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작가가 되고서 하루 24시간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나는 식당을 소개하는 코너로 입봉 했고 매주 새로운 맛집을 찾아 섭외해야 했다. 보통 인터넷으로 후기를 찾아보고 최근에 타 방송에 나온 적은 없는지 검색해 본 다음에 전화로 섭외 요청을 한다. 사람들은 방송에서 섭외 요청을 하면 흔쾌히 응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식당 사장님들은 방송에 나가면 방송 효과로 인해 매출은 오르겠지만 갑자기 늘어난 손님들로 인해 힘들다며 거절하기 일쑤다. 그리고 굳이 방송에 나가기 않아도 장사가 잘 되는데 뭐하러 방송을 하냐면서 단칼에 거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사장님들을 설득하는 건 작가의 몫이다.
단호하게 전화를 끊어버리는 사람들은 설득하기 어렵겠지만, 방송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 여지가 보이면 재빨리 치고 들어가야 된다. 있는 애교 없는 애교를 끌어다가 설득하기 시작하는데 우리는 다른 방송사와 다르게 사장님의 음식 철학을 담을 거다, 손님들에게 방해가 되는 촬영은 하지 않겠다, 최소한의 인원만 촬영을 갈 거다, 비밀로 하고 싶은 레시피는 담지 않을 것이다, 저도 가서 먹어봤는데 꼭 소개하고 싶었다 등등 설득의 말을 쏟아낸다. 만약 한 번의 전화통화에서 설득이 되지 않으면 생각해보시라는 여지의 말과 함께 다음 날 다시 전화를 걸고 설득한다. 보통은 이러한 과정에서 섭외에 성공해 촬영을 나가게 된다.
만약 이러한 설득에도 넘어오지 않는다면 최후의 수단으로는 직접 찾아가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진짜 좋은 아이템, 이번이 아니면 절대 할 수 없는 타이밍이다 할 때 쓰는 방법이다. 왜냐하면 방송 제작 기간은 한정돼있고 빨리 섭외해서 촬영을 내보내야 되기 때문에 직접 발로 뛰는 건 리스크가 컸다. 만약 직접 찾아갔는데도 거절당하면 그 시간 동안 다른 아이템을 섭외할 시간을 날려버리는 거니까.
대부분의 사장님들은 작가가 직접 찾아가서 섭외를 시도하면 결국은 마지못해 설득당해 방송 촬영에 임해 주곤 하신다. 그러나 이것도 모두 통하는 방법은 아니다. 그들이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정도로 설득해서 넘어오지 않는다면 작가도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언젠가 꼭 기회가 된다면 다시 찾아오겠다고, 그때까지 번창하시라는 덕담을 남겨놓는다면 언젠가 기회가 주어지긴 한다. 그 기회가 흔치 않아서 그렇지.
식당 섭외를 예로 들었지만 방송작가에게 누군가를 설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기술이다. 연예인이나 방송인들처럼 방송이 익숙한 사람들을 섭외하는 건 쉽다. 그들은 방송의 생태계를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러나 일반인들을 섭외하려면 그들에게 방송의 성격들을 모두 설명해야 한다. 보이는 것만 촬영하는 게 아니라는 것, 방송시간의 10배에 달하는 촬영 시간이 생길 수 있다는 것, 촬영을 해놓고도 불방이 될 수 있다는 것 등 많은 경우의 수를 가지고 일반인을 설득하는 일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섭외나 촬영 시 제대로 설명되지 않은 부분들에 대해 출연자들이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온갖 애교 섞인 말로 설득하라고 했지만 사실 설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진심이다. 내가 진짜 이 아이템을 하고 싶고, 방송에 소개하고 싶은 이유를 제대로 전달해야 한다. 사람들은 남들이 자기에게 하는 말이 진심인지, 입에 바른 소리인지 금방 알아챈다. 그것이 얼굴을 보고하는 대화가 아닐지라도 말이다. 꼭 살갑지 않아도 된다. 꼭 수려한 말솜씨를 가지지 않아도 된다. 다만 진심이 빠진 설득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