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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R300

53_뜨거운 싱어즈

by 뇌팔이


지금 그대로 삶이 충만하다고 느낄 때

현재의 삶에 만족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다고 현재 삶이 불행하다고 단정할 사람도 많지 않다. 나도 마찬가지다. 매일 아침이 설렘으로 가득하고 하루 하루가 신나는 봄소풍 같다고 말할 수는 없는 평범한 삶을 산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어떤 노래를 듣고서, 어떤 영화를 보다가, 어느 노부부의 뒷모습에서 가슴이 벅차올라 터질 듯이 충만한 기분에 빠져드는 것이다. 가만히 내가 가진 것들을 곱씹어보다가 마치 사이다 한 모금이 입안에서 처음에는 한 방울씩 터지다 주최할 수 없이 가스가 불어나 기침을 뿜듯이 목끝에서 정체를 알 수없는,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감정덩어리가 터진다.


그럼 내가 가진 삶이 이대로 뜨겁고 차갑고 달고 쓰구나 느끼면서 지금 이대로 반짝이고 가득 찬 삶이라고 깨달으며 조금 충만해진다. 무의식적으로 혀끝으로 입천장을 들어올리는 일을 멈추고 입술 주변에 힘이 빠지면서 꼭 진공상태에 몸이 붕 떠오르는 것처럼 얼굴의 근육이 중력을 거스르는 느낌을 받는다. 귓볼이 약간 뜨끈하면서 전기가 통하는 것도 같고 귓바퀴가 정수리쪽으로 조금 당기면서 귓구멍이 확장된다.


합창이 주는 감동

조연배우, 노배우들이 모여 만드는 하모니를 듣자니 그들의 얼굴 표정과 가사가 너무나 절묘해서 아침 출근길부터 감상에 젖고 말았다. 가사 한 줄에 노배우의 삶이 그려져 추억에 젖다가 미쳐 빠져나오기도 전에 이름도 가물가물한 조연 배우가 다음 소절에서 마치 그간의 설움을 폭발시키듯이 절규한다. 그렇게 아주 독한 마라탕을 먹듯이 나도 모르게 복합적인 진한 감정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이다.


감정이라는 것은 공유할 수록 더 커지고 진해지고 정화된다. 그래서 기쁨도, 슬픔도 나눌수록 좋다. 합창은 그런 힘이 있는 것 같다. 한 곡조의 노래를 합창단 모두와 같은 감정으로 공감하고 있음을 느끼며 더욱 감동하고 더욱 젖어드는 것이다. 그래서 음악 프로그램에서는 가수의 얼굴을 중계하는 것 못지않게 객석의 감동을 전달하기 위해 애쓰는 모양이다.


나는 그 관객들 사이의 한 사람으로서 이 충만함을 공유한다. 서이숙 배우가 나의 길을 가고 있다고 외치는 순간의 위로와 안심으로 오늘을 시작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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