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 살에 영어 배워봤니

by 남봉

지난주, 아빠가 집에 오셨다. 하원 이모님이 일주일 휴가를 내셔서 SOS를 쳤다. 작년까지 일흔이 넘는 나이에도 경력을 살려 매년 산업안전보건공단 국가 일자리 사업에 지원하여 쉬지 않고 일을 하셨다. 이번 연도에는 쉬고 다음 한 해 마지막으로 도전해 보겠다 하시며 의지를 불태우셨다. 우리 남매는 이제는 좀 쉬시라고 만류했지만 늘 하시는 대답은 같다. "집에 혼자 있어 뭐 하게."


시어머님이 이미 며칠간 와 계셔서 하루 더 부탁드려도 되지만 일부러 아빠에게 마지막 하루를 부탁드렸다. 혼자 집에 계시다 보니 반나절 이상은 티브이만 보시는 것 같아서 늘 마음이 쓰였다. 그래서 기회만 되면 평일에도 아이들을 핑계로 집으로 자주 모셨다.



아빠와 만나는 날은 무조건 와인 파티다. 남편, 친정 오빠, 새언니도 모두 술은 안 하거나 못 먹는다. 나와 아빠만 죽이 잘 맞는다. 건설직종에 수십 년간 몸담았던 그는 타고난 술꾼이었다. 하지만, 환갑이 넘어서는 매일 저녁상과 함께 하던 반주를 과감히 포기하셨다. 술은 좋아했지만 그 옛날부터 '웰빙'에 눈을 뜬 아빠는 칠십 평생 똥배 한 번을 안 만든 멋진 남자다. 그래도 아빠가 여전히 즐기는 건 딸과 함께 하는 와인이다.


자신감을 높여주는 확신의 세 손가락

성대한 와인 파티를 마친 다음 날 아침. 7시 10분에 알람이 울려 벌떡 일어나니 아빠는 이미 티브이를 보고 계셨다. 애들 등교시키고 출근할 생각에 대충 인사하고 분주히 움직였다. 몇 분 후 아들이 까치집을 머리에 이고 나와 티브이 보는 할아버지 옆에 기대었다. 그제야 무슨 프로를 보시나 힐끗 보니 EBS에서 하는 영어 방송이었다.


에잉? 영어라니. "아빠, 영어 방송도 봐?" 놀래서 물으니 아빠는 신이 난 표정으로 부엌으로 다가왔다. 얼마 전에 여행 갔을 때 '아이 우드 라이크 커휘?'라고 했는데 맞는 거냐며 물었다. 콩나물 해장국을 끓이던 손을 멈췄다. "아빠 그런 표현도 알아?" 천상 수줍은 충청도 남자가 웬일로 뽐내며 말을 이어 나갔다. "헤어질 때는 '테이크 케어' 하면 되는 거 맞지?" 아빠 입에서 굿바이가 아닌 Take care 라니. 이 무슨 자다가 콩나물 대가리 따는 소리인가. 아빠 언제 이렇게 영어가 늘은 거야. 다른 것도 좀 해보라 하니 구수한 발음으로 짧은 실용 문장들이 술술 나온다.


"훼어 이즈 더 배쓰룸?" , "홧 두 유 원투 드링크?"


해외 연수라도 다녀오셨냐고 너스레를 떠니 비결은 매일 아침 7시마다 하는 EBS영어 프로그램이라 했다. 매일 한 시간 동안 영어 방송을 들으며 실력을 갈고닦아 왔다 하셨다. 그리곤 갑자기 아이들이 읽는 영어책을 터프하게 집어 들더니 정직한 발음으로 읽어주는 묘기도 선보이셨다. 아들은 칠십넘은 할아버지에게 자극받아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 영어 방송을 보겠다 했다.




엄마가 처음 쓰러졌던 20여 년 전, 당시 우연히 이런 신문 기사를 읽었다. 다른 질병에 걸린 배우자를 둔 사람보다 의식 없는 배우자를 둔 사람이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여 년 간 아빠는 혼자만의 시간이 너무도 많았다. 혹여 우울증에 걸리시진 않을지 늘 걱정이 되었다. 난 늘 아빠만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혼자가 된 그의 인생이 안쓰러웠다.


그런데 이제와 생각해 보면 아빠는 엄마가 누워있는 동안에도, 돌아가신 후에도 끊임없이 자기 관리를 해왔다. 소식으로 늘 슬림한 몸매를 유지하고 술도 스스로 줄이셨다. 엄마 병세에 차도가 생기면 집으로 데려와 간병하겠다고 수많은 아줌마들 틈에 끼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퇴원할 수 있는 기미가 보이지 않자 아빠는 집 근처 전문대학 평생교육원에서 조경 수업을 들었다. 한 때 집이 수목원이 되었다. 언젠가는 동사무소에서 하는 어르신을 위한 스마트폰 사용법을 수강했다. 그 후, 스마트폰으로 결제를 하기 시작하셨다. 지금은 일흔이 넘어서 영어를 배우고 있다. 영어는 왜 배우시냐는 물음에 아빠는 말한다. "여행 가서 스스로 주문하고 싶어 그러지."


아빠는 정작 본인을 불쌍하게만 여기고 살아오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요즘 MZ세대들처럼 늘 '갓생'을 살아오며 아빠만의 인생을 이끌어 오셨다. 끊임없이 배우는 삶이 아빠를 지탱하는 원동력이었다.






녹슬지 않는 그의 열정을 보며 나는 새로운 도전과 마주한다. 내 나이 일흔에는 어떤 할머니가 되어 있을까.

연둣빛 라임이 꽂힌 마가리타 한 잔 음미하고 키보드를 신명 나게 두들기며 글을 쓰고 있는 환갑의 모습은 일단 그려놓았다.


백발의 일흔에는 자녀들이 지금의 나처럼 부모의 안위를 걱정할 때 무슨 소리냐며 멋지게 필살기를 날리고 싶다. 손주들 앞에서 화려한 코딩 솜씨를 뽐내는 정도면 될까. 바디프로필을 찍어 들이밀어볼까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