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승선
[5월 19일(월)]
아침이 밝았다. 오늘 드디어 크루즈 배에 탄다. 이제 매일 정처없이 이리저리 헤매고 다닐 일도 없고 매일 짐가방을 새로 쌀 일도 없으며 어떤 호텔을 잡을까 고심할 필요도 없다.
배에 타기 전에 몇가지 필요한 물품을 사야 했다. 페브리즈가 우선 대상이다. 매일 빨래할 수도 없는데 임시방편적으로 그 날 입은 티셔츠에 페브리즈를 듬뿍 뿌려 옷걸이에 걸어 놓으면 땀냄새 제거에 효과가 있다.
그 외에 서류봉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영수증을 챙길 필요는 없지만 렌터카 회사의 영수증처럼 구체적 항목이 열거되어 있는 영수증(정확하게 말하면 invoice다) 같은 것은 보관할 필요가 있었다.
로마 공항 근처의 주유소에서는 영수증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디파짓 머니 취소문자는 아직도 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 때 만일을 대비하여 42유로만큼 기름을 넣었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하여 주유기계의 화면을 사진으로 찍어 놓은 것은 있었다. 귀국하면 신용카드 회사 직원과 이야기 할 때 증거로 제출할 것이다.
구글맵으로 검색했다. 1.5km 정도의 거리에 CONAD가 있었다. 여행하면서 보니까 CONAD는 이탈리아의 슈퍼마켓 체인 같았다. 그곳에서 페브리즈를 간신히 찾았다. 서류봉투는 없어서 조그만 쇼핑 종이 봉투를 샀다. 그 외에 아내의 주전부리용 스낵을 샀다.
쇼핑하는 동안에 핸드폰에 WhatsApp의 알림 문자가 떴다. 스텔라 디 마레의 집주인이 보낸 문자였다. 오늘 자기가 크루즈 터미널에 데려다 줘야 하는가 하고 묻는 내용이었다. 나는 여기에 체크인 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라고 답을 보냈다. 이 친구가 우리를 태워주고 별도로 돈을 달라고 할지가 궁금했지만 그 친구가 그 점에 대해서 묻지 않길래 나도 그냥 가만히 있었다.
11시에 1층 철문 앞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짐가방을 다 챙겨서 내려왔더니 집주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공터에 있는 그의 밴에 짐을 다 실었다. 나는 그 친구가 셔틀버스 정거장까지 태워주는 줄 알았는데 크루즈 터미널의 우리 배(COSTA FASCINOSA) 바로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원래 이 구역은 외부차량은 못들어오는데 이 친구는 출입증을 가지고 있었다. 경비에게 보여주자 차단봉을 열어주었다.
추가로 돈을 달라고 하지는 않았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그 친구와 따뜻한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다.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거다.
터미널 앞에는 우리의 짐가방을 받으려고 크루즈 직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메일로 태그를 받은 것이 있었다. 그 태그를 프린트하여 태그 홀더에 넣은 후 그것을 짐가방 손잡이에 매달았다. (쿠팡에 가면 크루즈 태크 홀더 라는 것을 판다) 그 태그에는 우리의 선실(cabin) 번호가 적혀 있다. 직원들은 그 태그를 보고 우리 선실까지 배달해 준다.
우리 배 손님들만 수용하는 터미널은 가건물이었다. 거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미 와서 좌석에 앉아 있었다. 입구에서 우리에게 신용카드 크기의 승선카드를 주었다. 승선카드에 바코드가 새겨져 있다. 이것이 크루즈 선박에 있는 동안 우리의 신분증이 된다. 그리고 크레딧 카드를 이 승선카드에 등록하면 크루즈 선박 내에서 술이나 커피를 사 마시거나 물건을 쇼핑할 때 이것으로 결제할 수 있다.
우리에게 2번이라고 적힌 딱딱한 종이카드를 줬다. 이 종이카드에 적힌 순서대로 그룹을 만들어서 배에 승선하는 것이었다.
12시가 되자 승선이 시작되었다. 배에 탈 때 보안검색이 있었다. 비행기에 탈 때 처럼 액체류를 못가지게 타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흉기나 폭발물을 검사하는 것 같았다. 이것은 앞으로 기항지 투어(excursion)을 하러 나갔다가 들어올 때도 매 번 하는 절차다. 비행기 탈 때처럼 엄격하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한다.
