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 종업원들의 기발한 방법
지난 주말 남편과 함께 새벽 시장에 다녀왔다.
매주 열리는 토요 새벽 시장인데, 학기 중에는 잘 가지 못한다. 토요일 오전에는 한글학교에 가야 하는 탓이다. 그래서, 한글학교에 가지 않는 토요일에는 아침 일찍 부지런을 떨어 본다. 보통은 특별히 살 게 없어도 가서 구경하고 이것저것 주전부리 하는 낙으로 걷는 시간이다. 간혹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기가 빨리는 나는 내향이지만, 집에만 있는 건 또 무료한지라 콧구멍에 가끔 바람을 넣어 줘야 한다.
참 안타깝게도, 시장 안에는 커피 부스가 꽤 여러 개가 있는데 단 한 번도 "맛있다!"라는 말이 나온 적이 없다. 집에서 미리 제조해서 나온 커피를 파는 집도, 머신을 가져다 놓고 파는 집도 뭔가 늘 2% 부족한 건지 시중 카페에서 파는 맛과는 좀 다른 맛이다. 커피 탓인지 만드는 사람 탓인지 모르겠지만 그저 분위기로 만족하며 마시는 한잔이다. 다시는 새벽시장에서 커피를 안 사 먹겠다던 남편은 아직 안 가본 곳이 두 곳이 있는데, 기필코 맘에 드는 곳이 한 곳을 찾아보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그리고 그중 한 곳을 발견했다.
처음 가는 곳이니 어디서 주문을 해야 하나 살피던 중에 커피를 주문하는 곳이 아니라, 받는 곳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주문을 받던 한 건장한 청년이 우리에게 왼쪽으로 가라는 손짓을 했다.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다른 직원에게 손짓을 하면서 우리에게 설명을 해주라는 듯한 동작을 취했다. 입을 벌렸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안내받은 직원은 남편과 나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한 번 쫙 훑더니 "처음이군요!"라고 말했다. 그리곤 메뉴판을 보며 설명해 줬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로 인사를 건넨 사람은 안으로 들어가 직원들과 수어로 대화를 했다.
알고 보니, 청각 장애들이 종업원이 여러 명인 커피 부스였으며, 주문을 받는 과정에서 장애가 전혀 문제 되지 않도록 메뉴판에 각 커피 메뉴에 색깔을 넣어서 표시해 두었다.
1. 컵 사이즈를 고른다.
2. 색깔 링을 컵에 끼운다.
3. 주문대 앞에서 컵을 보여준다.
4. 계산한다.
5. 기다린다.
6. 받아서 마신다.
이 순서대로 커피는 주문할 수 있었다.
꼭 청각 장애인이 아니어도 셀프 오더링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도 꽤 신박하다고 생각이 들었을 텐데, 서로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현명한 방법이 꽤 신선하고 맘에 들었다. 게다가 알록달록 예쁘기도 하고 말이다. 이미 키오스크 주문 제도가 곳곳에 많이 있고, 한국에서 이런 걸 봤다면 그다지 놀라지 않았을 텐데, 왜 인지 남아공에서, 그것도 새벽시장에서 만나서 더 신기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서로의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 자체에 마음이 훈훈해졌다. 그래서였을까, 그저 아메리카노 한잔이었지만, 지금까지 새벽시장에서 마셨던 커피 중에 제일 나은 것도 같았다.
보통 혼자서는 불편하지 않은 일이 타인의 소통에서는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살면서 만나는 모든 문제들은 모두 해결책이 있다. 불편한 일이 있어도 사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도를 찾아 궁리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면 그 불편함은 좀 더 빠르게 해결할 수 있다.
결국 문제를 대하는 '태도'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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