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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봉 Feb 07. 2023

미역국에 뭘 넣은 거니

얼마 전 아빠 생신이었다. 새언니가 끓여 온 미역국에서 깊고 진한 맛이 났다. 문득 아빠도 그 일을 기억하고 계실지 궁금해졌다.




엄마가 쓰러진 후 우리 가족의 삶은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모든 각도에서 큰 변화가 일었다.

아빠는 더 열심히 일했고 오빠는 군입대를 했다. 나는 휴학하고 엄마를 돌보며 집안 살림을 맡았다.


두 어달 지났을 때였다. 아빠 생신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엄마가 아픈 후 어떻게든 밥 해 먹고 기운 내겠다며 아빠가 사다 놓은 요리책이 식탁에 놓여 있었다. 서둘러 요리책을 훑어보고는 생일상 메뉴를 확정 지었다. 미역국, 불고기, 호박전.. 그래, 너희 3 총사로 정했다! 패기 있게 집 근처 마트로 나섰다. 불고기와 호박전은 야매로 몇 번 대충 해봤으니 미역국만 요리책을 보고 어찌어찌하면 되겠다 싶었다. 요리책을 보니 미역국이 의외로 쉬웠다. '쉽네, 쉬워~~' 콧노래까지 부르며 저녁 내내 요리를 마련했다. 밤늦게 들어온 아빠에게 내일 아침 꼭 드시고 가라고 살짝 힌트를 주며 기분 좋게 잠들었다.


다음 날 미역국을 데우고 국그릇에 퍼담는데 어제는 멀쩡해 보였던 국 모양새가 뭔가 이상했다. 국물에서 냄새가 나고 모두가 아는 감칠맛 나는 미역국과는 사뭇 달랐다. 뭐지, 고기가 상한 건가. 수습할 시간이 없어 서둘러 아침상을 차려드렸다. 한동안 즐거울 일이 없던 아빠는 오래간만에 활짝 웃으셨다.


소위 '요알못'인 아빠인지라 처음에는 무작정 드시다가 갑자기 물으셨다.

"근데 미역국에 뭐 넣은 거니? 무슨 고기 넣었어?"

무슨 고기? 아무 고기나 넣으면 되는 거 아닌가. 생각하며 쓰레기통을 뒤져 고기를 담았던 스티로폼과 비닐랩을 찾아냈다.

선명하게 찍혀 있던 네 글자 '돼지고기'


아빠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보통은 소고기를 넣는다고. 그래도 맛있다며 미역국을 퍽퍽 퍼드시고 한 그릇 더 요청하셨다. 아마도 장을 보면서 소고기 가격에 놀라 대충 비슷하게 썰린 저렴한 고기를 찾아 넣었던 것 같다. 잘 드시는 모습에 생각보다 맛있나? 하며 입꼬리가 기분 좋게 삐죽거렸다. 물론 나는 안(못) 먹었다. 몇 년이 지나서 안 사실이지만 아빠는 식재료가 남으면 된장찌개에 상추도 넣어드시는 분이었다.




그 후로 아빠 생신에는 늘 미역국을 잊지 않고 챙겨 드렸다. 물론 소고기 끊어다가.

십수 년 엄마 병수발 하며 힘든 내색 한 번 제대로 안 한 아빠에게 드린 엉성한 돼지고기 미역국이, 지난날 철없던 내 모습 같아서 생신 때면 늘 마음이 쓰렸다. 새언니가 준비한다고 해도 한사코 아빠 생신상은 내가 차려 드리겠다고 극성떨며(요리는 새언니가 훨씬 더 잘한다.) 미역국을 가져다 드렸다.


그런데 올해는 새언니가 먼저 선수를 쳤다. 미역국 포함해 갖가지 요리를 이미 다 준비했으니 몸만 오라고. 새언니의 배려에 몸이 편해져서는 아빠에게 요리대신 뭘 해드릴까 신중하게 고민했다. 알고 있었지만 늘 미적미적 미루기만 했던 그것이 떠올랐다. 테이프까지 붙여 놓은 봉투에서 생일 축하 카드를 끄집어냈다.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는 식상한 문구 뒤에 수줍게 하트가 그려져 있었다. 나이 일흔의 아빠와 마흔의 내가 주고받기에는 낯간지럽다 생각해 생일 카드에는 적지 못했던 말들이 있었다. 용기를 내어 펜을 다부지게 잡고는 남은 여백에 또박또박 진심을 새겨 넣는 마음으로 추가했다. 

'아빠 사랑해요. 엄마 아프고 많이 힘드셨을 텐데 저희를 잘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아빠의 든든한 기둥은 고사하고 문지방마저도 되지 못했던 지난날의 죄송함을 미역국으로만 표현해 왔다. 십수 년이 지나서야 하는 내 수줍은 고백의 말들이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았던 아빠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보듬어주길 바라본다.


 


 



*이미지 출처: Adobe 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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