나 백신, 그게 문제 였을까?

                                                                             (unsplash)


꼬맹이 시절, 명절 때면 엄마 아빠를 따라 시골 외할머니 댁에 갔었다. 

엄마 아빠는 전북 순창 윗 동네, 아랫 동네에서 자라셨고,

어린 시절 별로 친하지는 않았지만, 서로 아는 사이였단다. 

그 좁은 시골 한 동네에서 몰랐다는게 더 이상할 정도다. 



신기하게도 인연이 되려고 하니, 

성인이 된 후 서울에 올라와 아빠는 택시기사로 엄마는 손님으로 다시 재회했다. 

다시 시작된 인연은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여튼, 엄마 아빠는 고향이 한 곳이라 나는 시골이 한 곳이다. 

어렸을 땐 다른 사람들도 모두 시골이 한 곳인 줄 알았다.

외가 친가 시골이 두 곳이라고 말하는 친구들의 말이 이해가 안갔다. 


덕분에 엄마 아빠 따라서 시골에 갈때마다 아랫동네 외할머니 댁과 윗 동네 큰 아버지댁에 가곤 했다. 

명절 때 시골에 가면 4남 3녀의 엄마 형제들가족이 몰려갔고 잘 곳이 부족했다. 

때로는 다른 외가 친척 식구들이 잘 수 있게 우리 식구가 모두 큰 아버지댁으로 올라가기도 했다. 

하지만, 외할머니를 좋아했던 나는 할머니 집에서 자는 걸 좋아했고,

그럴 때면 엄마는 나만 외할머니댁에 두고, 아빠랑 오빠랑 큰 아버지댁에 가서 잠을 자곤했다.  

하루는 엄마 혼자 가라고 해놓고 할머니랑 자려니 엄마가 보고 싶어서 할머니에게 엄마한테 데려다 달라고 떼를 썼다. 

가로등 하나 없던 시골길 밤길은  손전등을 켜고 바닥을 비추면서 길을 찾아가야만 했다.


 "지금 나가면 망태 할아버지가 이렇~게 해서 집게로 집어가! 무셔~!" 


어떻게든 엄마한테 안데려다 주고 그냥 재우려던 할머니는 한 손으론 내 손을 잡고, 

한 손으론 손전등을 비추면서 망태기 할아버지 흉내를 내곤 했다. 

그 때만 해도 망태기 할아버지인지 망탱이 할아버지인지도 구별도 못할 나이, 

그저 무서운 할아버지인가보다 했다. 

할머니가 겁을 주며 말할 때면 망태기 할아버지가 등장했고, 

엄마, 아빠에게도 망태기 할아버지에 대해 듣고 자랐다. 




유난히 외할머니를 좋아하고 자라 따랐던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외할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있다. 

귀여운 우리 할머니, 포근한 우리 할머니. 

할머니는 둥근 얼굴과 둥근 체형에 검은 파마 머리를 하셨고, 

보라빛이 들어간 안경을 쓰신다. 



대학생이 되던 그 해, 

난생 처음으로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전주행 시외버스를 타고 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둘이 계신 집에 혼자 놀러 갔을 때, 

할머니는 직접 타래과도 만들어 주시고, 손두부도 만들어 주셨다.

그 때,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딱딱하지만 바삭한 타래과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끈하고 고소한 손두부는 내 인생 통틀어 가장 맛있었다.

사진 찍을 때면 브이 해야 한다고 엄지와 검지를 편채 브이를 하고, 

금니빨이 보이게 활짝 웃는 할머니 표정이 선하다. 

남아공으로 가게 된다며 삼남매를 데리고 남편과 할머니를 만나러 갔을 땐 

1박 2일 머무는 동안 내내 눈가가 촉촉하셨다.  

떠나오던 날 마을 주민회관 앞에서 할머니 손을 잡고 기도해드릴땐 할머니가 

결국 눈물을 참지 못하고 터뜨리셨다.

떠나오면서 우리 다시 만날 것이니 슬퍼말고 건강하시라고 말씀드리고 뒤 돌아 오는데

 울컥 울컥 눈물이 났다.  

세상이 좋아져서 보이스톡을 이용해서 화상통화하면서 지난 4년간 안부인사도 묻고, 

얼굴 보며 인사할 때마다 세상 참 좋아졌다며 얼굴 봐서 좋다던 할머니, 

우리 강아지들 잘 있냐고 물으실 때마다 할머니 증손주 강아지들 보다 나를 먼저 찾으셨던 할머니, 


한달 전 서울에 올라오셨다고, 엄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나 벌려 놓은 집안 일이 바빠 남편에게 전화기를 넘기고 마저 일을 봤다. 

그 날이 마지막이었다. 

좀 더 길게 인사할걸...... 


할머니는 코로나 백신 접종 후, 고열과 폐에 심한 염증이 생겨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이제 2주일이 되었고, 병원 측에서는 생명연장포기각서를 받았으며, 

할머니는 천국 갈 준비를 하고 계신다. 

지난 주까지만 해도 이겨내고 일어나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엄마 말로는 앞으로 열흘 , 아니 1주일안에 아무래도 떠나실 것 같다고 했다. 

믿음이 굳건한 권사님이신 할머니는 이제 당신을 천국으로 갈거니 염려 말라고 하셨다. 

그리고, 사랑한다고 엄마에게 손짓까지 했고,

다른 자식들 걱정도 하셨다. 

지금 상황에서는 돌아가셔도 코로나로 인해 가족들이 할머니 시신을 보기도 전에 

화장해야 되기 때문에 할머니는 아무도 못 만나고 가시게 될것 같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기도 뿐이다. 

그리고, 천국 소망하는 우리는 훗날 다시 만나게 될 약속을 붙든다. 

다시 일어나셔서 얼굴 한번 보고 이야기 해보면 좋으련만, 

맘 단디 먹으라고 엄마에게 말해놓고, 

할머니를 못 볼것 같은 생각에 글을 쓰는 지금 눈물이 앞을 가린다.


코로나 백신만 안 맞았어도, 

할머니 더 사실 수 있지 않았을까?



모든 것엔 때가 있고, 모든 것엔 기한이 있다. 

심을 때와 거둘 때가 있으며, 헐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다는 전도서의 말씀이 기억이 난다. 

생명이 생명의 주관자에게 있으니, 그저 다만 우리는 기도 할 뿐. 


나는 그저 할머니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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