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답 노트를 소거하는 손가락

스마트폰이 만들어낸 '오점 없는 인생'

by 무명초

우리는 과거의 종이 사진첩을 보며 "아, 이때 참 못났네" 하고 해석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 꼴 보기 싫어" 하고 너무나 쉽게 삭제합니다.


완벽한 과거를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

스마트폰의 저장소는 가차 없다. 아니, 지나치게 친절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 잊고 싶은 실수, 다시 꺼내 보기 괴로운 기억들은 손가락 몇 번의 움직임으로 세상에서 영원히 지워버릴 수 있다. '삭제' 버튼은 우리에게 신의 권능을 빌려준다. 내 인생에서 마음에 안 드는 '오답'들을 실시간으로 소거해 가며, 오직 정답들로만 가득 찬 매끄러운 사진첩을 편집해 나가는 것이다.


오답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

하지만 그렇게 쉽게 오답 노트를 찢어버리는 행위가 반복될수록, 역설적으로 우리 인생은 점점 가벼워진다. 원래 인생이란 틀린 문제들 사이에서 고민하고, 그 지질한 오답들을 껴안고 가면서 깊어지는 법인데, 스마트폰은 그 과정을 허락하지 않는다. 조금만 보기 싫어도 '휴지통'으로 보내버리면 그만이다.


기억의 세탁, 존재의 소멸

지우고 싶은 기억을 남겨두지 않고 쉽게 쉽게 지워버린 끝에 남는 건,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하지만 아무런 서사도 없는 '전시용 삶'뿐이다.


오답 노트를 스스로 소거하며 우리는 실패로부터 배울 기회를 잃고, 고통을 견디는 근육을 퇴화시킨다. 사진첩 속의 나는 늘 웃고 있지만, 그 미소 뒤에 숨겨져 있어야 할 수많은 시행착오와 눈물들이 삭제된 자리는 텅 빈 공허함으로 채워진다.


물론 인생에도 **'퇴고'**는 필요하다. 글을 쓸 때 문장을 다듬듯, 우리의 지난날을 돌아보며 오점을 수정하고 더 나은 길을 모색하는 행위는 반드시 거쳐야 할 성장의 과정이다. 하지만 퇴고는 '삭제'와 다르다. 퇴고는 잘못된 문장을 끝까지 읽어내고 고민한 끝에 얻어내는 정답이지만, 삭제는 읽기 싫은 문장을 보지도 않고 찢어버리는 포기다. 오답을 옳은 길로 수정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오답을 내 삶의 일부로 인정하고 껴안아야 한다. 지우고 싶은 오점을 응시하는 그 괴로운 시간이 결국 우리를 '진짜 나'로 빚어내는 퇴고의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편리하게 지워버린 그 수많은 '오답'들이 사실은 나를 나답게 만들던 진짜 조각들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우리 손 안에는 오직 매끄러운 액정 화면만이 차갑게 남을 뿐이다.




"당신이 방금 지운 그 '오답'은, 수정을 기다리던 퇴고의 문장이었습니까? 아니면 그저 마주하기 싫어 도망친 당신의 진실이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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