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슬프게 하는 것

나를 잃어 가는 것

by 로마

그날은 피부과에서 레이저 치료를 받던 날이었다

진료를 마친 시간이 늦은 오후 5시 30분이었다.

병원을 나오니 밖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겨울이 시작된 12월 그 시간은 해가 지고서 어둠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네온사인이 불을 밝히고 지나치는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에 눈이 부셨다.


해가 진후 더 추워진 날씨와 바람이 있어서 옷깃을 한껏 여미며 마스크를 코까지 다시 한번 올리고 주차된 곳으로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병원 근처에 주차할 곳이 없어서 진료받은 병원에서 조금 먼 곳에 주차를 한탓에 조금 걸어야 했다. 겨울이 시작된 어둠이 내린 밤은 추웠다.

남편 퇴근 시간이어서 서둘러 차를 출발시켰다.

집까지는 신호가 두어 번 걸리면 여유 있게 10분 정도 걸릴 것 같다.


퇴근 시간과 맞물린 시간이라 신호대기 중인 차량들의 브레이크등 빨간불빛이 일제히 줄을 지어 길게 늘어서있다. 길게 이어진 그 끄트머리쯤 음악을 들으며 신호대기 중 듣던 음악이 끊기며 전화가 왔다.

블루투스로 연결된 내비게이션 화면에 저장이 안 된 모르는 전화번호가 뜬다.


지역번호가 우리 지역의 전화번호였다.

순간 싸함과 동시에 레이저 치료비 결제를 안 하고 온 것이 빠르게 생각이 났다.

놀란 나머지 '옴마야, 미쳤네 미쳤어' 혼잣말을 하며 전화를 받았다.

"피부과인데요 로마님 맞으시죠?" 결제를 안 하고 가셨다고 하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머 어머, 미쳤나 봐요" 놀란 나머지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그대로 대답으로 내뱉으며 전화번호가 뜬 내비게션 화면에 죄송하다고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바로 보내주겠다고 계좌번호를 부탁하며 통화를 마쳤다.

조용하던 심장이 두근거리고 핸들 잡은 손이 떨렸다. 미쳤네 미쳤지 혼잣말을 계속하며 정차를 한 후 차 안에서 바로 진료비를 이체했다.


나 참 살다 살다가 진료비를 결제도 안 하고 그냥 오다니!

세상에나, 어찌하여 이런 일이 생겼단 말인가? 생각해 보니 병원을 나올 때 결재에 대한 자각이 없었다.

레이저 치료 때문에 화끈거리는 얼굴에 온통 신경이 쓰이다 보니 진료비 결재를 까마득하게 잊었던 거였다.

한동안'먹튀'라는 뉴스가 비일비재 공중파 뉴스에 자주 등장 하곤 했는데 오늘 내가 사고 친 그 일이 먹튀 못지않게 뉴스에 나올 일이다.


갱년기라고 치부하기에도 불구하고 너무 충격적인 일 이어서 진료비를 내지 않고 그냥 왔다는 사실이 받아들일 수 없는 절망이 되었다.

갱년기를 겪고 있는 지금 나는 집중력이 눈에 띄게 안 좋아졌지만 인지장에도 없고 사고는 아직 정상적인데 어찌하여 진료비 결제를 생각도 아니한 채 그냥 나왔단 말인가?


나는 요즈음 내가 낯설다.

나를 잃어 가는 것 같아서 한동안은 우울했다.

그래서 나는 갱년기 그 녀석에게 오늘의 이 흑역사를 넘기기로 했다.

갱년기여서. 갱년기 증상이야. 그래! 그래서 그랬다고 마냥 우울해지는 나를 애써 달래 본다.


점점 낯설어지는 요즈음 내가 나를 슬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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