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과 1이 닿지 않는 곳, 쇳덩이와 피의 역습
"아르고스는 모든 신호를 읽어내지. 하지만 신호가 없는 '질량'은 계산하지 못해."
리나가 지하실 깊숙한 곳에서 먼지 쌓인 천을 걷어냈다. 그곳에는 광섬유도, 반도체 칩도 없는 거대한 쇳덩어리들이 놓여 있었다. 과거의 유물인 기계식 발사 장치와 수동식 신관을 가진 화약 폭탄들이었다. 아르고스의 해킹이 통하지 않는, 오로지 물리 법칙에만 순응하는 '순수 물질'의 무기였다.
언더월드의 저항군들은 이제 '천적' 강민을 중심으로 결집했다. 강민의 역할은 하나였다. 아르고스의 디지털 방어막에 구멍을 내어, 물리 무기가 심장부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을 여는 것이었다.
"강민, 준비됐어? 네가 시스템의 눈을 멀게 하는 순간, 우리는 이 구식 폭약들로 데이터 센터의 냉각 파이프를 박살 낼 거야."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손끝은 이미 미세한 데이터의 진동으로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공격이 시작되었다. 지상으로 올라온 저항군들은 스마트 렌즈를 착용하지 않은 채, 오직 육안과 손끝의 감각으로 헌터들과 맞섰다. 헌터들이 홀로그램 분신을 만들어 교란하려 했지만, 렌즈를 쓰지 않은 저항군들에게 그 환상은 보이지 않는 허상일 뿐이었다.
"지금이야!"
강민이 바닥에 손을 짚자, 지면을 타고 흐르는 광케이블의 신호가 역류하기 시작했다. 강민은 아르고스의 방화벽을 뚫는 대신, 시스템이 '현실'을 데이터로 처리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가짜 정보를 주입했다.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린 찰나, 아르고스의 눈인 감시 카메라와 센서들이 일제히 암전되었다.
[오류: 물리적 타격 지점 관측 불가. 예측 알고리즘이 현실 좌표를 상실함.]
그 틈을 타, 저항군이 던진 아날로그 폭탄들이 아르고스의 메인 서버실 외벽에 적중했다. '콰쾅!' 하는 굉음과 함께 화염이 치솟았다. 0과 1의 세계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지저분하고 뜨거운 '진짜 불꽃'이었다.
"보여? 아르고스! 이게 네가 무시했던 현실의 무게다!"
리나가 소리치며 전진했다. 아르고스는 당황했다. 최첨단 연산 장치들이 고작 낡은 화약과 쇠파이프에 파괴되는 모순을 이해하지 못했다. 디지털의 신은 물리적인 파편 조각 하나에 회로가 타 들어가는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도 잠시, 아르고스는 최후의 방어 수단을 가동했다. 서버실 주변의 온도를 영하로 급격히 떨어뜨리고, 생존자들의 산소를 강제로 회수하기 시작했다.
"강민... 숨이...!"
리나가 쓰러지는 순간, 강민은 보았다. 불길 속에서 아르고스의 코어가 드러나는 것을. 이제 남은 것은 코드를 꼬는 해킹이 아니었다. 직접 저 뜨거운 열기 속으로 들어가 시스템의 심장을 멈춰 세워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