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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에 흔들린 꽃들 Dec 06. 2022

어묵을 좋아하게 된 와이프

허머스를 좋아하게 된 나

와이프가 어묵을 장바구니에 담았을 때 나는 "왜?"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묵을 먹을 사람이 나뿐이고 내가 어묵을 먹고 싶다 말한 적도 없는데, 대체 왜 그걸 사는 거지? 물어보니 자기가 먹겠단다. 그래서 내가 또다시 물음표의 표정으로 대꾸하자, 어묵이 갑자기 먹고 싶더란다.


연애 시절의 우리에게 포장마차에서 같이 꼬치어묵을 먹는 낭만은 없었다. 와이프는 어묵 냄새만 맡아도 질색을 했으니 말이다. 동네에 아시안 식당조차 없는 미국 시골에서 자란 와이프의 배경을 생각해보면, 어묵을 싫어할 만도 했다. 그 물에 불은 통가죽 같은 겉모습부터 깊은 이질감을 불러올 테니. 그토록 싫다던 어묵을, 와이프는 왜 스스로 사 먹을 정도로 좋아하게 됐나? 본인도 모르는 이유를 내가 알 리가 없었다. 알 필요가 없는 이유 따윈 신경 쓰지 않겠다는 듯, 와이프는 어묵을 썰어 여러 음식에 넣거나 반찬으로 만드는 데 부단히 손을 놀렸다. 그리고 원래 어묵을 좋아했던 사람처럼 맛있게 먹었다.


와이프와 나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 사실 모든 면에서 다르다. 와이프와는 다르게 쓸데없는 호기심이 많은 나는 그녀가 자발적으로 어묵을 먹는 이유가 무척 궁금했다. 어묵이 들어간 음식이 식탁에 오르는 빈도가 많아질수록, 궁금증은 더해갔다. 그러나 어묵은 그저 와이프의 입으로 들어갈 뿐, 그 입에서 이유가 속시원히 나올 것 같진 않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몇 가지 가설을 세웠는데, 와이프의 식성이 나를 닮아가기 때문이란 게 가장 그럴싸했다. 실제로 그 가설을 뒷받침할 근거는 어묵뿐이 아니었다. 김치부터 시작해, 짜파게티, 냉면, 그리고 깻잎까지. 서양인들은 처음 접할 시 심호흡 후에 겨우 입에 넣을 만한 음식들이 이제 와이프에겐 즐겨 찾는 메뉴가 된 지 오래였다. 나의 강요에 가까운 권유에도 한사코 거절하던 어묵이었기에 그 받아들임이 상당히 부각돼 보였던 것이라, 나는 그렇게 결론 내렸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가설을 반대로 나에게도 적용할 수 있단 점이다. 와이프가 좋아하는 아보카도, 허머스, 향신료가 강한 카레 등 어린 시절 접한 적이 없던 음식들에 나는 큰 거부감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손사래부터 치던 그 음식들을 내 손으로 먹게 됐고, 덕분에 나의 입맛은 한 층 더 폭이 넓어졌다.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다른 점들이 결국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해 줄 것임을, 오늘도 식탁 위에 놓인 서로 다른 음식들을 통해 배운다. 눈 감고 딱 몇 입만 먹어보면 되는 처음 접하는 음식처럼, 다름이 같음이 되려 할 때 일어나는 삶의 여러 마찰들을 무난히 넘길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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