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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Jul 19. 2023

남아공살이 6년 만에 혼자 운전하고 마트 간 날

기록을 위한 기록.




저녁 5시 퇴근으로 차가 몰릴 시간이다. 마트에 가야 한다. 좀 더 일찍 나설걸. 거리에 차가 없어야 휙 다녀오는데, '가지 말까?' 잠시 망설였다. 오늘 가지 않으면 내일 오전에도 갈 시간이 없어서 이를 악 물었다.


"가야 해! 가자! 별아, 엄마 마트 갈 건데 같이 가자."


차 몰고 마트 가는 게 뭐 대수라고! 귀찮아서가 아니라 겁나서였다. 남아공에 온 지 6년 만에 '처음' 혼자 차를 끌고 마트를 다녀왔다. 물론 옆에 별이가 있어서 좀 더 용기를 낼 수 있었지만, 혼자였더라도 오늘은 가야만 했다. 내일 준비를 위해서.

남아공에 온 뒤 운전은 남편 몫이다. 이곳은 자가용이 없으면 이동할 수 없다. 차도 한 대 밖에 없어 늘 바깥일은 남편과 동행한다. 요즘 공사 관계로 남편은 종일 바깥일을 보느라 집에 들어오질 못한다. 오늘도 하루 종일 밖에 나가 저녁에 들어왔다. 내일 사역지 가져갈 간식도 사야 하고, 장 볼 것도 있는데 오늘도 늦어진단다.


매주 토요일 운전대를 잡는다. 1년 전부터 아이들을 데리고 한글학교에 간다. 나는 교사, 아이들은 학생이라 넷이서만 움직인다. 남편이 유일하게 운전하지 않는 날이다. 그전에는 남아공에서 운전하지 않았다. 운전좌석이 오른쪽이라 한국과 반대인 게 익숙하지 않았다. 우회전, 좌회전 비보호가 한국과 반대라 겁이 났다. 서클구간이 있는데 여기를 지날 때마다 꼭 상대 차와 부딪힐 것 같아서 운전이 무서웠다. 사고 나는 현장을 종종 봐서 그런지 운전이 무서웠다. 그렇게 미루고 미뤄 운전하지 않았다. 가끔 교회 주차장이나 넓은 공터에 가서 운전 연습을 했지만 도로 주행은 손사래 쳤다.


"당신 있잖아. 내 전용기사! 나는 안 해도 돼."


이렇게 핑곗거리 삼아 운전대 안 잡을 핑계를 만들었다. 바깥일 봐야 하는데도 남편이 없는 날에는, 집안에서 한 발자국도 안 나간 날도 많았다.



운전면허 딴지 18년이다.

20대 초반에 1종 보통 면허를 취득했다. 당시 운전면허를 딸 때도 쿠션하나 품에 안고 1종 보통 면허를 따야 해서 시험장으로 향했었다. 다리가 안 닿으면 어쩌지 걱정했지만 당당히 합격했다. 장롱면허로 썩히다 운전대를 잡은 건 결혼 전, 20대 중반이었다. 당시 추운 겨울 아빠 차를 끌고 출근하다가 옆집 아저씨 차를 긁고 도주했다. 사실은 긁은 줄도 몰랐다. 눈이 꽤 많이 쌓여있었고, 추운 날씨 탓에 눈이 꽁꽁 얼어붙어 내가 쌓인 눈을 긁고 온 건지 아랫집 차를 긁고 온 건지 알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출근 후 아빠 전화를 받고 기함을 했다. 맙소사. 사고 쳤네. 다행히 차 수리비 물어드리고 끝났지만, 알고도 긁고 도망갔다고 생각하셨는지 아저씨 화를 누그러뜨리는 데 벌벌 떨었다. 엄마는 그 뒤로 뭐 만 생기면 아랫집에 가져다줬다.  그게 첫 번째 사고였다. 그 뒤로 운전하지 않았다. 출퇴근 버스 타면 되기에 굳이 차를 가지고 다니지 않았도 됐다.


