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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봉 Feb 14. 2023

생강 깍두기의 추억

지나간 것은 지나간 데로 의미가 있다.

돼지고기 미역국 사건을 담은 글을 브런치에 올리고 이틀 뒤 아빠가 집에 오셨다. 남편이 출장 가서 방학 중인 아이들을 봐주러 오신 것이다. 


아빠가 온 날은 아이들에게 TV 시청권을 후하게 준다. 대부분 시간을 혼자 적적하게 지내실 테니 오롯이 아빠 목소리에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술꾼 부녀는 와인 한 병을 사이좋게 나누어 마시고는 두런두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술김에 글 쓰는 플랫폼에 아빠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썼다고 고백했다. 그리곤 혹시 돼지고기 미역국이 기억나는지 물었다. 그러자 아빠가 갑자기 허공을 바라보며 눈을 지그시 감더니 말했다.


"그래, 기억난다. 네가 미역국에 돼지고기를 넣었었지... 참....... 희한한 맛이었어..."

"아빠!! 아놔. 눈은 왜 감아요. 설마 그 맛이 생각나 괴로워하는겨? "


아빠는 아이처럼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러면서, "너 생강 깍두기는 기억나냐?" 하는 거였다. 뭐가 또 있는 거지. 전혀 기억이 안 났다. 아빠와 한 번 김치를 담갔던 기억이 나지만 생강 깍두기는 도통 기억이 안 났다. 내가 또 무슨 신박한 요리를 했나 싶었다. 이번에는 아빠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나도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얼씨구절씨구 추임새를 넣었다.



키 155cm, 50kg의 류여사는 작은 체격이었지만 동네에 소문난 큰 손이었다. 상용이 지방 현장에 있을 때 아이들도 멀리 가있고 적적하다며 평일에 군산까지 내려와 같이 지냈다. 한 번은 곧 김장철이라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강경에 들러 새우젓을 큰 양동이에 한가득 샀다. 뭘 이리 많이 사냐고 한 마디 했다가 류여사가 매섭게 째려봐 깨갱하고 원하는 대로 짐꾼 노릇만 성실히 해냈다. 그 해는 평소보다 김장 스케일이 컸다. 집에 돌아와서도 고춧가루니 마늘이니 갖가지 재료를 두둑하게 준비하고 김장날을 알려주며 휴가를 내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리고 일주일 후 류여사는 쓰러졌다. 몇 달 동안 새우젓 한 양동이, 소금 한 부대, 햇 고춧가루 등 배추를 제외한 모든 재료가 주인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류여사의 정성이 담긴 저 귀한 재료들을 도저히 다 버릴 수는 없었다. 하나하나 시장 조사해 가면서 정성스럽게 준비한 건데... 그래, 까짓 거. 김치 한 번 담가보자. 몇 달 새 벌써 너덜너덜해진 요리책 하나 들고 부녀는 용감하게 배추김치를 담그기 시작했다. 살이 통통하게 올라 힘겹게 반으로 가를 때마다 뽀득뽀득 소리를 내던 배추를 직접 절이고 무를 썰고 풀을 쑤어 양념을 만들었다. 김치는 한 번에 안 절여졌고 이리저리 사투를 벌인 끝에 마침내 배추들이 항복했다. 우여곡절 끝에 배추김치를 완성하고 보니 아직도 새우젓, 소금, 다진 마늘, 생강 등 많은 재료가 남아 있었다. 이왕 일 벌인 김에 끝장을 보자며 부녀는 깍두기와 파김치를 추가하기로 했다. 다음 날 재료를 더 사와 다시 양념을 만들기 시작했다. 주로 딸은 앉아서 자르고 버무리는 일을 맡고 상용은 무겁게 담긴 재료들을 가지고 와서 넣는 일을 맡았다.  요리책 레시피 확인은 필수지. 쓰인 대로 마늘 한 국자 퍼넣고 생강은 조금만 넣었다. 마늘은 몸에 좋으니 한 숟가락 더 넣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상용은 거침없이 마늘 한국자를 추가했다. 딸이 양념과 무를 버무리자 빠알간 깍두기가 탐스럽게 빛났다. 하지만, 이내 깍두기 맛을 보는 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상용도 서둘러 먹어보니 깍두기 맛이 묘했다. 달큰하고 매콤한 맛 뒤에 맹렬히 쫓아오는 그 알싸함이 정도를 지나쳤다. 다급해져서는 부랴부랴 원인을 찾아 나섰고 이내 상용은 머리를 움켜쥐고 말았다. 생강과 마늘을 바꿔서 넣은 것이다. 둘 다 곱게 다져 있어서 몰랐다. 부녀는 익으면 뭐든지 맛있어진다며 애써 웃으며 김치통 뚜껑을 닫았지만 그 깍두기는 영원히 맛있어지지 않았다.




얘기를 다 듣고 난 박장대소를 하며, "이제야 생강 깍두기가 기억나! 근데 남은 건 어떻게 했어?" 하고 물었다. 음식을 잘 버리지 않는 아빠를 알기에 궁금했다. 아빠는 나 없을 때 라면이나 찌개 따위에 생강 깍두기를 넣어 끝까지 다 먹었다고 했다. 


그 후로 한참을 아빠와 엄마의 부재로 우왕좌왕했던 에피소드를 추억처럼 꺼내었다. 그때는 병상 위 엄마는 당연하고 나머지 세 가족에게도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지금은 아빠와 마치 아름다운 추억인 양 웃으면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아픔도 시간이 지나면 옅어진다더니. 또 다른 기쁨의 나날들, 사람들의 응원, 미소 하나하나가 상처 위에 켜켜이 쌓이기 시작하면 아픔의 흔적은 있지만 더 이상 많이 아프지 않다. 오히려 아픔 속에 묻혀 보이지 않던 작디작은 소중한 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빠와 울고 웃던 하루하루, 같은 병실 보호자가 쥐어주는 시원한 주스 한 병, 유난히 따뜻한 간호선생님, 떠나가는 버스를 향해 처절한 손짓을 보낸 나를 위해 기꺼이 멈춰 선 버스 기사님. 작고 소소한 사람들의 응원. 너무나 새털 같아서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다. 상처 위에 덧댄 얇디얇은 거즈처럼 한 장 한 장 올려진 수많은 것들이 지금의 나로 서게 한다. 


참 좋아하는 노래가 있다. 이적의 '걱정 말아요 그대'라는 노래이다. 


그대 아픈 기억들 모두 그대여 그대 가슴에 깊이 묻어 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데로 그런 의미가 있죠


아픈 기억들은 가슴 깊이 묻었다. 지나간 아픔들이 모두 의미가 되어 내가 된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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