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추행과 추행(#01)

친고죄(親告罪)의 의미

by N 변호사

이 글은 법률전문가들에게는 그지없이 흥미진진한 내용이 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난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법률은 물리학처럼 ‘그들만의 학문’이 아니다. 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해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법률문외한이라고 해도 자신에게 논리적 사고 능력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분이라면 매우 긴 이 글을 두 번, 세 번 되풀이 읽으면서 정확한 이해에 도전해보시길 바란다.


군인인 상병 김갑돌은 밤11시쯤 일병 나순해의 생활관으로 들어가 조용히 옆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은밀하게 나순해의 성기를 손으로 주무르기 시작했다. 당황한 나순해는 어쩔 줄 모르고 있다가 귓속말로 잠깐 바깥에 나가자고 하였다. 옆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알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김갑돌과 나순해는 생활관 밖으로 나와 근처에 있는 체력단련실로 들어갔다. 나순해는 “왜 이러는 겁니까. 저를 좋아하는 겁니까?” 라고 물었다. 김갑돌은 말없이 나순해의 손을 잡아 자신의 팬티 속에 넣게 하고 자신의 성기를 나순해의 성기에 밀착시키고 부벼댔다. 그리고 두사람은 각자의 생활관으로 돌아갔다.


나순해는 고민 끝에 병영생활 상담관에게 이 사실을 털어 놓았고 상담관은 대대장에게 보고하여 수사가 시작되었다. 군수사기관인 헌병대대에서는 김갑돌을 강제추행죄로 입건하였다. 김갑돌은 범행 일체를 자백하였다. 수사가 끝나자 나순해는 돌연 김갑돌에 대한 고소를 취소하였다.


국가가 형벌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고소인(피해자)의 의사는 범죄의 성립을 좌우하지 못한다. 고소인이 고소를 취소하더라도 그것은 양형참작의 사유가 될 뿐 그것 때문에 형사처벌이 감경되거나 면제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수년 전 재벌회장이 자기 아들을 때린 술집 종업원에게 조직폭력배를 동원하여 폭력을 행사한 적이 있는데 피해자인 그 술집 종업원과 합의가 되었음에도 그 재벌회장은 실형을 선고받은 것이 그 예이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친고죄라는 것이 있다. 친고죄(親告罪)란 “고소와 친하다”, 즉, “고소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의미로서 고소가 없거나 고소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고소취소가 되면 형사처벌을 할 수 없는 범죄를 말한다. 국가가 형벌권을 행사하는 과정에 있어서 피해자(고소인)의 인격이 지나치게 침해 당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친고죄로 입법한다. 지금은 폐지되었지만 대표적인 것으로 간통죄를 들 수 있다.


남편의 간통 사실을 알고 있지만 자식들을 위하여 세상에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는 아내가 있는데 옆집에 사는 경찰관이 남편을 간통죄로 입건하고 수사를 시작한다면 그 아내와 자식들의 고통은 매우 클 것이다. 이와 같이 고소가 있어야만 수사를 할 수 있는 친고죄의 경우에 고소가 없거나 고소취소가 되면 범죄가 성립하는지 여부를 따지지 않고 수사는 종결되고 검사는 불기소 처분을 하게 된다.


군대에서 검사 역할을 하는 군검찰관은 김갑돌의 강제추행 혐의에 대하여 고소취소가 되었다고 하여 불기소 처분을 하였다. (주석 : 2013. 4. 5.자로 형법 및 군형법이 개정되면서 강제추행죄는 더 이상 친고죄가 아닌 것으로 됐다. 개정 군형법은 2013. 6. 19.부터 시행되게 되었는데 이 사건은 2013. 3. 경의 범행이었으므로 개정 되기 전의 군형법이 적용되어 강제추행죄는 여전히 친고죄였다.)


