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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봉 Jun 14. 2023

한여름에 겨울이불을 덮고 잔 이유

엄마가 아프고 몇 개월 뒤, 아빠는 다시 일을 시작했고 이내 출장도 잡혔다. 머나먼 타국에서도 싼 값에 구하느라 보안이 허술한 집에서 혼자 천하태평 배 긁으며 잠만 잘 잤던 나였다. 20대 초반, 다 큰 어른이었기에 집에 혼자 남음에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아빠가 출장을 떠나던 첫날,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엄마 병원 면회와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이른 저녁 집에 돌아왔다. 그 무렵 점점 살림에 익숙해져 혼자서도 음식을 한 두 가지 만들어 차려먹었다. 엄마가 자주 만들어 주던 참치 동그랑땡이 당기던 날이었다. 갓 지은 흰밥에 처음 치고는 잘 만든 참치 동그랑땡을 케첩에 야무지게 찍어 배 두둑하게 먹었다. 빈둥거리며 티브이를 보다 책을 읽다 이제 그만 자러 가야지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한국에 돌아와 처음으로 혼자 자는 날이었다. 자려고 침대를 정리하는데 살갗에 옷이 서걱서걱 닿는 느낌이 들었다. 몸살이 오려나. 찜통더위에 무슨 일인가 싶어 이마에 손을 짚어봤다. 열이 나는 것 같지는 않아 불을 끄고 누웠다. 베개에 머리만 닿으면 자는 사람이지만 이 날따라 잠이 오기는커녕 몸이 점점 뻣뻣하게 굳어 갔다. 윗집에서 들리는 의자 끄는 소리에 흠칫 놀랐다. 누가 얼굴을 만지는 느낌이 들어 질겁하며 홱 얼굴을 쓸어내리니 이불 끝자락의 소행이었다. 온몸에 개미들이 기어 다니는 것 같아 연신 긁어댔다. 머리맡에 두었던 폰을 슬며시 가지고 와 꼭 붙들었다. 허무맹랑한 공포영화의 장면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지나갔다.  


암흑 속  방비 상태를 견딜 수 없어 방 불을 켰다. 그것도 모자라 온 집안을 모두 밝히고서야 안심이 되었다. 다시 자려고 누우니 대낮처럼 밝아 잠이 쉬이 오지 않았다. 점점 졸려왔으나 다시 어둠 속에 끌려들어 갈 수 없었다. 장롱에서 큼지막한 겨울 이불을 꺼냈다. 그리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뒤집어썼다. 불빛이 어느 정도 가려져 적당한 어둠이 생겼다. 1분도 안되어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젠장, 숨이 막혔다. 안 되겠다 싶어 이불 한쪽을 조금 열었다. 후우.. 이산화탄소로 가득 찼던 이불 내부에 신선한 바람이 들어왔다. 산소와 함께 불빛이 침범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할 수 있는 건 없다. 잠이 왔다. 스르르....


스산한 기운에 새벽에 눈이 떠졌다. 한 여름밤인데 오한이 다. 땀에 흠뻑 젖었던 게 차게 식었나 보다. 갑자기 구토감이 들어 화장실로 달려갔다. 변기를 붙잡고 사투를 벌이다 겨우 일어섰다. 입 안에는 참치의 비릿함만이 씁쓸하게 남았다.


밤새 기싸움을 하던 어둠이 물러가고 아침해가 아무것도 모르는 척 밝아왔다.

살았다 외치며 이불속에서 탈출했다.




그 뒤로도 난 아빠가 출장 가는 날이면 여름에도 겨울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들었다. 어둠이 무서웠던 것인지 혼자 남겨졌다는 사실이 두려웠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병원에, 오빠는 군대에, 그리고 아빠는 잠시지만 멀리 떨어져 있었다. 가족 모두가 존재했지만 닿을 수 없었다. 아빠는 며칠 안에 돌아올 것이고 오빠는 2년 안에는 제대하겠지만, 엄마가 갑자기 쓰러졌듯 인생은 우리가 모르는 곳으로 굴러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낮에는 강한 햇살에 가려졌던 서글픔과 외로움이  밤이 되자 어둠의 기운을 타고 몸 밖으로 흘러나왔다. 두껍고 폭신한 겨울 이불이 유일한 위로가 되었다.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이 가고 나는 복학했다. 다시 혼자 자기 시작했지만 더 이상 이불을 뒤집어쓰지 않고 잘 수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떠나 왔기 때문이다. 그들을 두고서.

당분간은 섧지 않을 것이다. 안도했다.


수년이 흐른 후 알았다. 내가 떠나고 아빠의 하루하루도 애잔했었다는 것을. 아빠는 나처럼 이불을 뒤집어쓰지는 않았지만, 티브이가 하루종일 집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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