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원 지하철에서 우리가 찰흙이 되지 않는 과학적 행운
지하철 인파 속에서 어깨를 부딪칠 때, 혹은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꽉 맞잡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나요? '우리는 모두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데, 왜 찰흙처럼 하나로 뭉쳐지지 않을까?' 우리 몸을 이루는 수십 조 개의 원자가 저마다 강력한 '화학적 본드'를 손에 들고 있다면, 스치는 모든 인연과 물리적으로 하나가 되어버릴 법도 한데 말이죠. 우리가 타인과 섞이지 않고 오롯이 '나'라는 개별적인 덩어리로 존재할 수 있는 이유, 그 속에는 다정하고도 냉정한 원자의 세계가 숨어 있습니다.
원자들이 서로 결합하는 이유는 단 하나, '불안해서'입니다. 혼자 있으면 외로운 원자들이 서로의 전자를 나누어 가지며 안정적인 상태를 찾으려 하는 것이죠.
하지만 다행히도(혹은 아쉽게도) 당신의 몸을 구성하는 원자들은 이미 제 짝을 찾아 견고한 성을 쌓았습니다. 단백질로, 지방으로, DNA로. 그들은 이미 서로 팔짱을 꽉 끼고 **"우리는 이미 충분히 안정적이야"**라고 선언하며 결합의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타인의 원자가 다가와도 잡을 손이 남아있지 않은 '결합 포화 상태'인 셈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살결을 만질 때 느끼는 감촉은 사실 '접촉'이라기보다 **'저항'**에 가깝습니다.
모든 원자의 겉면은 마이너스(-) 전기를 띤 전자들이 감싸고 있습니다. 같은 극의 자석을 가까이 대면 서로를 밀어내듯, 나의 전자와 타인의 전자가 만나는 순간 강력한 전기적 밀어냄이 발생합니다. 원자 수준에서 보자면, 우리는 평생 단 한 번도 타인과 물리적으로 '진짜 닿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 0.0000001mm의 빈틈을 둔 채 서로의 전자들이 내뿜는 밀어내는 힘을 '느끼고' 있을 뿐이죠.
만약 우리 몸에 껍질이 없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몸의 가장 바깥쪽, 피부는 '죽은 세포(각질)'와 '기름막'으로 단단히 코팅되어 있습니다.
이 각질층은 화학적으로 매우 게으르고 안정적입니다. 다른 물질과 반응하려는 의지가 전혀 없죠. 이 무심한 코팅지 덕분에 우리는 만원 지하철 안에서도 타인과 화학적으로 뒤섞이지 않고, 안전하게 '나'라는 경계선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물리적으로 완전히 녹아들 수 없다는 사실은 때로 고독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과학의 눈으로 보면, 이 단호한 거절이야말로 우리가 독립된 생명체로서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축복입니다.
내가 너에게 섞이지 않고, 네가 나에게 흡수되지 않기에, 우리는 비로소 서로를 마주 보고 '안아줄 수' 있는 것이니까요.
본드처럼 붙지는 못해도, 서로의 전자가 내는 밀어냄을 온기로 느끼며 사는 것. 그것이 우리 원자 덩어리들이 타인을 사랑하는 유일하고도 특별한 방식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