그러나, 김갑돌의 행위를 괘씸하게 본 군검찰관은 형법에는 없고 군형법에만 있는 죄인 ‘추행죄’를 적용하여 김갑돌을 기소하였다. 대한민국 군인에 대하여도 일반인과 똑같이 형법이 적용되지만 군형법은 군인에게만 적용되는 법률로서 형법에 없는 범죄도 규정하고 있고, 형법에도 있는 범죄이지만 군인이기 때문에 가중처벌하는 규정도 두고 있다.


예를 들어 <지휘관이 그 할 바를 다하지 아니하고 적에게 항복하거나 부대, 요새, 진영, 함선 또는 항공기를 적에게 방임(放任)한 경우에는 사형에 처한다> 같은 항복죄는 형법에는 없고 군형법에만 있는 범죄다.


형법상 강간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라고 규정되어 있지만 군형법상의 강간죄는 <폭행이나 협박으로 군인이나 군무원인 사람을 강간한 사람은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라고 규정되어 있어 군인이 군인을 강간한 경우에는 3년 이상이 아니라 5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처벌받게 된다.


이 사건 경우에 다행히도 고소인(나순해)이 고소취소를 해주었으므로 김갑돌은 불기소 처분을 받게 될 것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듣고 김갑돌의 부모는 안도했다가 추행죄라는 죄명으로 기소되었다는 통보를 받고 아연실색하게 되었다. 내가 김갑돌의 변호인으로 선임되었다. 나는 군형법을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추행죄로 기소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강제추행죄와 추행죄가 어떻게 다른 것인지 궁금했다.


죄형법정주의(罪刑法定主義)란 법률원칙이 있다. 범죄와 형벌에 관한 내용이 미리 법률에 명확한 내용으로 규정되어 있는 경우에만 범죄자를 처벌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형법, 군형법,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등, 우리나라에는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범죄의 내용을 정해 놓은 형사처벌 법규가 많다. 형사처벌 법규에서 범죄 유형의 내용을 규정해 놓았는데 이를 구성요건이라고 한다. 처벌대상 행위는 그 구성요건에 정확하게 해당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2012. 12. 18.자로 형법이 개정되기 전의 구 형법에서는 강간죄의 피해자를 '부녀(婦女)'라고 규정해 놓았고, 강제추행죄는 피해자를 '사람'으로 규정해 놓았었다. 따라서, 여자가 남자를 강간한 경우 및 남자가 남자를 강간한 경우는 강간죄라 아니라 강제추행죄로 처벌할 수 밖에 없다. 여자를 의미하는 ‘부녀’만이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죄형법정주의가 확립되지 않아 유추해석이 가능하다면, 남자를 강간한 경우도 강간죄로 처벌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행 형법은 강간죄의 피해자를 ‘부녀’에서 ‘사람’으로 개정하여 규정해 놓았으므로 이제는 여자가 남자를 강간한 경우 및 남자가 남자를 강간한 경우에 그 범죄자를 강간죄로 처벌할 수 있게 되었다. 위와같이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을 염두에 두고 형사사건에 있어서 검사, 판사, 변호사는 늘 해당행위가 구성요건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엄밀하게 따지게 된다.


[주석 : 이 글을 읽은 샤프한 후배 변호사가 다음과 같은 카톡을 보내 왔다.


<이 부분에도 주석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강간죄 객체가 사람으로 변경되긴 했지만, 강간의 의미를 성기에 성기가 삽입되는 것으로 보고있기 때문에, 여성으로 성전환수술을 한 남성이 다른 남성으로부터 성기 삽입당한 경우만 남성임에도 강간죄의 객체가 될수 있고, 일반 남성의 성기에는 다른 성기가 삽입될수 없는 구조라서 일반강간죄의 객체가 될수 없는듯 합니다. 또 여성의 경우도 남성으로 성전환수술을 하지 않고서는 삽입할 수 있는 모양의 성기가 없으므로 일반강간죄 주체는 되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유사강간 조항을 별도로 만든듯 합니다. 유사강간도 강간이지만 이런 점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어 보입니다>


