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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진 Sep 30. 2019

공포의 전화 벨소리.

작가는 아이템을 잡고 취재를 해서 촬영 구성안을 쓰고 피디를 촬영장에 내보낸다. 그럼 원고를 쓰기 전까지 작가 업무가 조금 여유롭냐 싶으면 아니다. 그 뒤로는 피디와의 전쟁이 시작된다. 모든 피디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피디들은 현장에서 촬영이 원활히 진행되지 않으면 득달같이 전화를 해댔다. 당시 나는 피디의 전화 벨소리를 지정해두었는데 같이 일하던 작가들이 내 벨소리를 외울 정도였다. 내 전화 벨소리가 울리면 다 같이 한 숨을 쉬고는 '또야?' 라며 날 동정하는 눈빛을 보냈다. 


전화를 받으면 피디의 하소연이 시작된다. '날씨가 안 좋아', '출연자가 말을 안 들어', '음식이 맛없게 보여', '손님이 없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심지어 '나 촬영장에 늦을 것 같은데 전화 좀 해 줘'라는 전화까지 천차만별이다. 분명 촬영 구성안에 출연자 연락처, 주소 다 있는데도 끊임없이 물어보고 확인하는 전화는 애교 수준이다. 


생생정보통을 하던 당시 겨울에 동자승들을 촬영했었다. 겨울에 동자승들이 절에서 지내면서 새해를 맞이하는 준비 과정과 새해 일출 장면이 주된 촬영 내용이었다. 촬영은 총 2박 3일이었고 촬영은 담당 피디 혼자 출발했다. 촬영 첫날 새벽 1시, 내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첫 음을 듣자마자 직감했다. '뭔 일이 터졌군' 


전화를 받자 피디는 담배를 피우고 있는지 규칙적인 한숨을 몰아쉬며 한 마디 했다. '촬영 접죠.'

말이 쉽지 촬영을 접는다는 건 엄청난 모험이다. 촬영을 접으면 아이템을 다시 찾아야 하고 취재와 세팅을 해야 하고 촬영 구성안도 다시 써야 한다. 방송 날짜와 제작기간은 정해져 있지 저 모든 과정을 하루 만에 재세팅 하는 건 작가에게 큰 부담이었다. 


상황의 요지는 이랬다. 첫날 촬영을 끝낸 피디는 피로를 풀기 위해 챙겨간 캔맥주 몇 캔을 마시고 스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정치 이야기까지 넘어갔는데 정치적 견해가 달랐던 모양이다. 이 과정에서 피디가 술기운에 스님 말이 맞네, 자기 말이 맞네 입씨름을 한 것이다. 결국 스님은 기분이 상했고 더 이상 촬영에 협조할 수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정치적 견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그걸로 출연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서는 될 일도 안 된다는 걸 모를 리 없는데 그놈의 술이 웬수다. 


촬영지는 경남이었고 나는 서울에 있었다. 내가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스님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싶었지만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나는 피디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지금 아이템을 엎으면 방송 펑크다, 무조건 잘 달래서 찍어와라, 그게 피디님의 역할이다 아무리 얘기해도 피디도 자존심이 있는지 싫다고 고집을 부렸다. 시간은 새벽 2시를 넘어가고 있었고 나는 혹시 지금 스님이 주무시냐고 물어보니 아니라고 했다. 나는 일단 피디와 전화를 끊고 잠시 상황을 체크했다. 지금은 새벽 2시, 남은 촬영 기간은 이틀, 오늘 하루 촬영분만으로는 10분의 분량이 나올 수 없고, 무조건 최소한 하루는 더 찍어야 했다. 나는 스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시간 여의 통화에서 스님은 정치적 견해의 문제가 아닌 피디의 태도의 문제 때문에 촬영을 접겠다고 한 것이었다. 동자승 아이들은 아직 어리고 통제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건 당연했다. 그런 아이들을 피디는 강압적으로 대했던 것이다. 같은 인터뷰를 여러 번 따고, 한 자리에 오래 앉아있게 하고, 뛰지 못하게 하고, 말을 안 들으면 고함을 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외부인이지만 절 내에서 음주라니, 스님이 그것에 대해 한 마디 했던 것이 타고 타고 넘어가 정치 얘기를 하다가 이 사달이 난 것이다. 나는 스님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계속 스님의 말에 호응하고 들어주고 '네 그러셨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많이 부족합니다. ' 등등 진짜 머리를 조아렸다. 그 통화는 새벽 4시까지 이어졌고 결국 스님은 아이들에게 강압적으로 대하지 않겠다는 내 확답을 받고서야 촬영을 허락했다. 스님은 시간이 늦었지만 자기는 이제 아침 불공을 드릴 준비를 하러 가신다 했고 나는 전화를 끊고 한참을 눈을 감았다. 


피디에게 전화를 거니 자고 있는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문자 메시지로 무조건 스님이 하라는 대로 하고 오라고, 팀장님과 메인 언니에게는 촬영 아무 문제없다고 보고하겠다고 말하고는 침대에 누웠다. 서서히 해가 뜨고 있었다. 한 숨도 못 자고 다시 출근을 해야 했다. 물론 그 다음날도, 다다음날도 피디의 전화는 계속됐다. 


누군가는 진동이나 무음으로 바꿔놓으라고 했지만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쌓여가기 때문에 그럴 순 없었다. 혹시라도 전화를 안 받으면... 100개가 훌쩍 넘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을 수도 있다. 그건 더 끔찍했다. 그리고 영상통화는 누가 만들었는지, 정말 원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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