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 책이 두꺼울수록 형님이고 누님이다

'작가'라는 낚시찌를 문 이들에게

by 무명초

1. 두께가 곧 계급이다 이 바닥도 싸움판이랑 비슷하다. 주먹 세면 형님이듯, 책이 두꺼우면 일단 형님이고 누님이다. 모셔야 하는게 맞습니다. 단순히 경외심 때문이 아니다. 실제로 맞았을 때 물리적으로도 고통의 차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서점에서 벽돌만큼 두꺼운 책을 마주할 때면 경건함마저 느껴진다. 저 두께를 채우기 위해 저자는 대체 얼마나 많은 밤을 모니터 불빛에 눈을 지졌을까.

돌이켜보면 내가 A4 용지 한 장을 꽉 채워본 건, 학창 시절 잘못을 빌며 썼던 '깜지'가 유일했다. 그때는 시키니까 억지로라도 채웠는데, 사회에 나와 내 의지로 '창작'이라는 걸 해보니 이건 반성문 쓰는 것보다 백 배는 더 고약하다. A4 한 장의 여백이 태평양처럼 넓게 느껴질 때, 나는 고작 종이 한 장에 패배한 무력한 인간이 된다.


2. 고도의 전략가와 순진한 낚시꾼들 요즘은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라고들 한다. 그 달콤한 말에 낚여 나를 포함한 수많은 이들이 이 짓(?)을 시작했다. 하지만 막상 들어와 보니 여긴 고도의 심리전과 전략이 판치는 전쟁터다.

남과 달라야 한다는 강박은 기본이고, 독자의 뇌리에 박힐 메시지도 벼려야 한다. 독자의 마음을 훔치는 전략은 갈수록 고도화되어 이제는 거의 '상업 예술'의 경지다. '작가'라는 타이틀이 탐나 덥석 물어버린 낚싯바늘. 물 밖으로 끌려 나와 보니 숨은 가쁘고 갈 길은 멀다. 이 화려한 낚시터에서 나는 과연 월척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그저 그런 피라미로 남을까.


3. 창작의 고통은 평등하고, 완성은 위대하다 오글거리는 화면을 마주하면서 "에잇, 버려!"를 외치는 그 수많은 고통을 견디고, 상업화된 전략과 진심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결국 한 권의 책이라는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은 사람들. 그들은 단순한 저자가 아니라 고통의 터널을 완주한 마라토너들이다. 낯선 이들이 보내온 예상치 못한 환대에 세상을 다 얻은 것 같다가도, 빈 화면 앞에서 다시 무력해지는 나에게 그들의 두툼한 책은 그 자체로 거대한 산맥이다.


4. 여전히 어렵다, 그래서 쓴다 내 글은 여전히 얇디얇다. 형님, 누님들의 벽돌책 옆에 서면 내 글은 포스트잇 한 장 분량 같아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어쩌겠나. 이미 '작가'라는 낚시찌를 물어버린 것을.

오늘도 나는 깜지를 쓰던 정성으로, 혹은 독학 코딩에 실패했던 그 빡침(?)을 원동력 삼아 한 줄을 보탠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형님!" 소리 들을 만큼 두툼한 진심을 쌓을 수 있을까. A4 한 장의 파도는 여전히 높다. 나는 오늘 이 파도를 넘을 수 있을까. 일단은 커서만 깜빡이는 저 빈 화면 속으로 노를 저어 가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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