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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Dec 16. 2023

되살아난 물 공포

 방심은 금물 




여행 이튿날,  삼 남매는 하루 종일 물에 놀건가 보다. 물에 들어가서 나올 생각을 안 한다. 얼마만의 여행인지 다들 학수고대했다. 다른 건 안 하고 종일 수영만 하겠다는 다짐들이었다. 삼 남매는 그야말로 목 빠지게 기다렸다. 나 역시 이번 여행에서는 아이들과 물놀이를 하겠다고 수영복을 단디 챙겼다. 웬만해서는 늘 짐을 지키는 편인데, 이번에는 수영복도 미리 꼼꼼하게 준비했다. 덕분에 여행기간 내내 낮에는 수영복에 외투만 걸쳤고 밤에는 잠옷만 입고 있었으니 짐을 챙길 때도 간소화시킬 수 있었다. 


늘 여행에서는 한 가지씩 빠뜨리고 뭔가 허전해야 여행의 시작이 맞나 보다. 이것저것 몇 가지 빠뜨렸는데, 그 사이에는 물안경도 있었다. 열심히 자유형, 배영, 평영을 할 생각은 없었다. 절반은 놀고 절반은 앉아서 책 읽거나 들어야 할 강의를 들을 셈이었다. 물안경이 있으면 얼굴을 물에 담그고 다니기에 뭔가 심리적으로 안정감이 있는데, 빠뜨렸다. 아이들이 신나게 놀면서 계속 손짓했다. 


일곱 살 때 순창 큰아버지 댁 근처 계곡에 놀러 갔었다. 그때 강가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튜브가 뒤집어져서 물에 빠져 죽을 뻔했다. 큰아버지 아니었다면 이미 이 세상에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급살에 휘말렸고, 빠른 속도로 떠내려 가는 나를 낚아채듯 건져주었다. 그 경험으로 물을 무척 두려워하게 됐고, 초등 중, 고등 시절 수영을 어떻게든 배워 물 공포증을 이겨보려고 애썼지만 물속에서 호흡하는 건 터득할 수 없었다. 물속에서 날숨호흡을 해야 하는데 그게 도저히 되질 않았다. 결국 잠시 숨을 참고 물에 동동 떠서 발 장구만 치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그러다 남아공에 와서 아이들 수영 훈련시키는 남편 옆에서 수영을 배워 자유형, 배영, 평영까지 하게 되었다. 이 과정은 전에 글로 한 번 남긴 적이 있는데 내게는 큰 성취감을 느꼈던 사건이다.  아이들도 하는데 내가 못하는 게 못내 창피스럽고, 오기가 생겨서 연습했었다. 

아무튼 그 계기로 수영을 할 줄 알게 됐다. 그러니 이번 여행에서도 내가 물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딱 하나였다. 차가운 물이 싫어서였다. 몸을 적시고 나와 마르는 사이의 오들 거림을 참고 싶지 않아서였다. 


"엄마는 수영복도 입었는데 왜 안 들어오는 거예요?" 


막내 요엘이 와서 한 3번은 물어봤다. 그때마다 "응 곧 들어갈게"로 대답하고 계속 책을 읽었다. 결국 마지막 손짓에는 이기지 못하고 들어갔다. 물이 어찌나 차가운지 수영장 턱에 걸터 서서 발만 휘휘 저으면서 들어갔다가 심장 마비 걸리면 어쩌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엄마, 그냥 한 번에 풍덩 뛰어 들어봐요. 하나도 차가워요. 들어와 있으면 괜찮아요." 


여덟 살 난 꼬맹이가 나를 가이드해주는 데 기특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내가 그 말에 얼른 동조해야 할 것 같아 물에 뛰어들었다. 확실히 들어가 있으니 물이 그리 차갑지 않게 느껴졌다. 수심은 생각보다 깊었다. 발바닥을 땅에 대고 서니 물이 내 턱 밑에 바짝 차올랐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과 성인이 섰을 때 얼굴이 보이는 정도의 깊이였으니, 나도 당연히 그만큼 깊이로 걸어 다닐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 앞에서 서서 반대편으로 가로지르는 남편과 아이들을 따라 개헤엄도 치고 까치발도 들어 천천히 걸어갔다. 물이 좀 깊어지는 것 같으면 턱을 치켜 들고 걸었다. 햇볕이 강해 선글라스를 벗지 않고 들어갔는데 그게 화근이 됐다. 남편과 아이들은 천천히 가는 나를 보면서  내가 물이 점점 깊어지는 느낌에 "어! 어!" 하고 소리를 칠 때마다 웃었다. 엄마 좀 보라며 남편은 장난을 쳤고, 아이들을 빨리 오라며 손짓했다. 

