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라림 끝에 번지는 오렌지빛 안도감에 대하여
어린 시절, 넘어지기라도 하면 할머니는 서랍 깊숙한 곳에서 작은 유리병 하나를 꺼내 오셨다. 뚜껑에 달린 플라스틱 막대로 상처 위를 쓱 그으면, 하얀 무릎 위로 번지던 진득한 오렌지빛 액체. 우리는 그것을 ‘빨간약’이라 불렀다.
세월이 흘러 소독제의 종류는 다양해졌다. 거품이 이는 것, 냄새가 없는 것, 흉터를 남기지 않는 패치형까지. 하지만 마음이 덧나고 삶의 모서리에 긁힌 날이면, 유독 그 촌스럽고 선명했던 빨간약의 흔적이 그리워지곤 한다.
상처가 났을 때 가장 두려운 것은 상처 그 자체가 아니라 소독의 과정이다. 닿는 순간의 그 비명 섞인 따가움. 하지만 빨간약은 정직하다. 따갑다는 것은 아직 그곳에 감각이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균과 싸워 이겨내겠다는 치열한 선전포고다.
우리 삶도 그렇다. 실패의 쓴맛을 보거나 사람에게 데었을 때, 우리는 흔히 '아무렇지 않은 척' 상처를 덮어두려 한다. 하지만 곪은 마음을 치유하는 첫 번째 단계는 소독이다. 내 아픔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 쓰라림을 온전히 견뎌내는 시간. 그 지독한 소독의 시간을 거쳐야만 비로소 새살이 돋을 자리가 마련된다.
빨간약의 특징은 소독 후에도 한동안 피부에 그 자국이 남는다는 것이다. 멀리서 봐도 '저 사람 어디 다쳤구나'를 단번에 알 수 있게 만드는 그 발랄하고도 슬픈 색깔.
가끔은 그 표식이 위로가 될 때가 있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무릎에 빨간 지도를 그려본 적이 있다는 동질감. "나만 아픈 게 아니었구나", "너도 그 시간을 건너왔구나"라는 무언의 위로. 빨간약은 우리에게 말해준다. 아픈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며, 지금 이 선명한 자국은 당신이 치열하게 회복 중이라는 훈장과도 같다고 말이다.
소독제는 상처의 깊이를 따지지 않는다. 가시에 찔린 작은 틈이든, 넘어져 찢어진 커다란 생채기든 똑같은 온도로 다가와 균을 씻어낸다.
당신의 고민이 남들에게는 하찮아 보일까 봐, 혹은 이 정도 아픔쯤은 혼자 삼켜야 어른답다고 생각하며 빨간약을 아끼지 마시라. 세상에 위로받지 못할 상처는 없다. 아주 작은 생채기라도 제때 소독하지 않으면 마음은 결국 덧나기 마련이다.
오늘 밤, 거울 속의 당신이 유난히 지쳐 보인다면 마음의 서랍을 열어 빨간약을 꺼내보자. 눈물 한 방울 섞인 쓰라림이 지나가고 나면, 그 오렌지빛 얼룩 위로 든든한 딱지가 앉을 것이다.
당신은 지금, 충분히 잘 낫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