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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진 Sep 11. 2019

생방송이라는 시한폭탄

취재작가 시절 담당하던 프로그램은 아침 6시부터 8시까지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세상의 아침'이었다. 오전 6시에 생방송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전날 밤샘을 하곤 했다. 선배 서브작가들은 원고를 쓰고 있었고, 막내였던 나는 선배들이 필요로 하는 자료를 찾아주며 대기해야 했다. 당시 서브작가들은 외주제작사 사무실에서 원고 작업을 하고 나는 KBS 9층 교양제작국에서 메인작가님과 단 둘이 밤샘을 해야 했다. 10년 넘게 차이가 나는 대선배님인 메인작가님과 밤을 지새워야 되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나는 자꾸만 졸려서 눈이 감기는데 메인작가님은 또렷한 눈으로 서브작가들의 원고를 봐주고, 신문도 읽고, 다음 아이템도 찾으셨다. 막내니까 정신 차려야지, 정신 차려야지 다짐하면서 너무 졸릴 때는 화장실로 피신해있기도 했다. 


밤샘하는 몇몇 프로그램을 제외하고 새벽의 방송국은 정말 조용하다. 이따금 피디님들이 편집하는 프로그램의 오디오 소리나 촬영 파일을 변환하는 기계음만 들릴 뿐이었다. 지루한 새벽을 깨우는 건 조간신문이 들어오는 새벽 4시쯤이다. 나는 회의 테이블에 신문사별로 조간신문을 세팅하고 메인작가님이 골라주는 신문 기사를 스크랩해서 생방송에 쓸 수 있게 정리해놓는 업무도 맡았다. 그리고 새벽 5시부터 방송국은 전쟁터가 된다. 


메인작가님은 아나운서와 모여 대본 회의를 하고 각 코너를 담당하는 서브작가들은 자신의 원고를 읽어줄 리포터와 대본 리딩 연습을 한다. 그리고 막내작가는 생방송 큐시트를 만든다. 방송 큐시트란 시간대별로 방송이 어떻게 나가는지를 간략하게 정리해놓은 문서로 방송의 전 스태프가 큐시트를 보고 다음 코너 순서를 살펴볼 수 있다. 

- 실제 작성했던 큐시트 (2009.6.11)


이렇게 작성한 큐시트는 방송의 송출을 담당하는 주조정실, 부조정실, 카메라 감독, 출연진 전원, 제작진 전원에게 나눠준다. 생방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시간'이다. 큐시트 왼쪽의 시간은 실제 시간이 아닌 예측 시간이다. 생방송에서는 아무리 대본이 있어도 말이 길어지거나 줄어들 수 있기 때문에 막내작가는 방송이 시작됨과 동시에 각 코너별로 걸리는 시간을 체크해야 된다. 혹여나 예측 시간보다 길어지면 부조정실 피디에게 알려서 분량을 조절해야 한다. 당시 나는 생방송이 시작되면 부조정실에 앉아 큐시트로 방송 시간을 체크하고 중간에 인터넷으로 실시간 날씨를 검색해서 CG 담당자에게 알려줘야 했다. 담당했던 지역은 제주도와 독도의 날씨를 체크해야 했다. 


그렇게 두 시간 동안 초긴장 상태로 시간을 체크하고 나면 녹초가 되기 마련이다. 생방송은 사고가 나면 편집으로 수습할 수도 없고 모든 제작진이 예민할 대로 예민해져 있기 때문에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만 생방송 중 졸고 말았다. 누군가 나를 툭툭 치는 바람에 눈을 떴는데 부조정실의 모든 제작진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순간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생방송 화면에는 이미 실시간 독도 영상이 나가고 있었다. 내가 날씨를 알려주질 않았으니 CG 담당자가 나를 다급하게 깨운 것이었다. 결국 날씨 정보 자막 없이 빈 독도 화면만 멍하니 10초가 나갔다. 진짜 그때의 기분이란... 온몸의 피가 싹 마르는 기분이었다. 


생방송이 끝나고 모든 제작진이 모인 자리에서 부장님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던 건, 내가 아닌 메인작가님이었다. 차라리 내가 혼나는 게 나았다. 막내의 실수는 그 사람을 관리하지 못한 관리자의 책임으로 넘어갔다. 연신 죄송하다 사과하는 메인작가님 뒤에서 나는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메인작가님은 괜찮다고, 실수할 수도 있다고 도리어 나를 위로해주셨지만 나는 그 날 방송국 화장실 변기에 앉아 펑펑 울었다. 정말 펑펑. 


방송사고란 그런 것이었다. 두 시간의 방송 중 10초였다. 남들은 고작 10초 아무도 기억 못 한다고 할 수 있지만 방송에서는 그 10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방송작가란 그런 치열한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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