법률가들은 이렇게 항상 '죄형법정주의'를 염두에 두고 엄격하고 엄밀하게 따진다. 위 카톡을 보내 준 후배 변호사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군검찰관이 김갑돌에게 적용한 군형법상 추행죄는 <군인이나 군무원인 사람에 대하여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는 군형법 제92조의 6이었다. 나는 그 조문을 몇 번씩 읽어 보았다. 남자가 다른 남자의 성기를 손으로 주무르는 행위는 분명히 아름답거나 장려할만한 행위라고 볼 수는 없다. 즉, 추행(더러운 행동)에 해당된다. 따라서, 김갑돌에 대해서 추행죄를 적용한 군검찰관의 공소제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의문이 들었다. 강제추행죄는 뭐고, 추행죄는 뭐란 말인가.


한 개의 행위가 두 개의 범죄에 동시에 해당하는 경우는 많다. 이것을 법률용어로 상상적 경합범(想像的 競合犯)이라고 한다. (주석 : 관념적(觀念的) 경합범이라는 다른 말도 있었는데 이 용어는 이젠 쓰이지 않고 상상적 경합범이라는 말로 통일되었다. 그러나, 나는 관념적 경합범이라는 말이 더 맞다고 생각한다. 이것과 반대되는 말은 실체적(實體的) 경합범이다)


주먹으로 얼굴을 때려서 피해자의 얼굴에 상처를 입힘과 동시에 피해자가 쓰고 있던 안경을 파손한 경우에는 상해죄와 재물손괴죄의 상상적 경합범이 되는 것이다. 형법은 <1개의 행위가 수개의 죄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가장 중한 죄에 정한 형으로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이럴 때는 상해죄에 정한 형으로 처벌하게 된다.


검찰관은 이 사건 행위를 강제추행죄와 추행죄의 상상적 경합범으로 파악하고 강제추행죄에 대하여는 불기소 처분을 하고 추행죄로만 기소한 것이었다. 만일, 고소취소가 되지 않았다면 강제추행죄와 추행죄 모두를 상상적 경합범으로 기소했을 것이다.


나는 강제추행죄 외에 추행죄를 별도로 군형법에 둔 이유가 무엇인지 - 형법에는 추행죄라는 것이 없다 - 추행죄의 적용대상이 되는 행위가 무엇인지 연구를 시작했다. 추행죄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군형법은 1962.1.20. 제정되었는데 처음부터 추행죄는 <계간(鷄姦) 기타 추행을 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는 구성요건으로 존재했었다. (주석 : 계간이란 항문성교를 뜻한다) 추행죄가 입법된 이유는 군대 내에서 동성간에 성교 행위 등 성적 행위를 하는 것을 금지하기 위함이었다. 우리나라가 군형법을 제정하면서 미국 군형법의 해당 조항을 베낀 것이었다.


군대가 아닌 일반 사회에서 동성애 행위는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군대 내에서 동성애 행위가 벌어진다면 그것은 군의 기강 등의 관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옆의 침상에 앉아 있는 병사들이 자기들끼리 수시로 키스를 하고 밤에는 항문성교 행위를 하면 그것을 군대라고 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이런 행위를 법률로 금지할 필요가 있고 그것이 추행죄의 입법목적이었다.


자기들끼리 좋아서 성행위를 하는 경우에 강제추행죄로는 처벌할 수 없다. 강제추행죄는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일방적으로 성행위를 하는 것을 구성요건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제로 추행행위를 하는 경우에는 강제추행죄로, 서로 좋아서 하는 동성간의 성행위는 추행죄로 처벌하면 되는 것이었다.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일어났다. 강제추행죄는 친고죄이므로 그 죄질이 아무리 불량해도 피해자가 고소취소를 하는 경우에는 그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자 정의감 넘치는 과거의 어느 군검찰관은 법률을 연구한 끝에 추행죄는 친고죄가 아니고 강제추행 행위는 동시에 추행죄의 구성요건도 만족시키므로 고소취소가 된 경우는 피의자를 추행죄로 기소해서 처벌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리고 추행죄로 기소하였고 군사법원에서도 아무 의심없이 유죄 선고를 해 줬고 어느덧 그것은 수십년간의 관행이 되어 버렸다.(이것은 상상력에 기한 나의 추측이다.) 즉 강제추행죄가 친고죄가 아니었다면, 강제추행 행위자를 추행죄로 기소하는 관행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하고 있다.