크루즈에는 반입금지 물품이 있다. 다리미 같은 물품이다. 화재의 위험 때문이다. 크루즈 같은 큰 배가 풍랑 때문에 침몰할 확률은 작지만, (망망대해에서 바다가 화를 내면 크루즈도 조각배에 지나지 않지만 기상예측기술이 발달해서 미리 피할 것이다), 화재 위험은 상존하고 선박 충돌 같은 위험도 있다.
또한 술도 반입금지 품목이다. 크루즈의 매상을 올리기 위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과다음주로 인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인지 이유는 잘 모르겠다.
캐빈에 짐가방이 배달될 때까지는 한참 시간이 걸린다. 일단 우리 방부터 가봤다. 방에는 크게 4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거실이 있는 suite다, 두번째는 발코니가 있는 우리 방이다. 셋째는 발코니는 없고 창만 있는 방이다. 네번째는 창이 없는 방이다.
크루즈를 탄 모든 사람은 돈에 여유가 있으면 suite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발코니가 있는 방을 선택하라고 한다. 창만 있는 방은 좋지 않고 창도 없는 방은 절대로 절대로 피해야 한다.
발코니가 있어도 크지 않다. 의자 2개와 조그만 원형 탁자가 있지만 거기 앉아서 와인을 마시는 분위기는 즐기기 힘들다. 발코니에 난간만 있고 외창은 없기 때문이므로 온통 먼지 투성이이기 때문이다. 발코니의 위력은 다른 곳에 있다. 빨래 널기의 최적의 장소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기로 하겠다.
발코니가 있는 캐빈은 창문이 넓다. 거의 통창 수준이다.
침대에 누워서 통창을 통해서 일출이나 일몰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해가 뜨고 해가 지는 장면은 언제 봐도 장관이다.
캐빈은 의외로 넓다. 샤워공간도 충분하고, 작지만 책상도 있다. 옷장도 의외로 크다. 옷장과 책상에는 여러개의 서랍이 달려있다. 욕실 안에도 좌우양쪽으로 선반이 여러층으로 있다.
따라서 우리 짐가방에 있는 모든 옷들과 물건들을 모두 꺼내서 깔끔하게 수납할 수있다.
9 층에 부페가 있다. 우리 캐빈은 8층이므로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면 된다.
아침식사를 하지 않았으므로 다양한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식사 후 캐빈으로 돌아왔더니 우리 짐가방이 방 안으로 운반되어 있었다.
짐을 꺼내서 옷장, 서랍, 선반에 모두 정리했다. 짐가방을 digging하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
크루즈의 가장 큰 장점이 이거다. 방을 옮기지 않으면서 매일 새로운 곳에 간다는 것.
그 동안 속내의 등 빨래가 밀려 있었다.
쿠팡에서 세이브타임이라는 세탁 키트를 사서 가지고 왔다. 비닐봉투에 세탁물을 넣고 1회용 세제 봉투를 뜯어 세제를 넣는다. 샤워기로 그 안에 미지근한 물을 부어넣는다. 양손으로 그 비닐봉투를 잡고 마구 흔든다. 그리고 15분 정도 놓아둔다. 그 동안 세제가 침투한다. 그 후에 구정물을 부어내고 빨래를 헹군다. 이 세제의 강점은 거품을 많이 만들어내지 않아서 여러번 헹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그동안 미뤄둔 팬티와 양말을 여러 번에 걸쳐 세탁했다.
아내는 한국에서 사온 빨래 줄을 방 천장에 대각선으로 걸쳐서 설치했다.
좁은 샤워부스 안의 천장에 가느다란 철사줄이 걸려 있었다. 속내의나 양말을 이곳에 걸어서 일단 물기를 빼라는 취지 같았다. 그러나 줄이 짧아서 팬티 하나에 양말 두 짝 정도 밖에 못 널 것 같았다.
아내는 발코니로 나갔다. 거기에 빨래줄을 걸 수 있다면 물이 떨어지는 빨래도 문제 없을 것이다. 발코니 천장에는 빨래줄을 걸 곳이 없었다.
집요한 아내는 의자 두 개를 벌려놓고 의자 등받이 끝을 꼭지점으로 하여 기어코 빨래줄 공사를 완성하였다. 높이가 낮아서 티셔츠는 접어서 널 수 밖에 없지만 속내의를 너는데는 문제 없었다.
아내는 세이브타임 키트 세탁법을 탐탁치않게 여겼다. 세면대에서 손으로 빨겠다고 하였다.
나도 다음날 부터는 매일 그 날 입은 팬티와 양말을 손으로 빨기로 하였다.
저녁 식사는 부페에서 할 수도 있고 내가 예약해놓은 전용식당에서 매일 풀코스의 fine dining을 먹을 수도 있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