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뒤로 흐르는 풍경을 오염시키지 않겠다는 결심

강해서 침묵하거나, 두려워서 목소리를 내거나

by 무명초

선한 사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문득 의문이 고개를 든다. 저 고요한 뒷모습은 폭풍을 견딜 만큼 강해서 얻은 결과일까. 아니면 다가올 폭풍이 두려워 미리 쌓은 방어벽일까.

우리는 흔히 선함을 타고난 성정이나 완성된 인격이라 믿지만, 사실 선함은 매 순간 치열하게 선택되는 **'시력 싸움'**에 가깝다.


1. 품위라는 근력: 강해서 침묵하는 자의 선함

어떤 선함은 단단한 근육을 닮았다. 누군가 무례한 언사를 던졌을 때, 똑같이 진흙탕에 구르는 대신 그저 가만히 미소 짓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약해서 참는 것이 아니다. 상대를 무너뜨릴 힘이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에너지를 '나의 궤도를 지키는 데'만 쓰기로 결정한 강자들이다.


직장에서 무능을 감추려 목소리를 높이는 상사 앞에서, 이들은 자신의 기준을 잃지 않기 위해 선함을 택한다. 한 번 감정에 휘둘리기 시작하면, 그것이 결국 자신의 오랜 신념을 갉아먹는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나쁜 마음을 먹는 것이 얼마나 쉬운 길인지 알기에, 굳이 가파르고 정갈한 길을 걸으며 자신의 품위를 증명하는 것. 이들에게 선함은 가장 고도화된 자기 통제다.


2. 생존이라는 동력: 두려워서 목소리를 내는 자의 선함

반면, 어떤 선함은 지독한 공포에서 기인한다. 바뀌지 않는 미래, 즉 악이 상식이 된 세상에 대한 공포가 그들을 움직이게 한다.


아이 앞에서 누군가 당하는 모욕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부모, 온라인상의 혐오 발언에 떨리는 손으로 반박 댓글을 다는 이들은 결코 강해서 나서는 게 아니다. 오히려 겁이 많아서 목소리를 높인다. 오늘 내가 이 부당함에 침묵한다면, 내일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마주할 풍경이 얼마나 황량해질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선함은 고결한 선택이 아니라, 더 나빠질 세상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유일한 생존 전략이다. 지금 멈추지 않으면 정면충돌하고 말 것이라는 예민한 직감이 그들을 움직인다.


3. 풍경의 은유: 결국 어떤 삶을 남길 것인가

강함에서 기인한 선함이든, 두려움에서 비롯된 선함이든 그 본질은 하나로 수렴된다. 바로 **'내 뒤로 흐르는 풍경을 오염시키지 않겠다'**는 결심이다.


기차 창가에 앉아 고개를 어디로 꺾느냐에 따라 풍경의 이름이 미래와 과거로 나뉘듯, 인생도 마찬가지다. 무례하게 받아치는 복수는 당장 혀끝에 달콤할지 모르나, 그것은 곧 기차 뒤편으로 버려지는 구질구질한 과거가 되어 나의 역사를 더럽힌다.


선한 이들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지점을 미리 본다. 내가 내뱉은 날 선 말이 결국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미래를 두려워하고, 내가 지켜낸 다정한 침묵이 내 삶의 든든한 배경이 될 것임을 믿는다.


오늘 당신의 목소리가 유난히 떨리고 있다면, 그것은 당신이 약해서가 아니다. 더 나은 풍경을 남기고 싶다는 정당한 두려움이 당신 안에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오늘 고개를 돌려 지켜낸 그 풍경이, 결국 당신의 내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