재판이 열렸다. 피고인은 공소사실에 기재된 행위를 한 것이 사실이라고 모두 자백하였다. 재판장은 추가로 제출할 증거나 신문할 증인이 있는지 물어보았고 나는 없다고 대답하였다. 군검찰관은 징역 1년을 구형하였다. 그리고, 변호인인 나의 발언 차례가 왔다. 나는 피고인이 이 사건 행위를 저지른 것은 사실이지만, 그리고, 현재 깊이 반성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법률적으로 추행죄는 무죄라고 주장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지금 제출하는 변호인 의견서에 담겨 있다고 하였다.


호기심 많은 군인들로 꽉 차 있던 법정이 순간 술렁였다. 검찰관은 무슨 황당한 소리를 하느냐는 듯한 눈빛을 내게 보냈다. 재판부는 심리를 종결하면서 선고기일은 추후지정하겠다고 하였다. 검찰관은 내가 제출한 변호인 의견서를 반박하는 내용의 검찰관 의견서를 제출했다. 그 요지는, 강제추행죄의 보호법익은 ‘개인의 성적 자유라는 개인적 법익’이고, 추행죄의 보호법익은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軍紀)라는 사회적 법익’으로서 그 보호법익이 서로 다르므로 별개의 죄가 성립한다는 것이었다. 즉 이 사건 행위는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데도 성적인 행위를 함으로써 피해자의의 성적자유를 침범하였다는 측면에서는 강제추행죄가 되고, 군이라는 공동사회에서 성적으로 문란한 행위를 하여 군기를 문란케했다는 측면에서는 추행죄가 되며, 두 죄의 관계는 상상적 경합범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검찰관의 의견을 반박했다. 우선 검찰관의 논리대로라면 무엇보다 강제추행죄를 친고죄로 만들어 놓은 이유가 없어지게 된다. 강제추행죄를 친고죄로 만든 이유는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강제추행의 피해자는 수사기관에 나가서 피해 사실을 구체적으로 진술해야 하고, 법정에 출두해서도 피해사실을 증언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느끼는 수치심은 엄청날 것이다. 재판은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법정에 출석한 수많은 방청객 앞에서 자신이 무력하게 성추행 당한 사실을 낱낱이 증언해야 한다. 더구나 여성이 남성에게 당한 추행보다 남성이 남성에게 당한 추행이 피해자 입장에서는 훨씬 더 수치스러울 것이다. 일부 카톨릭 신부들이 소녀들이 아니라 소년들을 상대로 강제추행행위를 한 이유도 소년들이 더 수치스러움을 느껴서 남에게 이야기 하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국가는 강제추행같은 나쁜 행위를 한 자를 처벌할 의무도 있지만 그런 형벌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피해자의 인권이 또 다시 침해 당하는 것을 보호해 줄 의무도 있다. 그래서 강간, 강제추행, 간통, 명예훼손 죄 등의 경우에는 친고죄로 규정해 놓았다. (주석 : 위에서 말한 대로 2013. 4. 5.자로 강간, 강제추행은 형법 및 형법의 개정으로 더 이상 친고죄가 아니게 되었고 간통죄는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받아 더 이상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그 동안의 관행대로 한다면 군인이 동성을 상대로 강제추행 범행을 저지르는 경우는 예외 없이 추행죄도 성립하게 되므로 추행죄로 기소하게 된다. 따라서 강제추행의 피해자는 친고죄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수사기관이나 법정에 출석하여 조사를 받고 증언을 하게 된다. 이는 강제추행죄를 친고죄로 둔 입법자의 의도를 완전히 무시하게 되는 결과가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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