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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댁 Dec 18. 2022

08. 할 일이 없을 때 미래를 그린다.

특히 회사에서 할 일 없을 때.

연말 시즌이라 회사일에 여유는 거의 없다. 사업계획, 재계약 준비, 내년 먹거리 구상 등 일거리가 쏟아진다. 일부는 순간 집중하면 금방 완료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업무는 긴 호흡으로 준비해야 더 풍성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들이다. 그. 러. 나. 회사는 왜인지 모르겠는데 맨날 바쁘고 바쁘고 바쁘다. 팀원들과 며칠을 논의하여 결과를 가다듬고 구체화해야 할 일들이 고작 하루 이틀 후 회신을 독촉받는다. 이러니 아이디어는 내 머리와 경험에서만 나오고 결과물은 그 흔한 수식 오류 검증조차 하지 못한 채 보내진다.




아무튼 그런 시기가 얼추 지나갔다. 비바람이 몰아친 후의 고요함이랄까. 잠시나마 회사에서 할 일이 없을 때가 있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며칠씩 있는 건 아닌데, 간혹 오후 시간 정도는 아무도 날 찾지 않을 때가 있는 거다. 물론 해야 할 일이 있기는 하지만 당장 오늘 할 필요는 없는 정도.


그럴 때 난 항상 엑셀을 켜놓는다. 뭐.. 누가 보면 뭐라도 하고 있는 척하려는 목적이 있는데, 더 큰 이유는 따로 있다. 엑셀에 2013년부터 올해, 그리고 앞으로 5년 정도를 쭈욱 긁어서 만든다. 대충 15년어치가 될 거다. 그 셀 밑에는 내 나이를 적는다. 2013년의 나로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그리고 남은 5년 정도까지 쭈욱.


마흔 살에 은퇴하려면 얼마나 남은 걸까.

목적은 이거다. 마흔 살 전에 은퇴하기 위해 내 남은 직장생활을 확인하는 것. 몇 년 남지 않았다. 얼마 남지 않은 기간 동안 은퇴 후 삶을 준비해야 하는 거다. 100세 시대 남은 60년어치를 단 몇 년 만에 준비해야 한다. 후.. 쉽지가 않다. 분명 이런 일련의 딴짓거리를 작년 이 맘때에도 했었는데, 2022년 올해 동안 유의미하게 준비된 게 하나도 없다. 그래 놓고 또 은퇴 후 삶을 그리는 중이다. 무책임하구만.


아내에게 내년에는 우리 치열하게 살자고 했다. 올해에도 치열하게 살 생각이었는데 이런저런 핑곗거리를 만들면서 물러터지게 살았다. 그래서, 올해 내가 물러터지게 된 원인을 좀 파악하고 대응하기로 했다.


미라클모닝은 폐기. 한 시간 먼저 일어나서 한 시간 동안 졸다가 출근 준비할 거면 하지 말자. 출근이 워낙 빠른 편이라 새벽시간을 더 빼는 게 체력적으로 쉽지가 않다. 차라리 밤에 잠을 더 늦게 자는 쪽으로 시간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매일 쓰는 블로그는 주말에 몰아서 쓰기로. 예약 발행을 활용하는 거다. 주중 퇴근 후 1일 1포를 하자니 갈수록 힘이 딸려서 미루게 되더라. 야근도 밥 먹듯이 하는 회사라 집에 오면 바로 자야 하는 시간일 때도 많았다. 하여, 차라리 주말 아침에 일주일치 글을 몰아서 쓰기로 했다. 세이브 원고를 깔아 두고 그날그날 이슈에 따라 추가로 글을 쓰던가 하는 식. 이러려면 주말 늦잠 유혹을 물리쳐야 한다. 솔직히 늦잠은 응당 포기해야지.


전자책 발행이나 스토어, 스톡 사진 등 다른 파이프라인들도 어떻게 키울지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아직 구체적인 생각을 안 하고 있다. 해야지.. 네 할게요.. 눼눼




이런 내용들이, 회사에서 할 일 없을 때 그려진다. 일하는 척 켜놓은 엑셀 위에서 그려진다. 그러다 이거 괜찮다 싶으면 따로 구글 킵에 저장해 두고. 그 밖의 내용은 저장하지 않음 버튼과 동시에 사라진다. 각 잡고 딴짓하자니 쫄리고, 일을 하자니 싫은 때엔 이렇게 쓸모 있는 듯 쓸모없는 활동을 하며 시간을 흘린다.


오늘도 할 일이 없으니, 어제 쓰고 저장하지 않았던 거창한 미래들을 다시 그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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