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R300

15_드루이그는 좋겠다

by 뇌팔이
운동은 폼이고 패션은 스웩이고 춤은 간지다.
그럼 직장인의 간지는 맥북 아닌가?




신랑이 맥북을 최신버전으로 바꾸면서 구형 맥북 하나가 내 손에 떨어졌다. 사실 구버전과 새버전의 차이조차 구분을 못 하기 때문에 외관상 거의 차이가 없는 구버전을 매우 기쁘게 받았다. 그리고 내 업무 퀄리티를 높여줄만한지 살펴보기로 했다.


우선 아이폰과 연동시키고 낯선 사파리대신 크롬을 브라우저로 설정했다. 그리고 가장 궁금했던 키노트 기능을 하나씩 점검했다. MS와 크게 다르다기 보다는 호환성 때문에 PPT를 쓴다는 말이 맞나보다. 물론 기본 템플릿들이 아주 ‘애플스러웠다’. (기본 폰트도 미묘하게 마음에 들었다) 넘버스는 엑셀이 제공하는 함수기능을 거의 다 지원하는 것 같았고 페이지는 여러 기능을 간결하게 정리해 놓은 UI가 맘에 쏙 들었다. (사실 MS의 도구상자는 여러모로 남자들의 헛간 작업실을 연상시키지 않나)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은 mac이 제공하는 솔루션은 다양한 템플릿을 제공하는 데에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다양한 템플릿사용을 '권장'하는 데에 있다. MS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템플릿을 찾고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도구박스를 배치한 것과 같은 태도로 방대한 종류의 템플릿을 나열하고 있기 때문에 사용자가 능동적으로 검색해서 사용해야한다. 게다가 설계자의 의도와 판단에 따라 카테고리가 나누어져 있으므로 '템플릿을 찾아 헤매는 시간에 만드는 게 빠르다'는 생각이 들도록 한다. 잠시 둘러봤을 뿐인데도 사람들이 'mac은 사용자 친화적이다' 라고 말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UI 디자인 vs UX 디자인

모두들 PC를 쓰다가 mac을 쓰면 불편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닐 것이라고 말했지만 잠시간의 사용감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은행업무라던가 기타 행정업무는 모르겠지만 일반 사무업무를 보는데에는 큰 차이를 못 느끼면서 사용했다. 물론 메뉴창 위치나 스크롤 방향 등 모든 동선이 반대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잠시 왼손잡이를 체험하는 기분이 들기는 하는데 곧 적응된다. 그리고 내심 그런 이물감이 오히려 뇌를 깨우지 않을까 기대가 되면서 불편이라기 보다는 리프레쉬되는 느낌을 받았다. 더욱이 모든 프로그램을 처음 사용하는데도 내가 필요한 기능을 찾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각 프로그램의 도구상자는 마치 내 생각 패턴을 그대로 진열해 놓은 것 같이 배열되어서 머릿속의 명령어가 메뉴바에 나와있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익숙한 기능들을 찾는 것이 원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워서 추가 기능들을 보자 '사용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자발적으로 들었다. 시각화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레이아웃으로 내 의지를 디자인 했다는 것이 경험으로 느껴지자 왜 다수의 디자이너들이 소위 '애플빠'가 되는지 이해가 갔다.


[출처] 씨네플레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

나는 이터널스를 보면서 드루이그가 가장 부러웠다. 사람들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그를 누가 이길 수 있단 말인가. 드루이그가 될 수 있다면 세상을 다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맥북을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이곳 저곳에 숨어 있는 드루이그의 흔적을 발견했다. 버튼을 눌러보고 싶도록 유도하고 정확히 내가 원하던 기능들이라고 생각하게 하며 화면이 좁지 않다고 느끼게 하고 더 많은 것을 시도하고 싶도록 한다. 행동을 디자인하는 것은 어떤 능력인가. 어떻게 하면 회사의 UX를 디자인하고 직원들이 성과를 내도록 이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고객의 사고과정을 원하는대로 디자인 할 수 있을까. 애플은 그것을 어떻게 얻었을까. 엄청난 양의 데이터 수집 덕분인가.(애플은 지금도 전세계인의 사용자 경험을 수집중이니까.) 아니면 보통이상의 뛰어난 인재들의 노력일까.


전혀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