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의전의 명암, 불필요한 일은 아닐까?

직장맘 상담소(조직 편)

by 남세스

의전(儀典, protocol) : 대접, 대우, 행사를 치르는 일정한 법식을 말한다. 보통은 특정 고위급 인물에 대한 존대나 외교 의례를 가리키는 좁은 의미로 많이 쓰인다.


으레 회사에서 상사를 모실 때 의전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나도 그 용어를 사용하긴 하지만

뭔지 모르게 거부감이 드는 단어이긴 하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부서는 의전이 많다.

행사가 많고 돌발 변수도 많다.

예를 들어, 갑자기 표님이 지방 출장을 계획하거나,

높으신 분들이 급 본회를 방문한다거나,

각 지역 단체장들이 자금지원을 급하게 요청하거나,

행사 스케줄이 이미 세팅이 되어 있는데 전날 오후 8시 순서를 변경하는

등등 생각지 못한 것들을 요구하거나,

급박하게 돌아가는 경우가 왕왕 생긴다.


딱히 고도의 스킬을 요하지는 않는다.

빠른 눈치와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볼 수 있는 입,

동선을 미리 예측에 움직일 수 있는 자세,

의전의 경험이 있다면 좀 더 수월하긴 하다.

대부분 행사는 비슷한 형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움직이므로

나 말고도 의전하는 사람이 또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합심해서 하는 행사라 협업을 통해 매우 잘 굴러가게 된다.


의전 상대방의 직급에 따라 의전을 해야 하는 사람이 달라진다.

대표는 부장, 부대표는 팀장, 팀장은 과장이 한다.

급에 따라 자동차, 식당,

회의 석상에 앉는 위치가 달라진다.

가장 핵심은

대표의 생각과 다르게 회의, 행사, 워크숍 등이 진행될 경우,

의견수렴을 바로바로 하기 위해서는

늘 PLAN B, C까지 갖고 가야 한다.

시간상 고민해서 수정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대표 생각이 바뀌었다 싶으면 바로 수정하고 고지하고 움직여야 한다.


보통 의전은 남성들이 하고,

의전하는 보직은 알아서 남성들로 배치한다.

여성들이 의전하는 일은 드물다.

우리 회사는 그렇다.


때로는 운전도 하고,

술을 진탕 마시고 밤늦게 끝나기도 하고,

출장이 많아,

여성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여성보다는 남성이 적합할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과장 시절부터 의전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무조건 복장부터 갖추었다.

복장이 갖춰지면 마음가짐도 같이 세팅된다.

시선도 달라진다.

저 사람은 의전을 하기 위해 왔구나.

란 인식을 심어주는 것도 가끔은 필요하다.

바지 정장에 하얀 셔츠, 굽이 낮은 구두, 회사 배지, 서류가방, 명함은 늘 챙겨 다녔다.

기동성이 있어야 하며, 움직이기 편해야 하고,

격식은 갖추되, 품위가 있는 것이 좋다.

필요한 서류 등을 요구 시에 바로바로 드려야 한다.

질문을 하면 대답을 바로 해 드려야 한다.

의외로 챙겨야 할 것이 많고,

화장품, 핸드폰, 여성용품 등을 늘 지니고 다녀야 하기에 핸드백보다는 서류가방이 좋다.



저번 주 토요일에도 통영 출장이 잡혔다.

새벽 5시에 출발해서 서울에 오후 7시에 도착하였다.

10시간 동안 차로 움직이는 것은 엉덩이가 없어지는

아주 무시무시한 일이었다.

새벽 5시에 출발해 통영에는 오전 10시에 도착했다.

음식점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각 지역 장들이 오면 인사를 하고

대표님이 오셔서 식사가 시작되면

옆 방에서 음식을 최대한 빨리 먹고

홀에서 대기하였다.

언제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르니,

그들의 시야에서 멀어지지 않고 필요한 것이 있을 때를 대비한다.

그리고 행사장으로 이동,

자리배치, 홍보실 등 소소한 것을 확인하고

행사하는 동안 또 대기하였다.

2시 정도가 되니 모든 행사가 끝나,

다시 부대표 차를 타고 서울로 향하였고

우리는 7시가 되어서야 서울에 도착하였다.

하다 보면,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을까? 란 의문이 많이 든다.


그냥 알아서 다녀와도 될 일인데 운전기사가 없는 것도 아니고,

내가 굳이 가서 뭔가를 챙기는 것 자체가 왜 필요할까? 싶다가도

혼자 시간에 맞게 움직이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지시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거 같다는 생각도 동시에 든다.


하지만 과도한 의전은 지양하면 좋겠다.

가장 이해가 안 되는 의전은 '차 문 열어주기'이다.

나는 의전을 하면서 도저히 차 문 열어주기는 안된다.

나만의 잣대지만 회사에 입사했을 때부터

임원들의 차문을 열어주는 모습을 보면 내 자존심이 상했다.

예를 갖추고, 함께 하는 것은 맞지만

굳이 차 문까지 열어줘야 하나 싶다.

과도한 의전이라고 생각해서 하기 싫은 것 같다.

그리고 차 문은 운전기사가 열어줄 수도 있는 거잖아.

굳이 나까지 나서서 하기는 싫다.



의전의 순기능을 믿고싶다.

임원들과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는 않으니까.

친구, 상사 심지어 학부모 모임에서는 가까워지기 위해 지속적인 만남을 갖지 않는가?

임원들과도 만남이 잦을수록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대화 주제도 다양해진다.

게다가, 리더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는 것은 나에겐 자양분이 되기도 한다.

늘 건설적인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엔 무엇이 되었던 도움이 된다.


인생의 선배에게 물어볼 것도 있고

업무가 아닌 인생에 대해서도 말이다.


좋은 임원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행운이다.

배워서 써먹을 수도 있고,

좀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한다.


물론,

인간적이지 않은 사람과 함께한다면 또 다른 생각을 하게 되겠지?

당장은,

좋은 임원과 함께하는 것에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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