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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May 30. 2023

엄마는 아이의 과거가 그립다

과거가 없는 사람은 없다




요새 부쩍 아이들 어렸을 때 사진을 자주 봅니다.

젖살이 사라지고 아기티가 벗어진 아이들 얼굴을 볼 때면 딱 두 돌 무렵의 모습이 자꾸 그립습니다.

아이들이 예뻐지는 시기가 몇 번있는데, 제 생각에 최고조에 달할 때는 막 말이 터져서 급격하게 수다스러워질 때입니다. 혀 짧은 발음인데 아이 다운 단어와 어른스러운 용어를 배워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르면서 섞어 쓰는 시기, 아장아장 걷다가 넘어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하지만 사랑스러움을 사방에 흘리고 막 뛰기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그립습니다.


저 어렸을 때만 해도 집에 있는 앨범이 아니면 지난날을 볼 수가 없었죠. 지금은 구글포토에서 자동 알림 해주고, 각종 SNS 앱에서 1년, 2년, 3년도 넘은 기록을 알려줍니다. 게다가 모아서 하나의 영상으로도 만들어 음악까지 넣어주니 감동의 도가니가 따로 없습니다. 일부러 찾아보고 싶어서 찾아보기도 하지만 이렇게 친절하고 편리하게 알려주니 잊을만하면 추억에 잠깁니다.


좋은 점은 아이의 어린 시절 모습과 그 당시의 추억을 상기할 수 있어 좋습니다. 별로 좋지 않은 점은 너무 많이 커버린 지금의 아이보다 어린 시절의 아이 모습을 비교하면서 그리워한다는 겁니다. 지금도 충분히 사랑스럽지만 어린 시절에만 느낄 수 있었던 아기아기한 모습은 없으니까요. 자칫 말 잘 못하면 "엄마는 지금 우리는 별로 싫어요?"라는 말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아니라고 손사래 쳤죠.


결혼 전과 결혼 초에는 저의 어린 시절의 사진과 학창 시절의 기록을 종종 살폈습니다. 방 정리하거나 짐 정리를 해야 할 때 주로 이건 무슨 박스인가 싶어 꺼내봤죠. 그럼 켜켜이 쌓인 편지 꾸러미와 서로 주고받은 증명사진, 심지어 교환 일기장이나 롤링페이퍼도 나왔습니다. 청소해야 하는데 일단 그 안에 내용이 궁금해 펼치고 있으면 시간을 흐릅니다. 잠시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대체 뭐 하려고 사진을 이렇게나 많이 받아놨나 싶기도 합니다. 지금도 친정에 가면 몇 가지는 남아있습니다. 엄마가 되고 보니 내 과거를 추억하기보다는 아이들의 과거를 더 많이 추억합니다.


며칠 전에 아이들과 저녁식사를 하다가 질문을 던졌습니다.


"너희의 최초 기억은 뭐니? 가장 기억에 남는 어린 시절의 사건이 있어?"


아이들은 머뭇 거리면서 "몇 살 때요?"라고 되물었습니다. 이제 13년, 12년, 8년 살아온 아이들이 과거가 기억이 안 난다고 하며 한참을 고민합니다. 아무거나 인상적인 장면을 이야기해 보라고 하니 기억이 안 나나 봅니다. 가끔 물어보지 않아도 "엄마 있잖아요. 그때......"라며 종알거리더니 생각해 보라니까 딱히 생각나는 상황이 없나 봅니다. 그래서 제 이야기를 해주고, 남편도 본인의 기억을 더듬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제 어렸을 적 최초 기억은 기저귀를 찬 채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데 한 입만 먹겠다는 엄마가 반입을 먹어버려서 분하고 원통해 대성통곡을 하며 운 기억입니다. 그렇게 어렸을 적 기억을 어떻게 하냐고요? 기억이 납니다. 사실 그 기억은 부모님으로부터 듣고, 남겨진 사진 한 조각과 조합된 기억입니다. 말을 듣고 보니 엄마가 아이스크림을 사 줄 때마다 내가 왜 장롱 사이의 틈에 숨어서 아이스크림을 먹어야 했는, 재봉틀 아래 들어가 쭈그리고 먹었었는지 기억이 납니다. 이 이야기는 자라면서 내내 회자되었던 이야기니까요. 또 다른 기억도 많은데, 그건 이야기를 들어서가 아니라 제 스스로 기억해 내는 기억들입니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아이들과 함께 기억의 조각을 꺼내 볼 생각입니다.



글 쓸 때, 글감을 끌어다 쓰기 참 좋은 건 나의 과거입니다.

단지 그냥 있었던 사건만을 기억해내기만 해도 기억과 글이 만나 현재의 나와 만날 수도 있습니다. 머릿속에 남은 당시의 상황과 환경, 색깔, 풍경 등을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풍성한 표현을 쌓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나의 좋은 과거이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이든 글로 풀어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는요.


이번에 열흘간 <글로나짓기> 재능기부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모집은 첨삭을 해주고 쓴 글을 윤문 해준다고 했지만, 본래 목적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물론, 좀 더 나은 문장을 만들기 위해서 교정을 봐드렸습니다.

하지만, 본래 목적은 일단 글을 쓰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쁜 현대인들은 자기를 돌아볼 시간조차 없이 바쁘게 살아갑니다. 나를 곰곰이 앉아서 생각해 볼 시간이 적습니다. 쳇바퀴 돌아가 듯 흘러가는 일상 목표를 향해 정신없이 뛰어가는 매일 나의 과거는 그저 언제 한번 사진첩 들춰보며 추억하는 게 전부죠. 잘 들여다보면, 엄마들은  사진 보며 나의 지난날을 추억하기보다 아이들의 과거를 추억하고 그 시간을 그리워합니다. 그럼 나는요? 내 과거는 부모님이 기억해 주나요? 나 스스로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이미 켜켜쌓인 인생 속에 나의 발자취를 되짚어 보면 무수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거든요.

내가 정말 무엇을 원했는지 생각조차 못 하다가 과거를 돌아보면 꿈도 추억도 감정도 장소도 모두 기억에 떠오릅니다. 어렴풋이라도 그 정취가 느껴지곤 합니다. 이번 글로나 짓기 과정을 마치면서 후기를 보니 회원들이 제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 주었습니다.  


회원들은 열흘 간 나에 대한 생각을 했습니다. 내 과거를 돌아봤습니다. 내가 가진 강점은 무엇인지도 볼 수 있었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이 과정을 통해 새로운 꿈을 갖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안에서 꿈틀거리는 소망을 이루기 위해 다시 뛰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후기를 보니 저도 하길 잘했다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이 머지않아 고개를 숙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필요한 건 계속해서 멈추지 않고 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야 합니다. 여기서 멈추면 잠시 반짝 비췄다 사라지는 하늘의 별 밖에 되지 않으니까요.


6월에도 봐드릴 예정입니다. 단, 6월 책 쓰기 무료특강에 참여하고 <글로다짓기 예비 작가 방>에 들어와 계신 분들에 한 해서만요. 저도 시간이 많아서 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하나 잘 들여다봐야 하고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이유는 이 과정을 통해 글을 통해 또 다른 꿈을 꾸고자 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라이팅 코치니까요 ^^



<글로나 짓기 회원후기>

https://blog.naver.com/with3mom/223115033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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