결혼 후,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고, 파트타임으로 어린이집에서 일하게 됐다. 출, 퇴근을 해야 하고 아이들 라이딩도 해줘야 하기에 운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왕십리 집에서 신당동까지 매일 다녔다. 중간에 아이들 내려주고, 데려오고 하다 보니 할만했다. 그렇게 점점 익숙해졌다. 오가는 길은 익숙하지만 새로운 길은 엄두가 안 났다. 특히 주차공간이 협소한 곳에서 들어가지도 못하고 나오지도 못하면 어쩌나 싶은 마음이 제일 컸다.  

엄마는 용감하다고 했던가, 아이들을 태우고 다녀야 하는 상황이 되니 어디도 가겠더라. 그렇게 집에서 근무처까지 오가면서 다니는 길은 익숙해졌다.


"나도, 한다면 한다고! 할 수 있다고!"


운전에 희열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런 희열을 느끼다 얼마 못 가 두 번째 사고가 났다.

미아사거리 이마트 앞이었다. 엄마 모시고, 아이들 데리고 장보고 나오는 길이었다. 4차선 도로에서 차선 변경을 하다가 뒤에서 오던 택시와 부딪혀 오른쪽 범퍼가 다 나갔었다. 무슨 정신이었는지 아저씨는 내 잘못 이라는데, 나는 뒤에 택시가 오는 걸 보지 못했다. 오른쪽으로 차선 변경을 하는 순간 "악!!" 하는 소리와 함께 차를 세웠다. 뒷 좌석에는 별, 다엘 꼬맹이가 있었고, 옆에는 친정엄마가 앉아 있었다. 우리 차를 반을 긁고 저 앞에까지 가서 선 택시, 택시 아저씨는 내려서 노발대발했다. 당시 택시 뒷 좌석에 앉은 손님 두 명이 뒷 목 잡고 부동자세로 앉은 모습이 뒷 창문에 보였다. 이후 사고 보험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우리 쪽 대물처리만 안 해줘서 억울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도 놀랐고, 아이들도 있었는데, 심하게 다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겼다. 그 후 몇 주간 물리치료를 다녀야 했다. 그 이후로 한 동안은 운전대를 못 잡았다. 미아사거리 이마트를 지나갈 때마다 그날의 잔상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운전을 계속해야 했다. 남아공으로 이사오기 전, 집 정리도 하고 여기저기 봐야 할 일이 많았다. 약속이 이중으로 잡혔다. 남편은 교회일, 이사 관련일 등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많았다. 하는 수 없이 나 혼자 애 셋을 데리고 장거리 일을 봐야 했다. 친정까지 가야 하는 상황도 생겼다. 왕십리에서 쌍문동까지는 거의 50분 남짓 걸린다. 처음에 얼마나 벌벌 떨었는지 아이 셋을 뒤에 태우고 운전대 잡은  손에 땀이 다 났다. 50분 남짓 걸려 친정까지 간 날 겉으로는 덤덤한 척했지만, 내 속에서는 댄스파티가 났었다. 손도 달달 떨리는 것 같고 식은땀도 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장거리를 사고 없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에 성취감이 생겼다.



점점 아이들 라이딩도 내 몫이 되어가는 듯하다. 당분간 남편은 일이 있어 집을 비운다. 일단 도로를 타고 나가면 자신 있게 한다. 머뭇 거리다가는 큰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오, 운전 잘해요. 이제 잘하고 다니네!"


나는 조심스러운데 다른 사람들은 말한다. 겉으로는 터프하게 보이고, 나름 자신 있게 하지만 여전히 새로운 길은 낯설고 겁난다. 주차는 할 때마다 신경 쓰인다. 뭐든 처음이 무섭지 몇 번 해보면 익숙해진다. 운전처럼 매사 조심하고 유의해야 하는 일도 있다. 내 실수든 타인의 실수든 사고는 예기치 못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사고를 2번 내보곤 운전대 잡기가 무서웠었다.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두려움도 이겨내야 했다. 익숙하게 만들어야 했다. 더는 두렵지 않게 말이다. 뭐든 일단 하면 할수록 익숙해지는 법이다. 이것 또한 내 영역으로 만들기 위해 여전히 익숙한 것에도 적응 중이다. 오늘도, 내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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