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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Apr 15. 2023

한 숨 포인트

힘 줄줄 알아야 힘 뺄 수 있다.




  영어 발성 훈련을 할 때 자음 발성을 잘 뱉기 위해서는 복식 호흡을 이용하도록 가르친다. 한국어 발성은 호흡을 이용해서 뱉지 않는다. 대부분의 소리가 입에서 목에서 나오기 때문에 속사포로 말하거나 일부러 힘을 주지 않는 이상 호흡을 이용할 일이 거의 없다. 처음 발성과 호흡을 훈련할 때는 뱉는 방법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그냥 질러보라고 한다. 호흡을 뱉으면서 배에만 힘을 주라고 했더니 온몸에 긴장을 끌어오려 꽉 잡은 채 엄청난 샤우팅을 하는 사람도 있다. 녹음 파일 열었다가 화들짝 놀라는 때도 있다.

  보통 프로그램과 함께 소리 훈련을 시작하면서 코칭을 받는 회원들은 홈페이지 전 과정이 끝날 때까지 이어간다. 약 6개월 정도 코칭을 받으면서 소리를 교정해 나간다. 간혹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잠시 쉬고 돌아오는 회원이 있는 반면 작심 한 달 후 영원히 쉬는 사람도 있다.

 

두 달 전 회원 한 명이 한 달 코칭을 받은 후 문자를 보내왔다. 직업이 워낙 바쁜 분이라 이해도 됐다. 소리가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코칭을 그만둔다고 하니 걱정이 됐다. 내가 코칭인원을 더 받고, 돈을 더 받고의 문제가 아니라 일종의 코치로서의 노파심과 책임감 같은 거다. 그렇게 한 달을 쉬고 다시 돌아왔다. 다시 돌아왔을 때는 처음 시작했을 때의 혈기와 활활 타오르던 의지가 한 풀 꺾여있었다.



이미 잘해보겠다고 으라차차차 가졌던 의지가 한 풀 꺾였지만, 그와 함께 좀 잘하려는 부담도 한 짐 덜어놓은 것 같아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다. 자포자기한 듯 말하지만 여전히 훈련의 의지가 있다는 건 언제라도 자신이 성장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암튼 이 분은 이렇게 한 달 동안 훈련을 열심히 했고 어느 날 갑자기 안되던 발성이 되고 소리가 안정적 이어졌다.


"이제 소리가 내려왔으니까 힘 빼는 훈련을 해 볼 거예요. 한숨이 포인트입니다."


코칭법을 지도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말이다. '한숨'이라는 포인트를 아무리 설명해도 적용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만큼 힘을 빼는 작업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 긴장을 하면 몸에 힘이 들어간다. 말할 때 긴장하면 목에 힘도 들어간다. 현재 힘 빼기 작업을 계속하는 단계에서 주기적으로 내게 하는 말이 있다.


코치님, 힘 빼기가 힘주기보다 더 어려워요!

맞다.  간혹 회원들이 힘 빼는 걸 골프와 같다고 말하곤 한다. 아직 쳐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어떤 의미인지는 알 것 같다. 스쿼시를 칠 때도 수영을 배울 때도 노래를 할 때도 악기를 연주할 때도 모두 다 같다. 초보나 입문자는 힘 조절을 잘 못한다. 그래도 괜찮다. 처음에는 누구나 다 시행착오를 겪는데, 당연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스쿼시를 칠 때 벽에 공이 딱딱 맞는데 자꾸 라켓 테에 맞아 시원한 사운드가 안 나서 불만스러웠다. 세게 휘둘러 봤자 팔만 아프고 기술적으로 잘 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연습 중에 라켓 정 중앙에 맞고 경쾌한 소리를 내며 벽에 가서 부딪힌 사운드에 화색이 돌고 자신감이 생겼다. 단 한 번이었는데 말이다. 그 뒤로 손에 힘을 빼야 한다는 걸 알았다. 물론 알았지만 그 뒤로도 수없이 그 감을 잡기 위해 애썼다. 매일같이 1시간씩 쳤는데도 그 감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스쿼시를 치면서 힘을 빼는 일이 이렇게나 중요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피아노를 칠 때도 강약이 없이 쿵쾅거리기만 하면 아무리 잘 쳐도 감탄은 안 나온다. 바이올린 위에 얹은 활이 힘 줄때와 힘 뺄 때의 능숙한 기술로 연주해야 선율의 아름다움이 산다. 그 외에도 많은 영역에서 힘주기와 힘 빼기를 적절히 잘해야 하는 일들이 많다.

  

아직도 영어 리딩 훈련을 할 때 힘 빼기 훈련을 한다. 나는 다 뺐다고 생각했는데 더 빠질 힘이 있다는 피드백을 받을 때면 멘붕이 온다. 얼마나 더 빼야 하는 걸까 나는 뺀다고 뺀 건데. 그런데 신기한 건 또 더 훈련해서 빼려고 하면 힘이 빠진다. 신기할 노릇이다. 이 과정은 보다 소리와 리듬을 듣기에 편하고 원어민스럽게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인생도 똑같다. 뭐든지 잘해보려고 힘을 주고 힘을 빡 주게 되면 힘 만들지 자연스러워질 수가 없다. 처음에 잘하고 싶어서 힘을 잔뜩 주고 시작했다면 그다음에는 조금씩 내려놓는 작업을 해야 한다. 보통 한숨은 기분 나쁠 때, 속상하거나 일이 어그러져서 어쩔 도리를 모를 때 나온다. 내 안에 꽉 차있는 무언가를 조금이나마 가볍게 만들고 싶다면 한 숨, 두 숨 바깥으로 자꾸 빼내는 작업을 하면 보다 가벼워질 거다. 진짜 숨을 뱉든, 숨에 그 마음을 실어 뱉어내 듯 말이다.


오늘은 한 숨.

내일은 두 숨.

그러면 단숨에 해내는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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