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리우 / 셀라론 계단 이야기
칠레에 한 화가이자 조각가가 있었다.
이름은 호르헤 셀라론. 여행을 좋아했던 그는 50여 개 나라를 돌아다니다 1990년,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에 정착했다. 그리고 어느 빈민가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낡아 허물어진 계단에 타일을 입히는 일이었다.
‘파벨라’라고 불리는 리우 빈민가는 범죄의 소굴이었다. 총소리가 끊이지 않고, 경찰도 두 손을 든 무법지대였다. 셀라론은 빈민가를 아름답게 칠하고 싶었다. 아이들이 아름다움을 보고 자라면 생각도 아름답게 바뀌고, 범죄도 자연스레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했던 거다. 절망이 덮은 마을에서 희망의 싹을 줍듯, 도시 폐기물 더미에서 타일을 하나씩 수거해서 계단에 입혔다. 음습했던 계단은 시나브로 색을 띄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작업은 중단되고 말았다. 타일이 턱없이 모자랐던 까닭이다. 폐기물 더미에서 찾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는 타일을 살 돈이 없었다. 빈민가에 아름다움을 입히려는 그의 꿈도 그렇게 사그라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앞으로 타일이 몇 장 도착했다. 한 외국인 여행자가 빈민가 투어를 하다가 우연히 그 계단을 본 것이다. 작업이 중단된 사정을 들은 여행자는 셀라론에게 타일을 선물하고 떠났다. 그렇게 전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이 하나씩, 둘씩 타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 인터넷 세상이 열리고부터는 전 세계로 그의 사연이 퍼졌다. 어느새 60여 나라에서 저마다 타일을 보내왔다. 더 이상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전 세계 여행자들이 그의 작업에 동참한 셈이니까.
2013년. 이백열다섯 개 계단은 전 세계에서 도착한 2천여 개의 타일로 모두 덮였다. 처음 작업을 시작한 지 23년 만에, 그의 꿈은 기어코 완성됐다. 출신도, 색깔도, 무늬도 제각기 다른 타일들로 덮인 단 하나의 계단. 부조화가 빚어낸 조화는 놀랍도록 붉게 빛나는 예술작품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작업을 마친 뒤, 그 계단에서 스스로 숨을 거두었다.
제 할 일을 다 했다는 마음이었을까. 유서 한 장 남기지 않고.
사람들은 그가 만들고 숨진 계단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 ‘셀라론 계단.’ 지금은 빈민가의 낡은 계단이 아닌, 리우에서 가장 온기 넘치는 관광지가 되었다. 동쪽 골목에서 햇살이 스미는 아침이면 타일 조각들이 일제히 빛을 반사하는데, 아마도 그가 꿈꾸던 빈민가의 아침이었을 것이다. 계단 주변은 여전히 찌든 가난의 풍경이지만, 적어도 그 계단을 걷는 순간만큼은 풍요로움이 저마다의 색으로 반짝이니까.
전 세계 여행자들의 마음씨가 한 예술가의 혼을 다독이며 빚어낸 계단.
범죄가 난무하는 이 도시에 이르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었다.
이보다 아름다운 계단을 다시는 그 어디에서도 만나지 못할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