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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R300

11_친애하는 나의 악플러들

by 뇌팔이

평생 운동과는 담 쌓고 살다가 작년 초 건강검진 결과 가벼운 골다공증과 고지혈증 소견을 듣고 마흔이 넘어 요가를 시작했다.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는 제대로 뛰어본 적도 없기 때문에 가장 무리가 안 가는 정적인 운동을 찾다가 발견한 종목이다. 우스갯소리로 나이들면 살려고 운동을 한다더니 내가 그꼴이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병원다니듯이 요가원에 다녔다. 그나마 여느 워킹맘처럼 신랑에게, 친정엄마에게 번갈아 살림을 맡기는 처지라 업무시간 이외의 시간을 빼서 운동하기란 적잖이 눈치가 보이는 일이었기 때문에 업무시간을 조율해서 일주일에 한번, 평일 낮 한 시간의 요가수업을 예약했다.


처음 몇 달동안은 얼굴이 말간 소녀같은 요가 선생님과 가벼운 스트레칭을 이어갔다. ‘어깨의 긴장을 풀고 깊고 긴 숨을 쉽니다…’ 크게 운동이 된다기 보다는 맑고 안정된 목소리로 시같은 문장들을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정화되는 듯한 기분 좋은 리프레시 때문에 운동이라면 질색하던 내가 어렵지 않게 매주 요가원 문턱을 넘었다. 물론 내 사지는 뻣뻣하기 그지 없었고 똑바로 앉아서 허리를 바르게 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럴때마다 선생님은 세상 나른한 어조로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만 끌어 올려보세요.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나의 뒷목이, 척추가, 골반이 길게 늘어나는 것을 느낍니다.’ 라고 말해주었다.


점점 나는 스트레칭을 평소에도 즐기게 되었는데 언제나 ‘찢어질 듯 아파서’ 못 하던 자세들을 어느새 ‘근육이 쭉 늘어나면서 그 사이로 공기가 들어가는’ 느낌을 즐기며 하게 되었다. 이렇게 말하면 대단한 요가자세일 것 같지만 그저 똑바로 서서 허리를 숙이거나 옆구리를 늘리는 등의 영락없는 국민체조용 자세들이다. (앗차, MZ세대들은 국민체조를 알려나? 칠순 노인들이 약수터에서 많이 하는 자세에 가깝다.) 여튼 운동이라기 보다는 기본적으로 몸을 개발하는 일을 더이상 괴로운 일로 느끼지 않게 되면서 운동횟수를 늘려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버려지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요가원은 사무실 바로 맞은 편 건물로 다니고 개인 강습으로 운동 시간도 내 스케쥴에 따라 편하게 조정할 수 있도록 했지만 직장인이 근무일 5일 중 2일의 스케줄을 확보하는 것은 생각보다 상당히 어려웠다. 꽤 자주 스케줄을 옮기고 자주 여러사람에게 양해를 구해야했다. 규칙적인 운동으로 자기관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관리라는 숙제를 해치우느라 허덕대는 것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그럴 줄 알았다

그 말이 듣기 싫어서 버거운 일을 계속하며 진땀을 뺀다. 이미 처음 계획한 원대한 목표는 퇴색했고 명분에 매달려 질질 끌려가면서 멈추지도 못한다. 구차하게 시간을 돌려막기 하는 기분이 잦아지자 운동자체에 대한 애정도 식는 것 같았다. 아예 그만 둘까 생각하다가 문득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렇지 뭐

그게 더 싫었다. 스스로 포기하고 말았다는 패배감이 찾아들자 머릿속 가득 악플이 달렸다. ‘늘 그런 식이지. 그만둘 핑계를 찾은 거야. 또 남 탓을 할거니? 아직 일년도 못 채웠잖아? 강사 자격증까지 따겠다더니 말뿐이야. 이런 식으로는 어떤 것도 못 이룰 거야.’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이런 식으로 뭔들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면 된다.

좌우명이자 내 인생의 줄임말이다. 늘 도전한 일들을 어렵지 않게 해냈다. 물론 무리해서 모험을 하지 않기 때문이겠지만 미리 먼 미래를 상상하며 결과를 예측해 의심하지 않고 확실한 오늘에 충실하면 결국 아등바등 억지로 했다는 느낌없이 무엇이든 손에 넣었다. 그렇게 외국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사장이 될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것을 이루는 과정은 운전면허를 딸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차근차근 길을 찾아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했다. 결국 하면 된다.


선생님과 스케줄을 정리했다.

올해는 되도록 미리 정한 스케줄을 바꾸지 않고 지키기로 했다. 편의에 따라 스케줄을 자꾸 옮기다 보니 오히려 그 범위가 크게 보였던 것 같다. 고작 한시간인데 요가 수업이 있는 날과 없는 날로 구분지어 졌다. 절대 변치 않는 고정 일정으로 만든다면 오히려 거슬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위험 요소가 적은 날 하루를 정해서 주 1회 수업으로 조정하고 선생님이 내주시는 숙제를 집에서 성실히 해 가기로 했다.


운동 횟수를 늘리는 것은 실패했지만 포기라는 극단적 선택을 먹은 것은 내 머릿속의 악플이었다. 물론 애초에 포기를 부추긴 것도 그 악플이었지만. ‘이렇게까지 구차하게 운동을 해야겠어? 운동이 되긴 하냐? 하나마나한 운동으로 시간을 허비하느니 한시간이라도 일찍 들어가서 애기들 밥이나 챙겨주지’ 거기서 비롯된 자괴감으로 잠시 흔들렸지만 생각해보면 옳은 말이다.

반드시 해야할 일로 인정하지 않았기때문에 젖동냥하듯 시간돌려막기로 운동을 다니다 보니 생긴 일이다. 악플러가 자극하지 않았다면 운동의 중요성을 평가하고 정식 일과로 받아들여 포지셔닝하는 단계를 거치지 못 했을 것이다.


6개월 정도 수업을 하다 보니 늘 ‘할 수 있는 만큼’ 을 강조하던 선생님도 ‘조금 더’ 라고 응원한다. 언제까지나 초급자로 머물러 있을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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