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먼 타인(他人)으로

3시간의 숨소리, 3초의 악수 뒤에 남겨진 것들

by 남발

어떤 경기는 점수판의 숫자보다 선수의 일그러진 미간으로 기억된다.


심판대 위에 올라앉는 일은 일종의 고립을 자처하는 행위다. 하지만 그 높은 의자 위에서만 허락되는, 지독하게 선명한 풍경들이 있다. 포인트가 끝난 뒤 베이스라인으로 걸어가는 선수의 등 근육이 미세하게 떨리는 순간, 호흡을 고르기 위해 라켓 스트링을 강박적으로 매만지는 손가락, 그리고 패배의 기운이 엄습할 때 텅 빈 허공을 향해 던지는 예상가능한 눈빛 같은 것들.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부르지 않지만, 이미 그 내밀한 감정의 파동을 통해 서로의 한계를 목격한 사이라고 할 수 있다. 그토록 뜨겁게 섞였던 시간이 무색하게도, 경기가 끝나면 우리는 단 3초의 악수만을 나누고 돌아선다(그 악수조차 거부당할 때도 가끔 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이 그림자처럼 따라붙기도 한다.


“그렇게 매일 마주하는데, 선수들과 정이 들거나 친구가 되기도 하나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잠시 긴 호흡이 필요하다. 우리는 투어 기간 내내 같은 도시의 공기를 마신다.

호텔 로비나 엘리베이터 안에서 끈적한 피로를 공유하며 마주치고, 식당에서 말없이 각자의 식사를 한다.

누군가에게는 TV 속에서만 보던 동경의 대상이겠지만, 나는 매번 그들의 곁을 아무렇지 않게 스쳐 지나간다.

서로의 존재가 풍경이 되는 일주일, 하지만 그 익숙함이 ‘안부’ 이상의 대화로 이어지는 법은 거의 없다.

코트 위에서 내 귀에 머무는 그들의 거친 숨소리와 탄식에 비하면, 우리가 나누는 물리적인 인사나 대화는 지나치게 건조하다. 처음엔 이것이 심판의 중립성을 지키기 위한 딱딱한 규칙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깨닫게 된 것은,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이 기묘한 거리감이야말로 서로의 존엄을 지켜주는 유일한 방식이라는 사실이다.


흔히들 관계의 완성은 ‘가까워짐’에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코트 위에서의 관계는 정반대의 논리로 작동한다. 심판의 시선에는 적절한 ‘무게’가 필요하다. 선수의 고통이나 간절함에 과하게 마음이 쏠리는 순간, 내가 반드시 포착해야 할 진실의 궤적은 흐릿하게 번져버린다. 내 감정이 선수의 표정에 동화되는 순간, 내가 지켜온 객관성이라는 평형은 소리 없이 무너지고 만다. 내가 그들의 친구가 되지 않기로 선택하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그들이 흘린 땀의 무게를 온전히 증명해 내기 위해서다. 이러한 ‘고립된 연결’은 코트 밖 우리네 삶과도 닮아 있다. 우리는 사회라는 경기장에서 매일 수많은 사람을 스친다.


직장에서 마주하는 동료들을 떠올려 본다면, 서로의 사생활을 속속들이 알지 못해도 매일 아침의 피곤함을 견디며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묘한 연대감을 느낀다. 낯선 이들이 같은 상황 속에서 서로의 처지를 가늠하는 그 담백하고도 서늘한 마음, 나는 그것이 세상이 말하는 뜨거운 우정보다 더 단단하고 지속적인 연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사랑보다는 존중이, 친밀함보다는 신뢰가 관계의 뼈대를 이루는 순간들 말이다. 가까워지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서로를 온전히 지켜주는 관계. 그것은 차가운 외면이 아니라, 상대가 선 자리를 존중하는 가장 뜨거운 배려일지도 모른다.

경기가 끝나고 네트 앞에서 나누는 짧은 악수, 그리고 무심하게 던지는 “Thank you” 한마디.

그 짧은 인사 안에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공유되는 것들이 있다. ‘당신이 오늘 얼마나 외롭게 싸웠는지 내가 보았다’는 목격의 기록과,

‘나 역시 내 자리에서 흔들리지 않고 당신의 경기를 지켰다’는 무언의 약속이다.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다음 주면 우리는 또 다른 도시, 다른 코트에서 팽팽하게 대치할 것이다.

나는 여전히 차가운 체어 위에 앉아 선수의 뜨거운 표정을 읽어내겠지만, 결코 그 소용돌이 안으로 발을 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이것이 내가 코트 위에서 배운 관계의 방식일 것 같다. 이해하되 스며들지 않는 것,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먼 타인으로 남는 것. 이전 에피소드에서 이야기했던 ‘국기’가 누군가를 하나로 묶어주는 따뜻한 실이었다면, 심판의 ‘거리’는 그 실이 엉키지 않게 팽팽함을 유지해 주는 적절한 긴장이다.


오늘도 경기가 끝난 뒤 텅 빈 경기장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우리는 흔히 서로의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어야만 진정한 연결이라 믿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친구가 되지 않음으로써, 상대가 가진 치열한 삶의 무게를 비로소 지켜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꼭 친구가 아니어도 좋다.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버티고 있다는 것을 묵묵히 지켜봐 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충분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정직한 거리감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온전히 존중하는 마음들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지탱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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