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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목 Apr 19. 2018

개와 고양이를 위한 시간

고양이에 관한 짧은 필름

삶삶이 영화라면 아마도 장르는 성장영화일겁니다.이 영화라면 아마도 장르는 성장영화일겁니다.



#1. 누군가는 밥을 주고 누군가는 그 밥에 약을 탔다.


“난 길고양이 얘기 듣고 싶지도 않아요. 그 어슬렁 어슬렁 돌아다니는 모습도 꼴 보기 싫고 밤에 울어대기라도 해봐요. 아주 사람 미쳐요. 도대체 걔들이 이로운 게 뭐가 있다고 밥 나르고 물 나르고 하는 거죠?  당장 사람 사는 곳에서 멀리 쫓아 내도 시원치 않은 마당에 말이에요. 언젠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누가 돌을 던져서 화단에 있던 사람이 맞은 사건 있었죠? 고양이 밥주는 일 때문에 그런 거라면서요. 그러게 왜 자꾸 하지 말라는 짓을 하냐고요. 아, 물론 잘했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나도 그 정도는 알아요. 근데 …” 


길고양이와 유기견에 대한 다큐를 찍고 있다고 하면 종종 듣는 말이다. 그렇게 도시의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오늘도 함께 살자고 밥을 챙겨주고, 또 극단적인 누군가는 그 밥에 몰래 쥐약을 탄다. 실제로 취재하는 과정에서 하루 아침에 십여마리의 길고양이가 몰래 탄 약을 먹고 죽은 시체로 발견된 적도 있었다.


고양이는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


혹독한 겨울을 잘도 버텨낸 길고양이.


내가 길고양이를 아낀다고 남들도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 

흔히들 말하는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는 함께 살고 싶지 않은 이들과도 공존할 수 있을 때 비로서 그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서울시는 2008년부터 10년간 길고양이 중성화사업을 펼쳐 2013년 25만 마리 정도로 추산되던 길고양이 개체수를 4년새에 13만9천마리로 절반 가까이 줄였다.



길고양이로 인한 민원은 대개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훼손한다던가 발정기 때의 고약한 소음들이 다수다. 물론 특별한 이유 없이 그저 개인적인 혐오가 민원의 이유일 때도 많다. 

도시에는 고양이 포식자가 없다. (설마 고양이 사료에 몰래 쥐약을 타는 이를 포식자라 할 수 있을까?) 그렇다보니 인위적으로라도 개체수를 조절해 주어야 할 필요가 생기고 이때 길고양이 중성화사업은 거의 유일한 대안이다. 또한 중성화 수술은 각종 질병에 노출되어 있는 고양이들의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보통 TNR이라고 하는데 이는 Trap(덫), Neuter(중성화), Return(방사)의 머릿글자다. 고양이는 영역동물이다보니 중성화 수술 후에는 반드시 포획한 바로 그 장소에 방사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수술을 마친 길고양이들은 귀의 끝부분을 1cm쯤 잘라 표시를 한다. 한번 수술한 고양이가 다시 포획되어 오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다.



#2. 작전개시! “포획(Trap)”


지난 해 늦가을, 백사마을에서는 마치 전쟁터에서 대대적인 작전을 펼치 듯 1박2일에 걸쳐 지역의 동물보호 봉사자들이 동원되어 마을 곳곳에 고양이들이 지나는 길목마다 덫을 놓고 사십여 마리가 넘는 길고양이를 포획하는데 성공했다. 


사람들이 떠나간 집은 길고양이들의 은신처가 되곤 한다.



#3. 작전중, “중성화수술(Neuter)”


수술을 기다리는 길고양이.


수술을 마친 고양이들은 수컷은 하루, 암컷은 3~4일 정도 경과를 본 후 방사됐다. 


수컷 길냥이 두 마리는 친구 사이였는데 수술 중 서로의 손을 포갰다. 



#4. 작전종료, “방사(Return)!


계절이 바뀌고 다시 백사마을을 찾았다. 겨울을 잘 참아낸 아이들이 한가로이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귀 위가 조금씩 잘려 있다. 


길고양이들을 위한 전용급식소를 설치하는 것도 민원해결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5. 한때 ‘공원이’라 불렸던 아이 ...


사연은 이렇습니다. 지난해 늦여름, 인근 동네 공원에서 길고양이 한마리가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 타고난 성격 탓인지 사람만 보면 무서운 줄 모르고 다가가다 그만 철없는 초등학생 아이들의 장난감 처지가 되었나 봅니다. 다행히 지나던 캣맘 분이 이를 목격해 구조한 덕분에 자칫 위험한 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그렇게 다시 공원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아기 고양이는 임보상태에 있다가 마침내 우연한 과정을 거쳐 제게 오게 되었습니다.


‘래아’는 올來에 아이兒자를 씁니다. 어느 날 문득 제게 온 아이죠. 



병원에 가보니 처음 구조했던 분이 데리고 와 검진을 한 기록이 남아있었습니다. 이름은 ‘공원이’라고 등록되어 있더군요. 공원에서 구조되서 공원이. 

출생의 비밀(?)이 담긴 이름이지만 좀 더 예쁜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공원이는 래아가 되었고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래아와 함께 살면서 작은 변화들이 하나 둘 생겨났습니다. 일일이 다 열거할 순 없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래아가 가족이 되고나서 웃는 일이 전보다는 조금 많아졌습니다. 래아가 준 선물입니다.





#6. 길에서도 행복하고 싶어요


고양이는 사람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물론 자신을 해치려 들면 그땐 방어를 위해 발톱을 세우겠지만 이유없이 먼저 사람을 공격하는 고양이는 세상에 없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개와 고양이를 위한 시간>은 인간과 동물 사이의 관계를 통해 궁극적인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지, 사랑은 또 어떻게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지 그리고 우리에게 남겨진 희망은 어디에 있는지 찾아 떠나고자 합니다. 그 길에 많은 분들이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백사마을 길고양이


다큐멘터리 영화 <개와 고양이를 위한 시간>은 2019년 늦은여름쯤 관객과 만나게 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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