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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봉 May 20. 2023

나를 위한 춤 그리고 삶

목각인형이지만 춤추고 싶어

나는 거의 매일 춤을 춘다. 흔히들 생각하는 그런 아름다운 모양새의 춤은 아닐 것이다. '라훌라~' 소리를 내며 짱구춤을 추기도 하고, 흐느적흐느적 흡사 지렁이가 꿀렁거리는 듯한 춤도 선보인다. 어디밖에 내놓기에는 부끄러울 수 있는 춤이지만, 난 내 몸짓을 사랑한다. 아, 물론 혼자 이러고 놀지는 않는다. 나에게는 열성팬이 두 명이나 있으니까. 어떤 춤을 춰도 감동을 받거나(감동 포인트는 모르겠다.) 배꼽을 잡고 웃어주는 아이 둘. 나보다 '한 춤' 하는 남편은 가끔 날 비웃곤 하지만 전우 앞에서 부끄러움은 잊은 지 오래다.






늘 내 춤에 대해 관대했던 것은 아니다. 첫 직장 입사 직후 체육대회가 열렸다. 무려 협력사 4개가 함께 여는 단합 체육대회. 각 회사의 신입사원들은 흥을 돋우라는 지령을 받았다.  댄스배틀을 하라는 것. 이게 뭐라고 회사에서는 무조건 1등 하라며 잘 나가는 댄스선생님 섭외에 연습실까지 대관하는 정성을 보였다. 미션 박진영의 허니와 이효리의 유고걸. 총 8번 수업을 받고 우리는 1등을 따내야 했다. 첫 수업시간, 내 운명을 직감했다. 여자 동기가 총 3명이었는데 나 빼고 모두 선생님 뺨치는 수준급 댄서였던 것이다!! 집에서도 오, 허니이이이~~ 불러대며 연습했지만 결과는 뭐 뻔했다. 목각인형이 8번 만에 웨이브 탈 수 있겠는가.

결전의 날, 여전히 삐걱거렸지만 최선을 다했다. 공연을 마친 후엔, 해냈다는 성취감과 끝났다는 후련함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하늘 높이 올라가 있던 나를 땅바닥에 패대기친 건 과장님의 감상평이었다.  "네가 제일 못했어~!" 그 후로 나는 춤을 꽤 오랫동안 싫어했다.






그랬던 내가 다시 춤을 즐기기 시작한 이유는 아이들이었다. 우유를 먹여도 떡뻥을 쥐어줘 봐도 울음을 그치지 않던 아이들 앞에서 과장된 몸짓으로 춤을 추니 침을 질질 흘리며 구경을 하는 게 아닌가. 그때부터 제2의 춤인생이 시작되었다. 어떤 표정으로 어떤 춤을 춰도 모멸감을 느끼게 하지 않는 나의 충성스러운 팬들을 위해 무엇이든 추리라. 다짐했다.




그러고 보니 인생에서  번째로 시작한 게 또 있다. 마흔 즈음 찾아온 내 두 번째 사춘기.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났다. 지금까지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춤고 쓴소리를 듣는데 익숙해진 삶을 살았다. 이제는 추고 싶은 춤을 추고 춤을 사랑하듯,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그 일을 사랑하고 싶다.


첫 여에서 만난 글쓰기.

어린 시절 책을 좋아하던 소녀는 막연히 작가가 되고 싶어 했다. 문예창작과를 가고 싶어 했던 아이는 부모의 반대에 부딪혀 다른 길을 선택했다. 소중한 꿈은 마구 구겨서 아무 데나 던져 놓았다. 더 이상 타인이 선택한 삶이 아닌 내가 선택한 삶을 살기 위해 구겨지고 바랜 꿈을 다시 집어 들었다. 글 쓰는 법도 아직은 잘 모르겠고 어렵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난 글 쓰는 행위를 사랑한다.


두 번 째라고 시시하지 않다. 더 농익은 나만의 두 번째 춤인생, 두 번째 사춘기.


다음에 올 두 번 째는 무엇이 될까 설레며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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