뒤 꽁무니를 쫓아 천천히 걸어가다가 어느 순간 발이 땅에 닿지 않았다. 순간 무척 당황했다. 그냥 눈 딱 감고 자유형이든 평영이든, 앞으로 전진만 하면 됐는데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젖은 머리카락으로 눈앞이 가려지고 선글라스를 벗어 위로 올려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발 끝이 닿지 않았지만 그 상태로 반대편까지 이어질 거라 생각한 게 큰 오산이었다. 자유형으로 250 미터도 안 되는 거리다. 걷다 보니 수영장 한가운데가 그렇게 깊을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결국 나는 허우적거리며 앞으로 가려고 애썼지만, 팔다리 힘은 점점 빠지고 숨을 못 쉴 것 같았다. 물속에 들어갔다가 솟아오르며 호흡을 몰아쉬었지만 그 구간이 너무 짧았다. 

결국 나는 몇 번의 어푸질 끝에 못 내 해야 할 말을 뱉었다. 


"도. 도... 도와.. 줘!" 


장난을 치는 줄 알았던 남편도 아이들도 내가 외치는 도와 달라는 말에 놀랐는지 다엘이 얼른 와서 내 팔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남편 쪽으로 나를 밀어줬다. 매우 짧은 찰나였다. 몇 분 채 되지 않았을 거다. 그 짧은 몇 분 아니 어쩌면 몇 초의 순간에 이러다 물에 빠져 죽겠다 싶은 생각마저 들었고, 극심한 공포감을 느꼈다. 


물에서 나온 나는 고목나무에 매미 매달리듯 남편 등에  착 붙어 다리를  남편 몸통에 꼬았다. 그리고 빨리 반대편으로 가자고 말했다. 가족 모두 웃으며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나는 그다음 날에도 물에 들어갈 때 몇 번의 고민을 했다. 그리고 가운데 지점으로는 들어가지 않았다. 다른 수영풀에 들어가거나 비치의자에 앉아 자리를 지켰다. 


경험이라는 게 이렇게 무섭다. 10번 성공했더라도 1번의 실패와 위험한 경험은 오래 트라우마로 남는다. 물 안경이 없어 앞이 안 보여도 짧은 거리 그냥 머리 담그고 수영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는 고집에서 비롯되었다. 조금 불편한 상황을 참았더라면 또다시 빠지는 경험을 안 했을 수도 있다. 한 편으로는 황당하고, 한 편으로는 나 스스로 작은 키를 한탄했다. 좀 더 컸다면 안 그랬을 거 아니야! 이러면서 말이다. 또 원인을 밖에서 찾고 있었다. 중요한 건 키가 아닌데 말이다. 어렸을 적 물에 빠져 죽을 뻔했던 경험도 다시 상기 됐다. 재경험에서 느낀 공포가 그 당시로 잠시 돌아갔지만 얼른 빠져나왔고, 일부러 가볍게 웃으면서 에피소드로 들먹였다. 


방심했다. 그 정도쯤이야 생각했다. 

빠져 죽을 뻔했다. 

접시 물에도 코 박고 죽는다는데, 이건 내 머리를 넘기는 깊이였지만 이렇게 당했다는 사실에 겁이 덜컥 났다. 

암튼 그 앞에서 가족들이 지켜보고 있었으니 더 큰일이 생기지는 않았겠지만,  살아서 지금 글을 쓸 수 있다는 자체에 또 감사하다. 


어떤 것도 방심하면 안 된다. 

내가 잘하는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경험이 있는 것도. 

상황과 환경은 달라질 수 있으며,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도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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