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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Feb 21. 2022

쫄리고, 구리지만 괜찮아.

전화위복 삼기! 




126명.  줌 화면에서 확인했던 참여자 숫자는 126이었다. 


"어? 화면이 꺼졌어!" 

시작 후 10분이나 지났을까, 신나게 열심히 혼자 떠들던 중에 화면이 검게 변해 버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작가님과 내 강연을 들으러 오신 분들께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전했다. 다시 로그인하려고 시도하니 이번엔 블루 스크린이 뜨고 말았다. 

식은땀 줄줄, 등줄기를 타고 열기가 볼에 올랐다. 귀가 뜨거워지고 머릿속에서 김이 나는 느낌이었다. 

"맙소사, 어떻게 하지? 오늘 준비한 게 시간이 꽉 차는데 이렇게 지연되면 한 시간 넘길 텐데......"  

 오늘 강연 못하게 되면 어쩌나 보다 시간이 딜레이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먼저 됐다. 

결국 로그인 불가, 컴퓨터는 계속 끽끽거리며 돌아가고 있었다.



"아, 구려! 아... 진짜 구려 구려! "

속에서 더 나쁜 것이 올라오기 전에 내뱉은 최선의 표현은 구리다는 말이었다. 

뭐라고 사죄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열심히 준비한 강연 절반도 못하고 끝나버린 게 너무 아쉬웠다. 

원래 계획은 강의 홀가분하게 끝내고 주말을 만끽하는 거였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마지막 리허설을 하고 점심은 비빔면으로 때우고 머리, 옷, 화장에 지난 3년간 하지도 않았던 귀걸이까지 깔끔하게 준비를 마쳤는데 허무했다. 




<<삼 남매와 남아공 서바이벌>> 내가 쓴 에세이집이 출간됐다. 

출간되자마자 바로 잡힌 저자 특강, 

특강 준비를 하며 3주를 기다렸다. 

1주는 이사로 정신없어서 손도 못 댔지만, 

2주간은 틈틈이 PPT 발표자료를 열심히도 만들었다. 

프레젠테이션 화면 리허설만 3번. 프레젠테이션 페이지수만 50페이지다. 

열심히 준비하고 화면 앞에 앉아 사람 수가 한 두 사람에서 열 , 스물, 백까지 늘어갈수록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거리기 시작했다. 

"아 쫄려. 아까는 안 떨렸는데 왜 이렇게 떨리지?" 

내 생애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다른 얘기도 아니고 온전한 내 이야기를 1시간가량 떠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설렘 반 부담반이었다. 

이은대 작가님의 개회사 끝에 내게 마이크가 넘겨졌고, 신나게 떠들며 이제 좀 떨지 않고 말해야겠다 생각한 순간 화면이 블랙 스크린이 떠버렸다. 

"어? 화면이 꺼졌어. 안 보여요? 지금 화면 보이세요?" 

화면이 잘 보인다고 계속하라고 했지만, 할 수 없는 노릇. 복구해보려고 애썼지만 이젠 블루스크린이 떴다. 다시 재부팅하는데만 몇 십분. 

결국 강의는 연기됐다.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금요일 강의를 시원하게 끝내고 주말 부담 없이 쉴 생각에 들떠있었건만 지난 한 주는  한 주가 엉망이었다. 겉으로 울지 못해 속으로 울었다. 작년에 쓰던 노트북이 갑자기 못쓰게 되면서 새 노트북을 샀었다. 한국에 비하면 모델 생산 속도도 느리고, 최신 모델도 없을 뿐 아니라, 가격도 비싸다. 노트북 프로모션 할 때 나름 거금 주고 샀다고 길게 쓸거라 다짐했건만, 이렇게 허무하게 가려고 준비 중인 걸까, 야속하게도 제 기능을 못하는 노트북을 던져버리고 싶었다. 당장 한국가서 합리적인 가격에 최신형 노트북 하나 냉큼 사들고 오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땐 괜찮다고 산건데, 지금 와서 보니 사양이 엉망이다. 100명이 넘는 인원 동시 접속, 듀얼 화면, 프레젠테이션 화면 공유를 버티지 못하고 사망해버린 노트북 앞에 앉아 머리쥐어 뜯으며 째려보고만 있었다. 


"괜찮아요. 작가님 잘 못이 아니에요. 어쩔 수 없는 시스템 문제잖아요. 힘내세요. 오히려 더 책 내용이 궁금해졌어요. 책 먼저 사서 볼게요. 맛보기 강의라고 생각하고 기다리고 있을게요. 남아공 하늘을 보니 가보고 싶어 졌어요. 다음에 또 한 번 뵐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기다릴게요. 울지 마세요. 속상해 마세요." 

강연에 참석했던 수많은 작가님과 참석자들이 진심 어린 위로를 담아 메시지를 보내왔다. 


역시, 위기는 기회였던 걸까, 

마음이 천천히 바뀌고 있었다. 왜 꼭 오늘 그래야만 했니, 에서 그래 오늘 이 일로 인해 나는 사람들에게 확실히 각인이 되었겠구나로 바꼈다. 



삶은 늘 예기치 못한 일들의 연속이다. 

지난 한 주만 해도, 

월화는 2019년도 생산제품인 줄 알고 구매했던 데스크톱이 2013년도 생산인 걸 알고 난 후  반품 문제로 속을 썩었고, 수요일은 차 트렁크 안에 자동차 키를 넣고 문을 닫는 바람에 보험회사를 불렀다. 목요일은 생일이었는데 비자 콜렉트 줄만 4시간 서다 결국 받지도 못한 채 집으로 왔고, 생일 계획은 망했다. 그리곤 금요일 결국 저자 강연에서 제대로 터졌다. 

머피의 법칙이 이런 걸까?


"내일 당장 사러 가자! 노트북."  

당장 돈도 없어서 카드 긁어야 되고, 카드 긁으면 다 빚인데 보다 못한 남편이 말했다. 속상한 마음을 부여잡고 하룻밤을 보내는 나를 측은한 눈으로 바라봤다. 남편은 다음 강연 잘하라고 우리 작가님 돈 열심히 벌 때까지 잘 크라고 통 크게 노트북을 질러줬다.   

역시, 사고가 한 번씩 내줘야 크게 얻는 게 생기나 보다. 


"당신 카드 가져왔어?" 

계산대 앞에서 이 말만 안 했다면 완벽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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