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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Jul 10. 2023

익숙함과 무뎌짐 사이

아름다움도 행복도 시간이 지나면 모두 익숙해진다. 




아름다움도 행복한 시간도 시간이 지나면 모두 익숙해진다. 
익숙함은 과거에 맛본 만족감을 희미하게 만들고 감흥을 없앤다.
이미 가진 것은 원하지도 않고, 보지도 않는 것이다.
<모든 삶은 흐른다>, -'소금', 밀리 91p-


-익숙함, 무뎌짐- 


6년 전, 남아공에 와서 처음 갔던 KFC에서 먹었던 짜다 못해 써서 못 먹을 것 같았던 치킨 맛을 경험했다. 한국의 교촌 치킨 비주얼과 비슷하게 생긴 '던컨 치킨 윙'은 외국의 특유의 짠 소스로 양념된 치킨다. 호기심에 혹시나 기대했던 맛일까 싶어 먹었던 던컨 치킨 윙은 그 뒤로 다시는 먹지 않았다. 그렇게 5년이 넘도록 안 먹던 메뉴를 먹었다. 지인은 이 맛있는 걸 왜 안 먹냐면서 다시 먹어보라고 권유했다. 첫 기억이 좋지 않았기에 멀리했던 메뉴지만 시도했다. 그런데 웬걸! 맛있는 게 아닌다. 남편도 나도 심지어 은다우 삼 남매도 맛있다며 4조각만 산 걸 후회했다. 


처음 와서 먹었던 남아공 브랜드의 데보니얼스 피자의 짠맛을 기억한다. 이 역시 소금을 들이부은 건지 짜도 너무 짜서 한쪽 먹고는 더 먹지 않았다. 그리고 그 피자 집에서는 두 번 다시는 주문하지 않았다. 다른 피자도 마찬가지로 짜지만 그나마 많이 짜지 않은 피자집을 찾았고 종종 사 먹었다. 어느 날 일을 보고 집에 들어오던 날 문 연 곳이 데 보니얼스 피자집뿐이었고, 선택의 여지가 없어 피자를 주문했다. 그날 선택했던 메뉴는 '멕시칸 피자' 얼마나 매콤하게 맛있었는지 그 뒤로는 종종 데보니얼스를 찾는다. 처음에 먹었던 그 날 만큼은 짜게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 와서 경험했던 남아공의 치킨, 피자의 맛을 봤을 때는 대체 이 나라 사람들은 어찌나 이렇게 짠 음식을 먹는지 놀라울 정도였다. 6년이란 시간이 지난 지금, 가끔 먹는 피자, 치킨인데도 기본 짠맛이 짜게 안 느껴질 때가 있다. 집 밥을 자주 먹다가 사 먹으면 "오늘 왜 이렇게 짜?" 하고 반응하지만, 자주 사 먹을 때는 짠지 모르고 맛있게 먹는다. 오랜 시간 여러 음식의 짠맛, 단맛에 길들여진 탓에 익숙해져 무뎌진 거라고 생각한다.  


-불편함. 감사. - 


남아공에서 처음 와서 느꼈던 불편함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인터넷은 느리거나 자주 끊겼다. 전기는 아직도 자주 나간다. 하루에 1회, 2회, 많게는 3회도 나가고 반나절 동안 끊기기도 한다. 2년 전에는 11일간 정전이 지속된 날도 있었다. 이런 불편함이 닥치면 일단 불만 불평하게 되지만, 그런 불편함도 점차 익숙해진다. 불편함 속에서 어떻게 하면 적응해서 살아갈지 고민하기 때문이다. 생활의 지혜를 발휘해 이 없으면 잇몸의 삶을 살기 위해 몸무림 친다. 그렇게 살다 보면 '또 이렇게도 살아지는구나' 싶어 불편한 일상에서도 만족을 만들어간다. 이런 불편함에 익숙해지는 건, 감사하고 평소에 당연시 여기게 됐던 것으로부터 좀 더 성화되어 가는 과정이라 괜찮다고 생각한다. 감사를 더 많이 고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게 없다가 생긴 것에 대해서는 처음에는 환호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차 감사도 감흥도 잃어가기 마련이다. 남아공에 살면서 '당연하지 않은 삶' 관한 생각도 여러 번 하고, 글도 여러 편 써봤다. 일상에서 자주 경험하는 황당한 일들이 그리 자연스럽게 만들곤 한다. 


내가 누리고 있는 삶, 주어진 행복. 

평소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고 있는 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익숙함, 당연함 내 삶에 없는지 다시 짚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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